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당했다?..'가스라이팅' 자가 진단법
"노출증 환자냐.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라, 차라리 히잡을 쓰고 다녀라."
더불어민주당 2호 영입 인재였다가 지난 30일 탈당한 원종건씨(27)의 전 여자친구라고 밝힌 A씨는 원씨와 사귀던 시절 들었다는 말을 지난 2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처럼 고백했다. A씨는 "원씨가 이처럼 말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혔다"며 이를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원씨에 대한 관심과 함께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쏟아졌다.
'가스라이팅'은 '가스등'(Gas Light·1938)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된 용어다. 1948년 미국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이 극본에서 남주인공 그레고리가 부인 폴라에게 가한 것과 같은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다.
극중 그레고리는 폴라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 가거나 자유로운 외출을 막는 등 폴라를 정신적으로 통제하려 한다. 폴라는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판단력이 낮아지면서 그레고리에게 의존하게 된다.
한 마디로 개인이 타인을 알게 모르게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해 상대방의 자아를 무력화시키는 현상이 가스라이팅이다. 여러 인간관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편이지만 일종의 정신적 세뇌인 만큼 피해자가 알아채기도 쉽지 않은 폭력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자기 중심적으로 한 말 한마디가 가스라이팅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인 간 가스라이팅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대사가 "너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나를 사랑하는데 네가 이 정도도 못 해줘" "네가 그렇게 하는 것 싫다고 했잖아" 같은 유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가스라이팅을 유발하는 말은 흔히 '너 메시지'가 많다"며 "이런 말들은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의도가 깔린 말들"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가해자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이같은 화법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정서적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인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 관계 같은 가족 간이나 직장, 친구 관계에서도 가스라이팅은 일어난다. 이같은 관계에서도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자기 중심 화법이 가스라이팅을 유발한다.
직장 내 괴롭힘도 흔한 가스라이팅이다. 지난해 퇴사했다는 김모씨(33)는 "한 회사 선배로부터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 '일을 이 정도밖에 못하냐'는 꾸지람을 들은 적 있다"며 "자꾸 비슷한 표현을 들으면서 의기소침해졌더니 이번에는 '왜 맨날 축 쳐져 있냐', '맨날 소심해서 어떡하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다른 동료들에게 상담해봐도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울해져 회사를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데이트폭력뿐 아니라 직장 내 가스라이팅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미국 커뮤니티인 레딧에서 가스라이팅을 검색하면 '직장 내 가스라이팅(gaslighting at work)'이 관련 검색어로 뜰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가스라이팅 피해를 당하며 가해자의 압박으로 인해 주변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있다. 가스라이팅을 당해도 형사 처벌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다만 최근 데이트 폭력 사건이 늘면서 국내에서는 재판에서 양형 기준에서 가스라이팅 피해 여부도 고려되고 있다.
김 소장은 "정서적 심리 문제라 물리력을 가하지 않는 이상 형사법상 처벌도 어렵지만 최근 경찰에서는 범죄피해평가를 시행해 사건 자료로 첨부하는 추세"라며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이 가장 흔히 보고하는 수면 곤란·감정 불안·정서적 예민·대인 기피 증상 등 여부 등 심리 검사 결과를 척도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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