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신재하, 될 성부른 배우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강선애 기자 2020. 1. 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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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 강선애 기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배우 신재하를 처음 본 건 지난 2014년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서였다. 윤균상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였는데, 아무래도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에 잠깐 등장하는 배역이다 보니 분량이 적었다. 하지만 그 짧은 출연에도 신재하는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데뷔는 처음이라 낯선 얼굴이었는데도, 그에게서 '이 친구, 연기 좀 하네' 하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신재하는 욕심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는 이종석의 남동생으로 귀여운 매력을 보여주기도, '웰컴2라이프'에서는 광기어린 악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는 분량과 비중에 연연하지 않고 어느 역할에든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걸어온 끝에 신재하는 주연급으로 성장했고, 지난해 SBS 'VIP'라는 '인생드라마'를 만났다.

신재하는 'VIP'에서 백화점 VIP 전담팀의 막내 사원 마상우 역으로 열연했다. 알고 보면 '장관 아들'이라는 빵빵한 집안을 배경으로 둔 금수저인데, VIP 전담팀에서는 그저 뺀질거리고 일 못하는 신입사원으로 선배들의 꾸중을 듣는 캐릭터였다. 신재하는 촐싹거리고 무능하지만 절대 밉상은 아닌, 오히려 팀장 나정선(장나라 분)이 남편의 배신으로 힘들어할 때 힘을 북돋워주고 시원한 사이다 멘트까지 날릴 줄 아는 '볼매' 마상우로 시청자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 'VIP', 또 하나의 '가족'

'VIP'는 지난해 3월 배우 캐스팅이 완료되고 사전제작으로 4월부터 촬영에 돌입해 10월 방송 시작과 함께 모든 촬영이 완료됐다. 12월 방송이 종료되기 까지, 이 작품을 위해 무려 10개월 가까이 배우들, 스태프들이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VIP'는 방송가에서도 알아주는 '성격 좋은' 배우들만 모여 있어, 팀워크가 더욱 좋았다. 지난해 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서로의 수상에 박수 치며 진심 어린 눈물로 축하해 주는 이들의 모습에서 견고한 팀워크를 엿볼 수 있었다.

"거의 1년을 같이 보냈으니 더 끈끈해진 게 있어요. 제가 전에 사전제작 드라마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했었는데, 그때 멤버들과 지금도 연락 자주 하고 만나곤 하거든요? 'VIP'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족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에요. 함께 한 지난날들이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신재하는 실제로 'VIP' 배우들 중 나이로 막내다. 그는 누구 하나 꼽을 수 없을 만큼 모든 선배들이 자신을 예뻐하고 아껴줬다고 밝혔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제가 배우들 중에 막내였지만, (이)상윤 형도, (장)나라 누나도, (이)청아 누나도 다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와 많이 예뻐해 줬어요. 나라 누나는 워낙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 그 사랑을 모두에게 전파했고, 저와 나이차가 별로 안 나는 (표)예진 누나와는 촬영 틈틈이 빙고게임을 하며 친구처럼 지냈고, 극 중 절 혼내는 장면이 많은 청아 누나랑은 그런 장면의 티키타카를 살리려 재밌게 호흡을 맞췄고, (곽)선영 누나는 조금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흥이 터질 때는 같이 춤도 추고 그랬어요. 서로를 챙기고, 서로를 배려하려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던, 촬영 분위기가 정말 좋았던 현장이었어요."


▲ 마상우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들

사전제작 드라마는 방영 전에 모든 촬영을 끝내기에, 참여한 배우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방송을 느긋하게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마음까지 느긋할 수는 없다. 그만큼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연기를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사전제작의 묘미가 있죠. 아무래도 조금 더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게 돼요. 그래서 더 잔인한 면도 있어요. '저건 저렇게 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장면들이 보이니까요."

'VIP'를 보면 마상우가 VIP전담팀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을 때 자주 하는 행동이 있다. 쿠션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재하가 어리숙한 신입사원인 마상우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설정이다. 또 그는 직접 소품을 준비하는 열정도 보였다. '마블'을 좋아하는 마상우를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토르 쿠션을 구입했고, 나정선을 응원하기 위해 건넨 초콜릿 중에 헐크 모형을 준비하는 등, 자신의 캐릭터를 최대한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직접 소품까지 고민해 준비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했죠. 애드리브 대사도 넣곤 했어요. 마지막 회에서 마상우가 자기 밑에 들어온 신입사원한테 '쟤도 좋은 대학 나왔을 텐데'라고 혼잣말하는 부분은 제 애드리브였어요. 예전 같았으면 '이걸 해도 되나' 망설였던 부분들을, 'VIP'에서는 거리낌 없이 했던 거 같아요. 그만큼 감독님이 편하게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고, 모두에게 열려있는 분이셨어요. '함께 만들어간다'는 뿌듯함이 있었던 현장이었어요."

신재하는 직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보통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입사원은 어떤 마음일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한테 조언을 구하며 그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마상우로 분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신재하는 'VIP'을 본 시청자들에게 연기력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래도 당사자는 자신의 연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배우들이 자기 연기를 보고 잘했다고 생각은 안 할 거예요. 100개를 잘해도 하나의 실수만 보이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매 신, 매 대사, 아쉬웠던 점이 많죠. 그래도 이번 'VIP'를 통해 확실히 얻어간다고 생각하는 건 있어요. 힘을 빼고 연기하는 것이요. 상우가 '대화의 방'에서 자신의 정체를 인형 뒤에 숨기고 정선이를 위로해주던 장면을 찍을 때, 힘을 빼고 연기해봤어요. 상우라는 캐릭터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임팩트가 강한 장면이었는데, 그런 장면을 대하는 제 방식이 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꼈죠. 전작에서도 힘 빼고 연기하는 걸 고민했었는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거든요. 이번에는 제가 생각한 대로 좋은 결과물이 나온 거 같아요. 힘 빼고 연기하기, 그거 하나는 제가 이번에 잘 배워가는 거 같아요."


▲ 일부러 바꿨던 목소리 톤

실제로 만난 신재하는 차분한 말투에 기분 좋은 중저음 목소리 톤의 소유자였다. 붕붕 떠있는 마상우와는 사뭇 달랐다. 캐릭터에 맞게 목소리 톤을 조절한 신재하의 노력의 결과였다.

"상우는 일부러 제 톤보다 좀 더 높였던 거죠. 캐릭터가 워낙 밝았고, VIP전담팀 내에 다른 멤버들이 전부 톤이 낮아서 거기에 저까지 낮아버리면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질 거 같아 일부러 톤 조절을 했어요."

실제 신재하의 목소리 톤이 나온 적이 한 번 있긴 했다. 정선을 위로했던 '대화의 방' 신이었다.

"시청자들이 정선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답답함을 느꼈을 시기인데, 그때만큼은 정선이도 시청자도 위로받는 신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제 목소리 톤대로 대사를 했죠."

'VIP' 극 후반으로 갈수록 마상우는 나정선을 살뜰히 챙겼고, 나정선이 느낄 아픔에 공감하며 대신 분노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청자 사이에서는 "정선이가 바람난 남편 버리고 상우한테 가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마상우는 정말 나정선을 직장상사 이상으로 좋아했던 걸까. 마상우를 연기한 신재하에게 직접 물었다.

"전 상우가 정선을 이성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팀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혼내지 않는 좋은 선배로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런 선배에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걸 지켜보면서 조금씩 연민의 감정을 키워오다가 이성으로서 짝사랑하는 마음까지 커졌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 빨리 가기보다 차근차근 안전하게

2014년 데뷔한 신재하는 작품을 하나 둘 늘려가며 단역부터 조연, 주연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오고 있다. 빠르게 인지도를 올리지는 못 하더라도, 그렇게 단단하게 바닥을 다져 놓는 게 더 멀리 보면 훨씬 더 안정적인 방법이다. 신재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빨리 가고 싶기보단 안전하게 가고 싶었어요. 그 길이 뭘까 고민하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는데, 전 잘 왔다고 생각해요. 매년 쉬지 않고 두 작품, 많게는 네 작품까지 참여했는데, 너무 빨리도 너무 천천히도 아닌, 차근차근 잘 온 거 같아요. 이게 확 무너지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신재하도 불안정한 미래에 초조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에 들어갈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에 바로 차기작을 물색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과 불안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2019년이 되면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안 일어날 일은 안 일어날 텐데, 굳이 그런 걱정을 하면서 이걸 100% 즐기지 못한다면,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죠. 그래서 마음가짐을 고치려고 했고, 2019년에 한 '웰컴2라이프'와 'VIP'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연기에만 집중했어요.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담, 그런 거 다 내려놓고 오직 맡은 캐릭터만 생각했어요. 그러니 마음도 편하고 여유도 찾게 되더라고요."


신재하에게 2019년은 인간 신재하로서도 배우 신재하로서도 모두 성장한 한 해였다. 그래서 더 뜻깊고 소중했다. 신재하는 경자년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매년 한 해를 돌아보면 나름 잘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2019년은 제 개인적인 안정을 많이 찾은 해였어요. 어딘가에 휩쓸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차분하게 해쳐나갈 수 있는, 인간 신재하가 성장하는 한 해였던 거 같아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2020년도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쫓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요."

[사진=백승철 기자, 'VIP' 스틸컷]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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