[단독]양아버지의 29년 '도가니'.. 그러나 모두 모른척했다

2011. 10. 11.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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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양아버지의 죽음에 수양딸이 땅을 치며 오열했다. 그 울음은 죽은 양아버지를 그리는 사부곡(思父哭)이 아니었다. 29년 동안 자신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한이 서린 눈물이었다.

8월 20일 강원 횡성군 작은 시골마을에서 A 씨(38·여)의 양아버지 전모 씨(61)가 자신의 집 뒤 옥수수 밭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수양딸을 29년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지 이틀 만이었다. 소식을 들은 A 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법정에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희망이 산산조각 난 것이었다.

사건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형편이 어려운 친아버지를 떠나 전 씨 집에 수양딸로 맡겨졌다. 그 뒤 친아버지는 연락이 두절됐고 A 씨는 그때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농사를 짓던 전 씨는 A 씨에게 논밭일도 돕게 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A 씨는 자신을 돌봐주는 전 씨 부부가 고마웠다.

2년이 지난 1982년 어느 날 악몽이 시작됐다. 양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전 씨가 A 씨를 안방으로 불렀다. 어린 A 씨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걱정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양아버지는 곧바로 야수로 돌변했다. A 씨는 그 일이 양아버지에게 단순히 혼난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악몽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전 씨는 아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A 씨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양아버지의 성폭행은 A 씨가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전 씨는 1993년 집을 떠나 강원 원주시의 한 공장에 취직했지만 전 씨는 A 씨가 머물던 숙소까지 찾아와 성폭행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전 씨의 마수는 더 그를 옥죄었다. 전 씨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던 A 씨를 야산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고 허벅지를 칼로 찌르며 위협까지 했다. 그러면서 A 씨의 의지도 서서히 꺾여갔다.

악마와도 같은 전 씨는 주변에 한없이 따뜻한 사람으로 행세했다. 전 씨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내야 한다, 선 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했다. 실제 A 씨는 몇 차례 선도 봤다. 그러나 선을 본 날 밤이면 어김없이 전 씨가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지옥 같은 삶을 살던 A 씨에게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 A 씨는 29년 동안 성폭행을 당하면서 수차례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 임신 때문에 배가 불러 올 때도 주변 사람은 그를 외면했다. 양어머니 역시 A 씨를 성폭행하고 속옷 차림으로 나오는 남편과 마주치고도 남편의 외도만 탓했다. A 씨는 관심 밖이었다. 양아버지의 동네 친구도, 남동생의 친구도 양아버지가 A 씨를 추행하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모른 척했다. 경찰 관계자는 "작은 마을이다 보니 두 사람의 일을 누구나 아는 비밀로 여겼다"며 "A 씨가 성인이 된 뒤에는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A 씨의 품행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올해 친구들과 생애 처음으로 1박2일로 여행을 갔다가 양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던 기억을 처음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친구는 양아버지를 피해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A 씨를 데려온 뒤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를 소개해 줬다. A 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서울 서부경찰서에 양아버지 전 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29년 만에 낸 '용기'였다.

양아버지 전 씨는 횡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딸이 스무 살이 넘은 뒤로 서로 좋아서 했다"며 부인하기도 했다. A 씨는 결국 아버지 전 씨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주변에서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졌다면 배가 불러온 A 씨를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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