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종영] 서정화를 추모하며

이은호 입력 2020. 4. 12. 08:00 수정 2020. 4. 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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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서정화를 추모하며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가 11일 막을 내렸다. 많은 이들의 염원대로 정금자(김혜수)는 송필중(이경영)의 악행을 까발렸고 윤희재(주지훈)와의 로맨스도 열매를 맺었다. 송필중이 살인·시체은닉·증거인멸 혐의로 검찰에 붙잡히면서, 그가 이끌던 로펌 송&김은 김민주(김호정) 대표 1인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송필중에게 자아를 의탁했던 이슘 그룹 하 회장(이도경)도 처지가 난처해지긴 마찬가지다. 이슘 그룹의 후계 자리는 차남 하준호(김한수)가 아닌 장녀 하혜원(김영아)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슘 재건은 충과 함께 하는 거”라는 정금자의 말만으로도 ‘하이에나’의 두 번째 시즌을 기다릴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하지만 이 통쾌한 승리의 한가운데서도 어쩐지 끝 맛이 개운치 못하다면, 그건 서정화(이주연)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일 것이다. 서정화는 하찬호(지현준)의 내연녀이자 하찬호의 이복동생 하준호의 연인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하찬호를 떠나 하준호와 새 인생을 꾸릴 계획이었지만, 정금자의 설득으로 다시 하찬호의 곁으로 돌아갔다가 결국 죽었다. 생전 갤러리를 운영하며 SS그룹 손봉우(김종구)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그는 손 회장의 돈으로 하준호와 도주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숨을 끊어놓은 건 송필중이었지만, 손 회장은 물론이고 하찬호와 하준호, 심지어 정금자마저 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정금자가 서정화에게 ‘하찬호와 계속 만나라’고 설득할 때, 서정화는 이렇게 물었다. “하찬호를 잡아넣으면 되지 않아? 윤 변호사 말처럼 하찬호를 감옥에 집어넣으면….” 정금자는 “하찬호가 감옥에서 평생 살 것 같아?”라고 되물었다. 현실적이지만, 그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서정화는 하찬호에게 이별을 고했다가 일주일간 감금돼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하찬호는 법의 심판을, 서정화는 법의 보호를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야기의 ‘큰 그림’을 위한 설계였을 것이다. 서정화가 죽은 뒤 정금자는 죄책감을 느끼며 진범을 꼭 잡겠다고 이를 갈았다. 서정화 이야기에서 ‘하이에나’가 보여준 최소한의 윤리다. 하지만 정금자의 이런 자책마저 송필중·손 회장 등 권력자들의 비리가 끼어들면서 금세 희미해진다. 

나는 서정화가 좋았다. 그는 하찬호에게 감금당해있던 일주일간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갇혀있던 별장에서 탈출할 수 있어서다. 모두가 하찬호의 난폭함에 혀를 내두를 때, 서정화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하찬호와 싸웠던 것이다. 하 회장과 송필중에게 휘둘리는 하준호의 아둔함을 보고 있노라면 ‘서정화는 도대체 저런 놈의 어디가 좋다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아무 조건 없이 (하준호가) 좋았다”는 서정화의 사랑을 응원했다. 때론 서정화의 도피가 성공해 손 회장과 송필중, 하 회장 일가 모두가 아연실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통쾌했다. 하지만 그것이 죽었다 깨나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안다. 서정화가 죽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이에나’는 서정화의 죽음을 동력 삼아 갈등을 만들고 풀었다. 보호받지 못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이 극의 진행을 위해 소모되고, 또 주인공의 승리 속에서 쉽게 잊혔다. 심지어 마지막 회에선 서정화의 피해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으로 연출되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여성 캐릭터 정금자를 만들어낸 ‘하이에나’가 왜 서정화라는 여성은 이렇게 도구적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했을까. ‘하이에나’ 3회에서 서정화와의 이별로 이성을 잃은 하찬호를 보며 정금자는 “여자 하나 때문에”라며 성을 낸다. 비서 이지은(오경화)은 이렇게 응수한다. “여자 하나가 세상을 바꾸기도 하죠.” 서정화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송필중 왕국’이 무너졌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여자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억울한 희생이 될 줄이야. ‘하이에나’가 서정화에게 진 빚을 누군가는 기억해주기를, ‘하이에나’의 두 번째 시즌을 기다리며 바란다.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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