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북한 10월 핵실험 강행설의 실체

2004. 9. 2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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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10월 충격설이 돌고 있다. 충격설의 전제는 오는 11월 있을 미국 대선이다. 근거는 북한의 핵실험 감행 가능성이다. 발원지는 미국이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한나라당 박진의원이 "미국 정-관가에 북한이 10월에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이달 초부터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비밀 정보를 읽은 미 정부 고위관리들이 "10월 충격설"이란 말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널리 유포된 것이다.

북한 핵실험 감행설은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지난 9월12일 보도함으로써 공개됐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위 보좌관들이 북한이 첫 핵무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움직임을 담은 정보보고를 받았다고 전한 것이다. 이 신문은 북한의 새 움직임에는 정보기관들이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지목한 곳 등 핵실험장소로 의심되는 몇개 지역 주변에서 포착된 물질의 이동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일부 정보는 위성사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 정보보고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 미국 과학자는 "새 증거"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잠재적으로 우려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의 고위당국자로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처음 공개 언급한 것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다. 파월장관은 지난 15일 〈팍스뉴스〉에 출연, 북한 핵실험에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 뒤 "북한은 핵실험이 분별있는 행동이 아님을 알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만약 핵실험을 한다면 그에 대한 반응은 미국보다는 그들의 주변국들로부터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美 과학자 "잠재적으로 우려 정도" 북한 핵실험설은 물리적 정보 외에 정치적 관측에서도 나온다.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정권의 패배를 원하는 북한이 선거 직전 핵실험 감행으로 이를 현실화하려 할 것이란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직접 대화 대신 다자회담을 선택한 부시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선거 막판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 핵실험설은 그와 같은 시나리오를 고려한 미국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이 첩보수준에 불과한 북한의 핵관련 움직임을 부풀려 유포시킨 데서 비롯됐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 핵실험설이 나도는 것만으로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로 귀결되는 것으로 판단한 민주당측의 소행이라는 얘기다.

북한 당국이 실제로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파월 장관의 말처럼 이웃나라인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까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북한이 핵실험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움직임을 계속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부시대통령까지 나서서 "대북 침공을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으니 핵실험은 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연관된 행동을 잇따라 벌여 "긴장의 고무줄"을 가급적 길게 잡아당기는 것이 부시정부의 대선패배를 유도할 수 있다고 북한 당국이 판단할 수 있어서다. 그 방법은 많다. 영변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진행해온 플루토늄 추출을 완료하는 것도 있고, 지하 핵시설을 건설하는 방법도 있다. 대포동 2호 미사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수도 있다. 한반도 10월 충격은 북한이 굳이 핵실험을 감행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10월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한반도정세가 격화될 소재는 적지 않다. 우선 9월 개최가 무산된 북핵 4차 6자회담의 향방이 꼽힌다. 북한은 최근 중국의 막판 설득을 뿌리치고 9월 개최를 거부했다. 지금까지의 3차례 6자회담에서 북한은 계속 몸을 빼다가 중국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서 설득하면 "마지 못해" 참석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리창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9월 12일 방북시키면서까지 설득에 나섰지만 끝내 참석을 거부한 것이다. 북한은 리 상무위원에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틀에 대해서는 유효하지만 4차 회담을 이달 중에 열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자회담 참여국들은 이에따라 10월 개최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했지만 실현 여부는 알 수 없다. 북한이 9월 개최에 반대하는 것은 미 대선 전에는 회담을 갖지 않으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법안 상원 통과도 큰 변수6자회담이 지난 1년 남짓 북핵 위기에 놓인 한반도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추 구실을 해온 점을 감안하면 6자회담의 장기 표류는 한반도 정세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핵 실험설 같은 변수들이 돌출했을 땐 긴장의 파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고 탈북자구호단체들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는 북한인권법안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법안은 7월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현재 상원으로 이송돼 계류중이다. 이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돼 성안이 되면 한반도에는 엄청난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탈북자문제에 "눈치껏" 대처해온 중국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미국 정부의 현금 지원을 받는 구호단체 관계자들의 중국 내 활동을 더 이상 규제하기 어려울 것이고, 국제사회로부터 탈북자의 난민대우 압박은 훨씬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 측면에서 10월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북한 내 사회기강 완화도 관건이다. 일반 주민들은 물론 엘리트 권력층들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비판하고 있어 체제위협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올해 중국을 방문한 한 학자는 공개석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비난하는 발언을 해 다른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올초 해외를 방문한 북한의 소장 무역업자는 김위원장의 경제정책을 심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북한 내에서 개인적 모임이 있을 때면 심심치 않게 김위원장 비난이 화제에 오른다는 말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물자를 내리는 북한 남포항에서 지난 5월 용천주민들과 국가보위부 요원들 간에 멱살잡이가 벌어지는 것을 국제사회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목격하기도 했다. 보위부 요원들이 용천지원 물자 가운데 TV등 일부 가전제품을 빼돌리려는 것을 지원물자를 받으려고 남포에 온 용천주민들이 막다가 발생한 일이다. 당시 광경을 목격한 지원단체 관계자는 "일부 용천주민은 "남조선 신문에 페이로더를 7대 보냈다고 했는데 용천에는 3대밖에 오지 않았다"며 북한의 고위인사들이 지원물품을 빼돌리는 것에 분개했다"고 전했다. 권력의 상하 위계질서가 분명한 북한 사회에서 상위층에 속한 보위부원들에게 일반 주민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북한 사회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평양에서도 법이나 규정을 위반한 무역업자들이 단속 나온 보위부요원들이나 사회안전성 요원들에게 "당국이 먹여 살리지도 못하면서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을 막느냐"고 항의하는 일이 빈발한다는 소식이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는 최근 "북한의 사회기강이 계속 해이해져서 어쩌면 멀지 않은 시기에 김정일체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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