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Life]'똑똑하게 즐기고, 주저 없이 던져라' - 섹스 칼럼니스트 윤수은

2008. 11. 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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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섹스 칼럼니스트의 다이어리'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단 책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라는 책이 나왔다. 일기 형식의 소설인 이 책은 그 자체로 일종의 칼럼 모음집이기도 하다. 흥미를 한껏 자극하는 이 책의 저자는 서른셋 여성 작가인 윤수은 씨다.

스물아홉 미혼 여성이자 잡지사 섹스 칼럼니스트인 '강철녀'. 소설 속에서 섹스 일기를 써내려가는 그녀를 탄생시킨 여성은 서른둘 기혼 여성인 윤수은 씨다. 강철녀는 실제 윤수은 씨의 잡지사 기자 경력, 본인과 주변의 섹스 고민, 그리고 경험담이 잘 버무려져 탄생한 상상 속의 인물이다. 종합 여성지의 섹스 칼럼을 담당하다 본격적으로 책까지 내게 된 윤수은 씨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라는 제목대로 발칙한 매력을 가진 작가다.

'섹스만 하면 곯아떨어져요, 믿었던 콘돔이!, 제대로 키스하고 싶어, 처음이 아니라서 미안해, 맛있는 애무.' 읽는 이에 따라 살짝 낯을 붉히기도 할 이 말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소제목 목록이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이 건강에도, 삶의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꽉 차 있다.

잡지사 기자로 섹스 칼럼 담당

"여성들에게 사랑을 하려거든 똑똑하게 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피임에 관한 이야기도 많고요. 일기 형식은 같은 내용이라도 이야기 형식으로 주제를 던졌을 때, 사람들의 머리에 더 잘 남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윤수은 씨의 책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어찌할 바는 모르는 여성들에게 이야기 형식을 빌려 말을 건넨 결과물이다.

"주요 타깃은 20대 여성들이지만 중년 남성들에게도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딸이나 여동생에게 성과 관련된 주의를 주고 싶어도 차마 말을 꺼내기가 힘들잖아요. 할 말은 많아도 나이가 들면 대충 제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방관만 하게 되죠."

그녀가 처음 성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아버지의 스포츠신문과 어머니의 여성지를 통해서였다. 스포츠신문의 만화나 소설, 여성지의 부부생활 정보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곁에서 훔쳐 본 경험은 그녀 세대 공통의 것이다. 그녀는 스포츠광인 아버지가 정기 구독하던 스포츠신문에서 본 고우영 작가의 '가루지기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세로쓰기에 글자 크기도 작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어린 마음에 재미도 있었고 자극이 강해서 심장이 막 두근거렸어요."

일찍부터 성에 관련된 글들을 많이 접한 건 언어에 대한 그녀의 감각이 남보다 뛰어나서기도 했다.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윤수은 씨는 글을 쓰는 일, 혹은 언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한때 증권사에 입사해 잠깐 일한 적도 있었지만, 그녀는 결국 잡지사 기자로 안착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떨어진 주가가 1999년에 끝도 없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실권주 청약이 있는 날이면 객장에 모여든 고객들이 몇 줄을 넘어섰죠.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저하고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레이디경향에 입사해 뷰티, 요리, 패션 등을 다루는 생활팀 기자로 일했어요. 그중에 섹스 칼럼도 맡게 된 거죠. 미혼 기자들이 꺼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양한 이론서들을 챙겨 보면서 칼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한국인의 평균 관점과는 달리 섹스에 대해 밝고 포용력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 데는 캐나다 체류 경험이 한몫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다인종들이 모인 토론토에 1년 동안 머무르면서 그녀는 커다란 문화 충격을 받았다. 매년 봄 열리는 대규모 게이 퍼레이드만 하더라도 난생 처음 보는 엄청난 숫자의 동성애자들이 흥겹게 즐기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녀는 섹스 칼럼을 진행하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가끔은 개인 메일로 차마 남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전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크기에 대한 열등감으로 수술 여부를 물어 온 남성 독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다.

"정확한 사이즈까지 적어 보냈는데, 평균치를 웃도는 크기더라고요.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 수술까지 고민한 것이라면, 여자들이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모양과 크기에 집착하기보다 깨끗한 피부, 잘 가꾼 몸매, 깔끔한 머리에 신경을 쓰는 게 낫겠다고 답을 해주었지요."

자신의 일에 만족하던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유학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미국 인디애나로 떠났다. 잡지사는 그만두었지만 섹스 칼럼 기고는 계속됐다. 동료 기자가 '윤수은밖에 없다'고 권유한 덕이다. 잡지의 성격이나 기획 의도에 맞춰야 하는 칼럼을 넘어 자신만의 책을 내게 된 것도 주변의 추천에서 비롯됐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섹스 칼럼을 쓴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색안경 낀 시선을 받아야 하고 불편한 평가도 견뎌야 할 것만 같다.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책에는 미래의 딸에게도 읽히고 싶은 내용들이 있다고 했다.

"시아버지께서 우리 둘째 며느리가 작가 됐다고 주변에 자랑을 하셨나 봐요. 어르신들이 많이 사 보시고는 그 집 며느리 처녀 시절에 보통이 아니었겠다고 하셨대요. '아버님, 한 귀로 흘리세요'라고 했더니 시아버지께서도 '어, 그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녀의 남편 또한 수은 씨가 본격적인 섹스 칼럼니스트의 길에 들어선 것을 환영하고 있다. 그녀가 커리어를 썩히지 않고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다 책까지 낸 것에 응원을 보내 주었다. 그녀가 남편인 자신보다 더 잘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녀와 가족들의 '쿨한 태도'에 비하자면 주변의 인식은 여전히 촌스럽다. 섹스에 관해 묻기가 너무나 조심스럽기만 한 사회다.

색안경 끼고 쳐다보는 시선 견뎌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마흔을 바라보는 선배가 서점에서 제 책을 집는데 행여 누가 볼까 봐 눈치를 보게 됐대요. 왜 그럴까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남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인디애나 주에 있는 동안 그녀는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ESL(English Second Language) 과정을 수료했다. ESL 과정에 다니면서 유명한 성의학 연구기관 킨지연구소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논문이나 뉴스레터 등의 최신 정보를 찾아보게 됐다. 또 개인적으로 베를린 훔볼트대학이 개설한 온라인 '성과학' 코스도 듣고 있다. 섹스 칼럼이라고 해서 선정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주저하지 말고 던지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요. 어떤 섹스를 하는지는 자신의 선택이지요. 억지로 떼밀려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모두 열심히 하기를 바랍니다."

약력: 1976년생. 부산대 한문학과 졸업. 2000~03년 '레이디경향', 'SABI' 생활팀 기자. 2007년 미국 퍼듀대 ESL과정 수료. 현재 미국 인디애나 주에 거주. '주부생활' 등에 섹스 칼럼 기고.

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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