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처럼 살다 간 오두막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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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펼쳐져 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강아지똥'이라는 동화도 썼는데, 강아지똥은 흙 속에 스며들어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지." 아뿔싸, 이게 뭐야? 너, 설마 돌이네 흰둥이 아니지? 아니고말고.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으로 널리 알려진 〈강아지똥〉을 비롯해 〈몽실 언니〉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등 권정생의 작품은 오랜 세월 독자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강아지똥 할아버지〉는 바로 그 사람, 권정생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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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펼쳐져 있다. 누가 책을 보다가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흘깃 보니 짙은 파랑색 배경에 민들레 한 포기와 강아지가 그려져 있다. 못 보던 책이다. 초록 잎이 싱싱한 민들레는 노란 꽃을 활짝 피웠고, 몸빛이 누르스레한 강아지는 민들레를 올려다보고 있다. 강아지라기엔 개에 가깝지만 이 녀석 왠지 묘한 느낌이다. 어딘지 모르게 반드럽고 약빨라 보인다고나 할까. 앞발을 척 뻗어 턱 밑에 괴고 배를 깔고 누운 품새하며 민들레를 곁눈질하는 눈매하며 은근히 시건방지다. 수더분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옆 페이지로 고개를 돌려 눈에 띄는 대로 읽는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강아지똥’이라는 동화도 썼는데, 강아지똥은 흙 속에 스며들어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지.” 아뿔싸, 이게 뭐야? 너, 설마 돌이네 흰둥이… 아니지? 아니고말고. 이 녀석은 누렁이잖아. 괜스레 놀라서 혼자 자문자답을 하다가 슬그머니 책을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 읽는다. 강아지똥 할아버지.
권정생의 삶을 몇 가지 에피소드로 엮어내
〈강아지똥 할아버지〉는 바로 그 사람, 권정생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도토리처럼 작고 깃털처럼 가벼우며 평생토록 온몸이 아팠던” 이의 삶을, 시골 교회에서 종지기를 하던 젊은 시절부터 작품이 널리 알려지며 사람들이 몰려들던 시절,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몇 가지 에피소드로 엮었다. 권정생의 생각과 됨됨이를 빠짐없이 싣겠다고 조바심을 낸 탓인지 글은 초점이 불분명하여 흡입력이 떨어지고 그림은 생기가 돌지만 들쭉날쭉하여 책 전체 짜임새가 아쉽다. 좀 더 조곤조곤하면 좋았을 텐데.
처음에 내 눈길을 끌었던 개는 책 속 곳곳에 출몰하여 주인공을 힐끔거린다. 암만 봐도 뺀질뺀질해 보이는 녀석은 어쩐지 권정생 주위에서 알짱대는 우리들의 모습 같다.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 화면에서 사라지자, 개의 시선은 민들레를 향한다. “할아버지도 강아지똥처럼 흙 속에 스며들어 무언가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될 거야.” 우리도 그래야겠지, 곁눈질은 그만하고.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편집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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