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키운다더니..유기견 두 번 울리는 '입양 사기'

천선휴 기자 2016. 10. 10. 16: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입양 목적, 주거환경 등을 속이고 유기동물을 입양한 뒤 유기·학대, 파양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자료사진)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A씨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2003년 경기의 한 유기동물 위탁보호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한 방송프로그램이 유기동물 보호소의 실태를 세상에 알렸다. 가족을 잃고 길거리를 떠돌다 보호소에 입소한 반려동물이 공고기간 동안 원주인이나 입양자를 찾지 못하면 안락사 당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공개됐다.

유기동물의 서러운 운명을 확인한 시청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방송이 끝나자 보호소에 시청자 문의가 쇄도했다. 잇단 방문자들로 인해 보호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문제가 하나둘 발생하기 시작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사람이 워낙 많이 몰려와 번호표까지 나눠줬다"고 말했다.

당시 시청자들이 보호소에 문의전화를 하고, 직접 찾아온 이유는 안락사 당할 위기에 처한 유기견을 입양하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없단 이유로 죽을 운명에 처한 가여운 동물들을 입양하겠다는 맘을 품고 너도나도 보호소를 찾아왔다.

모두들 "정말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유기견들을 데려갔다. 그런데 새 가족을 만나 보호소를 떠난 유기견 중 절반 이상이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유기견들은 결국 공고기간을 채운 뒤 안락사됐다. A씨는 "입양 심사 과정에서 굳은 의지를 보이던 사람들이라도 좀 기르다 버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일들이 지금도 자주 벌어진다"고 했다.

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유기견의 모습. (자료사진)© News1

'입양사기'가 극성이다. 유기동물 입양센터를 운영하는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입양 목적, 주거환경 등을 속이고 유기동물을 입양한 뒤 유기·학대, 파양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동물보호단체가 운영하는 유기동물 입양센터는 특히 입양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 이 때문에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주거환경, 월소득, 직업을 거짓으로 작성하는 등 허위 정보를 적거나 '잘 키우겠다'며 굳은 의지를 강조하는 입양 희망자가 상당수다. 하지만 입양 동물을 죽을 때까지 책임감 있게 키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계자들은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반려동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현장에선 '후진국보다 못하다'는 성토가 끊이지 않는다.

17년간 유기동물 구호 활동에 힘 써 온 임희진 케어 국장은 까다로운 입양 심사를 거쳐 입양을 보낸 뒤 불시에 가정방문을 해보면 참 황당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고 했다.

임 국장은 "몇 년 전 한 여교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기견을 입양했다"면서 "시간이 지나 중성화수술을 해주기 위해 연락했더니 '개가 죽었다'고 하더라. 확인해봤더니 개를 키우기 싫어 시골에 사는 지인에게 보냈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수소문을 해보니 낮에 두 시간 정도 집에 혼자 있을 아들이 외로울까봐 개를 입양한 교사가 개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며 "시골에 있다는 그 개는 결국 찾지 못했다"고 했다.

임 국장은 옥상이나 신발장에 짧은 목줄로 묶어둔 채 물도 주지 않고 방치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입양심사 때 본인 집이라며 다른 집 사진을 보여주고 입양해 갔다가 들통 난 경우도 있고, 한 사이비 기도원에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개를 입양한 경우도 있다. 임 국장은 "하루 종일 얘기해도 모자라다"고 했다.

유기견 '까비'가 애교를 부리고 있는 모습. 현재 서울 중구에 위치한 케어 퇴계로 입양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까비는 두 번의 파양 경험이 있다. © News1

동물보호단체의 유기동물 입양센터의 경우 사후 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입양 간 유기동물의 근황을 사진을 통해 확인하고 낌새가 이상한 곳은 가정 방문을 통해 점검한다.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는 개는 다시 데려온다. 입양 시 작성하는 각서에 해당 조항이 명시돼 있다.

문제는 유기견들이 입는 상처다. 입양 갔다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다시 센터에 돌아오는 유기동물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파양된 유기견들은 대부분 길게는 몇 달 동안이나 밥을 먹지 않거나 우울감에 시달리는 등 큰 후유증을 겪는다.

김은일 케어 구호동물 입양센터 팀장은 "다시 센터로 돌아온 동물들이 얼마나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지를 알면 쉽게 입양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시덥잖은 이유들로 입양한 유기동물을 파양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펫숍이나 동물병원 등에서 어린 개를 분양받는 것보다 재정적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로, 또 단순히 호기심이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개를 입양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개를 키우는 건 아기를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간다. 정말 제대로 키울 수 없다면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ssunhue@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