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클로젯',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입력 2020. 2.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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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미스터리물 ‘클로젯’…그릇된 훈육에 사회적 관심 촉구
|클라이맥스 약하나 어머니로 울리는 반칙 안 써서 좋아

[김영재 기자] 5일 개봉한 영화 ‘클로젯(감독 김광빈)’은 기대와 우려가 함께하는 작품이다. 그 기대의 기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배우 하정우와 김남길의 출연이다. 또 하나는 지난해 이맘때 개봉한 영화 ‘사바하’와의 기대 섞인 비교다. 둘은 같은 배급사에 장르마저 비슷하다. 우려는 충무로의 지독한 짝사랑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할 것인지 그 숨은그림찾기를 더는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아빠 상원(하정우)은 의사의 충고대로 딸 이나(허율)와 교외로 이사를 간다. 이사 후, 여러 이상 증세를 보이다 실종되고 만 이나. 경훈(김남길)은 1998년부터 총 32명의 아이가 실종됐고, 그가 그 사건을 10년째 쫓고 있다며, 이나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단 사흘이 남았을 뿐이라고 한다. 시간이 없다. 상원은 경훈과 손을 잡는다.

감독은 부인했지만, 본작의 레퍼런스는 제임스 완 감독의 영화 ‘인시디어스’다. 아이가 초자연적 공간으로 사라졌다는 점, 부모가 그 초자연성을 수긍하고 구출에 발 벗고 나선다는 점, 악령이 그 구출에 훼방을 놓는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 하지만 ‘클로젯’은 다른 낯두꺼운 국내산 모작보다 사정이 낫다. 그 유사성은 장르 영화에 기인하고, 만일 색안경을 벗는다면 하정우가 말한 “새로운 우리만의 것”의, 탐색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새로움은 바로 가족과 사회에 대한 김광빈 감독의 시선이다. 다시 말해 ‘클로젯’은 외피는 ‘미스터리 드라마’이나 내피는 ‘가족’인 것이다. 우습게도 이 영화는 과거 인기리에 방영된 SBS 교양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극장판과 다름없다. 대개 부모의 잘못된 훈육이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었듯, ‘클로젯’ 역시 아빠 상원이 딸 이나를 어떻게 잘못 길렀는지가 아이를 벽장 뒤로 사라지게 한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먼저 상원은 보모가 왜 아직 안 오냐는 성토를 굳이 아이 앞에서 하는 몰상식한 부모다. 이나와 가까워지고 싶은데 성과가 없으니 답답하다고 하는 것에는 아이를 어른의 시선에서 재단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또 그는 아이에게 자기 주관을 개입시키는 아빠고,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대신 본인이 옳다는 ‘답정너’ 아빠고, 물질적 요소로 아이를 좌지우지하려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어떻게 할 줄 모르겠다는 아빠고, 아이가 화를 내면 같이 화로 대응하는 아빠다. 딸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지, 블랙핑크를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상원. 이나는 아빠가 그를 원망한다고 생각, 저 스스로 벽장에 들어간다.

물론 그 이후도 있다. 상원네에서 들리는 파열음은 사회 어른과 ‘한국형 아버지’에 대한 고찰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아이들에게 아빠는 거짓말과 원망, 방관으로 일관했기에 찌르고 싶은 대상이고, 한편 엄마는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거나 더께처럼 쌓인 분노를 순식간 해소시키는 존재다. 가부장적이기만 한 우리 시대 아버지상에 일침을 놓는 작품이기에 “왜곡된” 그 상(像)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상원의 잘못된 훈육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관객에게는, ‘클로젯’은 그저 그런 미스터리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신파의 절제도 이번만큼은 아쉽다. 제작과 주연을 겸한 하정우는 감정의 클라이맥스가 약하다고 자평했는데, 그 말이 정확하다. 신파는 ‘어머니’ 혹은 ‘가족’에 기반을 둔 것이 대부분. 하지만 ‘클로젯’은 그 둘에 의존해 객석을 눈물로 적시기보다 어른과 아이의 ‘장유’ 관계로 그 전형을 “스타일리시하게” 반전시킨다. 눈물을 덜 머금은 자리에는 이 땅 아동에게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부탁이 전달되고, 이 부분은 마지막 신에서 다시 한번 반복돼 본작이 ‘장르물의 탈을 쓴 가족극’이라는 사실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

입봉작답게 뭐가 참 많다. 웃음도 이따금 터져 나오고, 가슴도 건드린다. 놀래는 신도 여럿이다. 특히 한 신은 누구든 괴성을 지르게 한다. 음악과 미술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상원이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신은 세트를 실제로 움직여 완성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공포만 조성하는 공포물이 아니라 그 점이 첫 번째 호불호일 터. 두 번째 호불호는 경훈의 존재다. 김남길 탓은 아니다. 공중파 연기대상을 받은 그에게 연기력을 지적하는 일은 까막눈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으렷다. 하지만 경훈으로 인해 불필요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이 문제다. “원래 말 많은 거 제일 싫어하는데 적막한 게 싫어서 말 많이 하는 거예요” 하는 경훈은 등장부터 의뭉스럽기는커녕 그간의 긴장감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또 부적세(稅) 언급하며 너스레 떠는 경훈의 모습은 ‘이 사람 퇴마사야? 사기꾼이야?’ 같은 의심을 심어 주는데, 이런 애매한 수 싸움은 괜히 혼란만 가중시킨다.

딸이 벽장으로 끌려간 ‘이후’보다 왜 벽장으로 끌려갔는지 그 ‘이유’에 집중한 ‘클로젯’은 ‘인시디어스’와는 차별화된 한국형 미스터리물이다. 상대적으로 공포는 줄이고, 대신 그 빈 곳에 한국 관객이라면 느낄 수 있는 부녀간의 소통을 채워 넣었다. 솔직해지자. 그간 충무로에서 ‘공포 영화’는 늘 비주류였다. 여러 신인 배우가 그들의 첫 영화로 공포 영화에 출연했고, 그것은 더운 여름에 그 더위를 가시게 하는 청량제로 기능했다. ‘클로젯’은 한겨울의 청량제로 실패할 것인가, 아니면 한 입봉 감독의 충무로 팡파르가 될 것인가. 벽장은 이미 열렸다. 15세 관람가. 98분. 손익분기점 215만 명. 순제작비 69억 원.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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