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장관 "佛로 넘어간 것 같다" 李대통령 "그럼 내가 뛸게"

2009. 12. 2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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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억달러 UAE원전 수주 ◆

지난 19일 코펜하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특별기 안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막걸리 건배를 제안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 그리고 대선승리 2주년을 맞은 조촐한 기내 축하연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흥에 겨워 막걸리를 돌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빈 자이드 알나하얀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자로부터 원자력 발전 건설 수주가 한국으로 결정된 듯하다는 낭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6개월에 걸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전은 고비마다 피를 말리는 접전이었다. 무엇보다 UAE 원전 수주건은 후속 수출 효과까지 합쳐 총 400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했다. 원자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중동지역에서 원자력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각국 정상들까지 나서 수주를 지원하는 등 치열한 경합을 계속했다.

자원외교 최전방에 섰던 한승수 당시 총리는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파리로 가다가 비행기 항로를 돌연 바꾸어 아부다비로 향했다. UAE 원전 수주전이 시작돼 미국 프랑스 일본과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던 6월 22일이었다.

한 총리 일행은 셰이크 모하메드 왕세자를 만나 한국의 원전기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곧바로 사막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알아인으로 아부다비에서 차로 두 시간 떨어진 곳이다. 빈 자이드 알나하얀 할리파 UAE 대통령과 모하메드 왕세자가 태어난 곳이자 왕족 가문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태양이 작렬했고 낮 기온은 40도를 넘었다. 그곳에서 한 총리 일행은 현지인을 일컫는 '베두인'과 같은 방식으로 묵었다. 이것이 아부다비 대통령과 왕세자 마음을 사로잡았고 수주 경쟁이 한국과 프랑스로 압축되는 계기가 됐다. 한 총리가 1974~1976년 요르단에서 재정 고문을 하면서 익혔던 협상의 기술이었다.

프랑스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직접 UAE로 날아갔다. 사르코지는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를 제공하고 핵과 관련된 '플러스 알파'를 제안했다. 사우디 이란 오만 등 강대국 사이에 자리한 UAE에는 안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아레바의 UAE 원전 수주가 사실상 확정되는 듯했다.

이 같은 첩보를 전해 들은 한국 정부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급파했다. 유 장관은 한국 원전의 가격 경쟁력과 낮은 고장률 그리고 짧은 공사 기간을 들어 설득에 나섰다. UAE 정부는 "한국의 원전기술이 더 낫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안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며 고개를 저었다. 11월 9일에 UAE 측에서 최종 통보가 왔다. 중대 변수가 없는 한 프랑스 아레바로 낙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유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흥분했다. 그러면서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이 대통령은 즉시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특사를 보내겠으니 한 번만 더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승수 전 총리에게 연락했다. "우리도 경제사절을 좀더 보강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봅시다."

이 대통령은 왕세자와 6번에 걸친 전화외교를 벌였다.

11월 17일 한 전 총리 일행이 극비리에 두바이로 향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중심이 된 국방팀, 지식경제부 장관과 외교부 차관 중심의 경제협력팀이 꾸려져 40여 명이 함께 갔다.

17일 저녁 아부다비에 도착한 한 전 총리 일행은 구체적인 협상에 나섰다. 19일 모하메드 왕세자를 만나 대통령의 친서를 전했다. UAE 측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면 한번 더 고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모하메드 왕세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전화를 하자마자 특사단 일행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고 경제팀과 군사팀이 모두 와서 UAE 경제라인과 육해공 인사를 만나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하는 걸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것이 UAE 대사관 측 전언이다.

한 전 총리의 11월 아부다비 방문에 맞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처음으로 한국의 수주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이 무렵이다. WSJ는 "애초 미ㆍ일 컨소시엄과 프랑스 컨소시엄 간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지 관계자들이 경쟁력 있는 한국 컨소시엄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기야 UAE는 프랑스에 수정된 가격을 요구했고, 프랑스는 한국을 의식해 애초 계획에서 새롭게 수정한 계약 가격을 제안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UAE는 원전 건설 외에도 정보기술, 국방, 항공, 건설인프라스트럭처에서도 협력을 원했다"면서 "한국은 UAE의 이런 수요를 맞춰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라는 점을 집요하게 설득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귀국하자마자 청와대에 들어와 아부다비 방문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모하메드 왕세자도 한국 원전이 최고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프랑스의 플러스 알파입니다. 우리로서도 뭔가 경쟁력 있는 카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대통령은 다시 설득에 나섰다.

12월 18일. 이 대통령이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참석을 위해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을 때였다. 모하메드 왕세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낭보였다.

"이 대통령이 직접 와서 조약에 서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7일도 좋고 28일도 좋습니다. 할리파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른 날을 선택했다. 27일이었다. 하루라도 늦출 이유가 없었다.

UAE 측과 원전협상을 진행해온 국내 관계자들은 "지난 7월 한전 컨소시엄이 입찰서류를 제출할 당시부터 기술이나 가격 면에서 선두였다"며 "하지만 막판까지 한국과 경쟁을 벌였던 프랑스가 UAE와 정치적 타협을 시도해 결정이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아부다비 = 이진명 기자 / 서울 =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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