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범죄.. 드라마 속 최악의 데이트 폭력 네 장면

유지영 2016. 9. 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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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드라마 분석] 단지 드라마니까? 왜곡된 연애관 근거 될 수도

[오마이뉴스 글:유지영, 편집:곽우신]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랑도 변한다. 비록 허구의 세계이나 당대의 분위기나 현실을 가까이서 담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 속 사랑은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2016년 한국에는 분명한 변화의 흐름이 존재한다. 작년부터 사회 전반의 여성혐오에 맞서는 사람들이 늘었고, 여성 혐오에 관한 인식 또한 부쩍 성장했다. 그 흐름이 이어져 올해는 데이트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크게 부상해, 대중 매체 속 폭력 장면이 집중적으로 분석되고 많은 비판을 받은 해이기도 하다. 이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미디어 역시 이런 시청자의 수요에 발맞출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장면들은 전부터 있었으나 잠시 문제시 되고 넘어가거나, 그 이전에는 폭력의 범주 안에서 미처 해석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드라마 또한 이런 데이트 폭력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를 들어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SBS <파리의 연인>(2004) 속 박신양은 김정은을 동의 없이 들어 업고 간다. 물론 충분히 '심쿵'할 수 있는 장면이나 오늘날로 보면 엄연히 데이트 폭력의 사례가 될 수 있다.

2010년 방송됐던 SBS <시크릿 가든> 속 현빈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물리력을 행사해 침대에 누운 하지원을 제압하는 장면은 극 중 '액션 스턴트우먼'인 하지원의 직업적 설정까지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데이트 폭력 장면이다.

그렇다면 2016년 한 해 동안 방송된 TV 드라마 중 최악의 데이트 폭력 장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는 지난 9일 오픈세미나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를 통해 대중문화 속 데이트 폭력이 미화된 장면을 선정한 바 있다. 이 중에서 올해 방영된 드라마 속 장면 네 가지를 꼽았다.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가 꼽은 장면의 선정 기준은 지난 8월 웹매거진 <아이즈>와 국제 앰네스티가 함께 진행한 캠페인 '#더이상설레지않습니다'를 참고로 했다. 캠페인 '#더이상설레지않습니다'는 고성 및 언어폭력, 벽에 밀치기, 강제 기습 키스, 무턱대고 찾아가기 등의 한국 드라마 속 로맨스 클리셰 중 10가지 행동을 두고 이제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나] KBS <함부로 애틋하게> 속 데이트 강간 연상하는 장면

지난 8일 종영한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데이트 폭력신의 교과서다. <아이즈>와 국제앰네스티가 언급한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장면들' 중 상당수가 <함부로 애틋하게>에 등장한다. 김우빈이 연기한 신준영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내내 여자 주인공 노을(수지 분)을 억지로 잡아 끌거나, 강제로 들쳐 멘다. 노을을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동의 없이 공개적으로 관계를 공표해 노을을 곤란에 빠트린다. 아예 첫 화부터 난폭 운전을 한 뒤 길에 버리고 가버린다. 이 모든 장면을 16부작 드라마 속 한 캐릭터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뭇 놀랍기만 하다.

ⓒ KBS
여기에 노을이 일방적으로 신준영의 말을 듣거나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권력 관계도 존재한다. 수지가 연기하는 노을은 빚을 짊어진 가난한 다큐멘터리 피디로 극 중에서 인기 배우로 등장하는 김우빈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이 맺는 관계와 하는 행동은 드라마 상에서 철저하게 로맨스 층위에서만 소비된다.

그 중 가장 최악은 이 장면이다. 노을과 싸우던 중 신준영은 노을을 침대 위로 넘어뜨리고 이어 노을이 입은 옷의 지퍼를 내리려 한다. 카메라는 노을의 망설이는 눈빛을 비춘다. 데이트 폭력을 연상시킬 수 있는 장면들을 이렇듯 쌓아두고 여자 주인공은 '함부로' 이를 '애틋하게' 느낀다.

[둘] SBS <우리 갑순이> 속 강제 키스신

ⓒ SBS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갑순이(김소은 분) 남자 주인공인 갑돌(송재림 분)에게 헤어짐을 고하고 앞서 간다. 그 뒤를 갑돌이 쫓아온다. 갑돌은 갑순의 팔목을 낚아채고 거리 한 쪽으로 끌고 가 강제로 입을 맞춘다. 여자 주인공은 저항하는 듯하다가 남자 주인공의 키스에 응한다. '강제 키스신'은 그간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자주 사용돼왔다.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 오픈세미나 연사 이상은 이러한 대중매체의 빈번한 데이트 폭력이 "남성 중심의 지배 담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데이트 폭력신을) 로맨스화하는 대중매체가 끼치는 영향이 보다 명확하다"며 "연애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공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죽거나 크게 다치는 등의 치명적인 신체적 폭력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장면은 대체로 연애의 일부로 작용한다. 이는 다수의 여성들이 온라인 공간 안에서 증언하는 내용들과도 일치한다. 엄연한 데이트 혹은 가정 폭력을 '사랑싸움'이라거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식으로 '사랑'의 층위 안에서 바라보게끔 한다. 이는 결국 다수의 폭력을 간과하게 만들거나 폭력의 강도를 키운다.

SBS <우리 갑순이> 속 강제 키스신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그저 가상의 일로 여길 수도 없다. 비단 키스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로 관계를 밀고 나갔을 경우 이는 단순히 키스로 끝날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셋] MBC <운빨로맨스> 속 '강제로 현관문 열기'

ⓒ MBC
MBC <운빨로맨스> 속 여자 주인공 심보늬(황정음 분)는 크고 작은 불운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이 장면 속에서 심보늬는 자신의 집에 찾아와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하는 최건욱(이수혁 분)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는 "(제안해 주어서) 감사한데 먹은 걸로 치겠다"며 한 차례 거절 의사를 밝히고 재차 단호하게 "(내가 베푼) 사소한 친절을 호감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건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물리력을 행사해 심보늬 집의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심보늬는 그 힘의 반동으로 인해 집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안인용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운빨로맨스>의 다음 장면을 두고 "이쯤 되면 여자 주인공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 전개다"라고 꼬집었다. 정작 이 다음 장면에서 둘의 갈등은 갑작스럽게 해결되며 로맨스로 연결된다. 강제로 현관문을 열어젖힌 것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인양 처리된 것이다.

안인용 칼럼니스트는 "한국 드라마의 여성 인물들은 모두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들이다, 여성 인물들이 드라마 속에서 마주하는 공포와 폭력의 현장을 로맨스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남성이 찾아와 범행을 저지르는 숱한 사건들의 목록을 보자면 이는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다. 강제로 열어젖힐 수 있는 현관문은 자기가 혼자 사는 집의 현관문 뿐이어야 한다.

[넷] tvN <또 오해영> 속 물건을 던지고 부수는 장면

ⓒ tvN
한편,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찾아와 그 여성을 '지켜주는' 설정을 다룬 드라마도 있다. 강제로 현관문을 열어젖혀 '밥 먹자'고 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문제는 그 남성 역시 멋대로 여성의 집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 역시 올 한 해 여러 폭력적인 장면들을 연출해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으로는 오해영(서현진 분)을 차에 태우고 그 차의 유리를 박도경(에릭 분)이 깬 것이 있다. 또 오해영의 손목을 끌고 식당을 나서는 장면, 동의 없이 그의 집에 방문하는 장면 역시 큰 논란이 됐다. 이선옥 르포작가는 <미디어오늘> 기고글을 통해 "이런 폭력을 행사하는 애인이 있다면 당장 헤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이런 신을 두고 "현실에서 폭력을 긍정의 신호로 이해하는 왜곡된 연애관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물론 다수의 지적처럼 이는 신 하나만을 놓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또한 극 중에서 주인공 오해영도 박도경에 상당한 정도의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신들은 오해영의 성격을 드러내거나 둘 사이의 복잡하고 격렬한 관계를 설명하는 근거로도 이용된다. 대표적으로 논란이 된 '벽키스신' 또한 그렇다. <또 오해영>은 분명 쌍방과실인 것과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현진은 종방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었다"며, "(데이트 폭력으로) 보일 거라 생각을 못 해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많은 폭력적인 장면들이 인터넷 상에서 맥락 없이 소비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들의 폭력을 로맨스의 층위로만 해석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 소속 회원들은 "이들 영상에 등장하는 폭력적 장면의 전제는 '사실 (이런 폭력을) 여자도 원하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이 된다"고 우려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여성들 역시 '이를 원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이들은 "현실에서 폭력적인 상황들이 나타났을 경우 여성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들 역시 얼마든지 폭력에 해당되고, 이런 장면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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