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에 허를 찔리다

이정희 2020. 3. 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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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여전한 신원호표 휴머니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슬기로운 의사 생활> 포스터
ⓒ tvN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가 27%가 넘는 성과를 거두고 종영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시청자들 사이에 아직 '의학 드라마'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황. 그런데 여기, 첫 회 방송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시즌제를 갈망하며 서막을 얼어젖힌 또 한 편의 의학드라마가 나타났다. 

지난 2017년 <슬기로운 감빵 생활>로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를 선보인 신원호 사단의 작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다.    그 시작은 매우 의학드라마답다. 양석형(김재명 분)의 집으로 채송화(전미도 분)가 찾아오고 이내 전등 하나가 힘없이 꺼진다. 이를 고치러 온 수리 기사는 부주의하게 맨손으로 전기를 다루다 감전을 당하고 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채송화는 환자를 돌보고, 양석형은 침착하게 119에 신고를 한다.

이어 병원이 등장하고 서로 친구인 듯한 신경외과 채송화와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 흉부외과 김준완(정경호 분)의 '의사 생활'이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어진다. 당연히 보는 시청자는 이 드라마가 신원호 사단의 드라마인 것을 잠시 잊은 채 우리가 보아왔던 여느 의학 드라마와 비교하며 완성도를 품평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 병원 재단 이사장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그간 의학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재단을 둘러싼 클리셰가 여기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가 싶다. 이사장의 아내로서 등장한 김해숙(정로사 역할) 배우의 분위기와 어쩐지 그와 엇물리는 모기업 전무로 나타난 김갑수(주종수 역할) 배우의 포스는 재단을 둘러싼 이권 다툼의 냄새를 한껏 뿜어낸다. 

그렇게 전형적인 병원과 그 속에서 이전투구를 일삼는 재단의 권력 비리를 다룰 것같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얼굴을 바꿔 이것이 신원호 사단 드라마임을 티내기 시작한 건 정로사의 자녀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네 아들과 딸들. 그렇다면 그동안의 신원호 사단 드라마처럼 율제 재단을 이어받을 막내 아들 찾기가 이어지나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지며 '아들 찾기' 또한 싱겁게 막을 내린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막내 아들인 안드레아는 손수 재단을 주 전무에게 맡긴다. 의학드라마 클리셰에 익숙한 시청자 입장에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알고 보니 주 전무는 안드레아의 어머니인 정로사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극중 정로사가 남편 상가에 찾아온 주 전무를 보곤 혼잣말로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며 얼굴을 굳히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 또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었다. 아픈 아내를 둔 주 전무를 배려해 상가에 오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 이런 장면들은 그간 의학드라마의 클리셰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허를 찔렀다. 마치 '이 드라마는 여러분이 그동안 본 그런 의학 드라마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결국은 선함이 슬기로운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 tvN
무시무시한 그룹 회장의 아내일 것같은 어머니도, 그런 어머니를 상대로 재단을 넘볼 것 같던 모 기업의 전무도 알고보니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눈 어릴 적 친구였던 것처럼, 신원호 사단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다시 한번 '선한 사람들의 월드'를 불러온다.

아마도 신원호 사단에게 이 세상을 사는 '슬기로운 방식'은 '성선설', '착하게 살자'인 듯 싶다. 감빵이라는 가장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길어내더니, 첫 회를 선보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도 다르지 않다. 

친구들에게 재벌가 막내 아들임을 숨겼다고 다그침을 당하던 안정원에게 중요한 건 '키다리 아저씨'로 분해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다. 어쩌면 그건 그가 형과 누나들에 이어 종교의 부름을 받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가 굳이 재단 이사장을 마다하면서도 VIP 병실의 이권을 놓지 않은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고 현실은 그런 그의 '선한 의도'를 순순히 받아주지 않는다. 그가 줄곧 지켜왔던 어린 환자는 결국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끝까지 어린 딸의 손을 쉽게 놓지 못한다. 안정원은 환자의 곁을 지키던 간호사와 의사들, 그들 모두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자 한다. 하지만 그토록 의료진을 다그치던 어린 딸의 엄마는 이제 고개를 조아린다. 감사하다고, 고마웠다고 말이다. 이런 식의 '인간적인 반전'이 바로 신원호 사단이 말하는 바 '사람 사는 모습'이요, 슬기로운 삶인 듯 싶다.

이익준(조정석 분)이 수술 집도를 하는 동안 당연한 듯 그의 아이를 채송화가 돌보고, 채송화가 일어서자 맞은편에 앉았던 두 친구 준환과 석형이 자리를 옮겨 자신들의 겉옷을 벗은 뒤 아이의 베개로, 이불로 삼는다. 이 사소한 장면은 20년지기의 사람 냄새 나는 우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아들은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은 한 여성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는 '상황이 때론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지만 결국 인간의 슬기로움은 그 상황을 이겨내고 본래의 선함으로 귀결될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걸 설득해 내기 위해 1999년으로부터 20년 후를 설정한다. 이제는 마흔 줄이 된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싱글인 그들은 예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다시 남편 찾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작진은 말한다.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라고, 얽히고설킬 다섯 의사들의 인연, 그 서사를 넘어 병원을 배경으로 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2020년 유난히도 각박한 이 봄, 신원호 사단은 '슬기롭게'라고 쓰고 '착하게'라고 읽히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 '성선설'의 마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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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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