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공유라서, 공유니까 가능했던 것

김지혜 기자 입력 2019. 11. 22. 19:45 수정 2019. 11. 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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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 김지혜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공유의 롤은 득인 동시에 실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대현은 속된 말로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볼법한 '흔남'이었다. 아내인 지영이 육아와 가사로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돕거나 환경 자체를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친가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아내의 정신적 고통 사이에서 그 또한 나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지만, 소설은 대현의 시선이나 목소리를 딱히 보여주지 않았다.

영화로 재탄생한 '82년생 김지영'에서 대현의 캐릭터는 보다 선명해졌다. 공유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관통한 대현은 연출이나 각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자체로 제2의 생명력을 부여받은 셈이다. 공유의 힘이다.

공유가 연기한 캐릭터 대현은 양명성을 띤다. 캐릭터로는 바로 섰으나, 극 안에서 갈등 요소를 약하게 만들어버린 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라서, 공유니까, 공유기에 가능했던 영화 속 안팎의 역할을 되짚어 봤다.

◆ "주인공이 아니라도…" 공유를 움직인 이야기의 힘

공유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언론시사회에서 보고 울었다. 그 사실을 언급하자 "이 영화를 보고 안 울면 이상하지 않나요?"라고 머쓱해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보다 영화를 보고 더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영화적 힘도 있고, 음악이랑 어우러지다 보니 더 감성을 건드리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배우들의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았고요."

가장 마음이 갔던 건 김지영 가족들에 대한 묘사였다고. 공유는 "지영의 엄마가 지영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 마음이 가더라고요. 엄마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거라 더 세게 다가왔어요. 시나리오에서도 슬픈 장면이었지만 김미경 선배님이 신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그 감정이 길게 끝까지 가더군요."라고 말했다.

공유의 컴백작은 업계의 관심사였다. '밀정', '부산행'으로 흥행 가도를 이어온 그가 선택할 영화는 당연히 주인공에 대작일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공유는 '82년생 김지영'의 대현 역할을 택했다. 모두가 놀란 선택이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바로 '나 이거 할래!' 했어요. 소속사 대표조차도 '이렇게 빨리? 바로 괜찮겠어?'라는 반응이셨죠.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님도 놀라시더라고요. 바로 감독님을 만났어요. 제 첫 질문이 '이 시나리오 저한테 왜 주신거에요?'였어요. 이 분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게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당연히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한번 제안해본 건데 한다고 해서 놀라셨죠?'라고 장난스럽게 묻기도 했어요. 감독님은 '진심으로 공유 씨와 가장 하고 싶다'라고 하셨어요. 가장 원하는 배우라 되든 안되든 진심을 다해 제안해보자고 하셨다고... 그 앞에선 얘기 안 했지만 진심으로 기쁘고 좋았어요."

'대한민국 가장 평범한 남편'을 연기하기 위해 공유는 많은 걸 덜어냈다. 연기에도 힘을 빼고, 외모의 긴장감도 풀어놓았다. 단단한 근육질 몸매를 가졌던 공유는 몸을 10kg 가까이 불렸다.

"제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한다는 건 아무래도 편해요. 나이대가 낮거나 높으면 인위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면에서 대현은 좋았죠. 물론 '공유가 하기엔 어울리지 않아' 할 수도 있는 역이지만... 제가 결혼을 안 해서 그렇지, 애 한 둘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은 나이잖아요. 오히려 이제 막 시작하는 풋풋한 연인의 느낌을 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뭘 어떻게 해도 공유는 공유지만, 남몰래 기울인 노력은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로 묻어 나왔다. 전작 '남과 여'에서도 그랬지만, 공유는 일상 연기에서도 장점을 보여주는 배우다.

"연기를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지 생각하고 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한 거 같아요. 촬영 공간이라는 게 배우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편안한 연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제가 느끼는 것을 반영하니까요. 대현은 주로 관찰자의 입장이잖아요. 지영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입장이기에 그것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또 유미 씨가 워낙 연기를 잘하잖아요. 전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대현은 영화 안에서 톤 앤 매너를 잡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다. 소설보다는 선명하게 캐릭터와 역할을 구축하면서도 김지영 중심의 영화에서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유는 감독과의 오랜 대화 끝에 대현의 색깔과 결을 정할 수 있었다. 섬세한 교정이었다.

"'아, 진짜 눈치 없네'라고 느끼게 해야 하면서 밉게 보이진 않아야 하잖아요. 장면 하나하나 계산하고 작업한 건 아니지만 대현의 기능적인 롤에 대해서는 인지를 했어요. 사실 대현이 좀 더 욕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 했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그런 면을 모르면 어떡하지? 걱정했거든요. '저런 남편 있으면 괜찮지 않아?' 하는 시선이 우려됐거든요. 그동안 제가 해왔던 역할이 있다 보니 '공유는 공유잖아' 할 수 있잖아요. 그걸 허물어뜨리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저런 남편이 어디 있어?' 하는 생각을 하시게 된다면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되는 거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 정도의 자상함을 갖춘 게 오히려 더 영화적이지 않았다고 봐요.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빵점 자리 남편이었는데 아내가 아프다고 변하면 그게 더 가식적이고 영화적인 캐릭터가 될 거 같거든요. 또 '저 거 하려고 공유 썼구만'이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고요. 조금 덜 다정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감독님의 결정이 옳았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 '부산 남자' 공유가 본 엄마 그리고 누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공유의 고향은 부산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 일컫는 경상도 문화권 아래에서 자란 공유는 김지영의 삶과 애환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을 것 같았다.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아니시지만 할아버지, 그 윗대 분들은 확실히 가부장적인 면이 많았어요. 어릴 때 '제사 지내고 나서 왜 남자와 여자들이 밥을 따로 먹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의문을 제기할 나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하나를 두고 일반화할 순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과거 집안에서 본 어떤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또래의 고향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어요. '너네 집은 어땠어?' 이런 이야기를 처음 주고받았던 것 같아요. 의외로 보수적인 집안이 있고, 덜 가부장적인 집도 있고... 각자 처했던 환경이 다른 만큼 영화도 각각에게 다르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공유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가족과 전과는 다른 주제의 대화를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뜸 "나 어떻게 키웠어?"고 물었어요. 엄마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요. 누나가 한 명 있어요. 저와 비교해 차별을 당했냐고요? 글쎄요. 누나 입장에서는 당했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았을까요. 이번에 한번 물어보려고요. 다행히 앞 대의 집안 분위기가 대물림되는 환경에서 자라진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모르고 지나간 부분도 있을 테지만요."라고 말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처럼 이른바 '페미니즘 소설'에 관심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공유는 "어떤 게 페미니즘 소설인지 잘 모르고, 그걸 일부러 찾아서 본 적은 없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최근 자신이 읽은 소설을 몇 권 언급하며 "여성 작가가 쓴 글인데 페미니즘 소설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게 대한 에세이에요. 우리가 관계 속에서 알고 혹은 모르고 가하게 되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어요. 그 분의 문체를 좋아해요. 제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그거거든요.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서요." 라고 따뜻한 눈빛과 낮은 음성으로 전했다.

◆ "내 이미지, 상업적으로만 소모되고 싶진 않아"

공유는 자신을 객관화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로서, 대중이 자신의 어떤 면을 사랑하고 열광하는지를 알고, 그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안에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깨야 한다고 의식하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감사하죠. 그런 걸 의식하진 않지만 작품을 선택하는데 때로 방해가 될 때도 있어요. 상업적으로만 소모되고 싶지 않은, 상업영화를 하고 있지만 마냥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건 싫어요. 공유가 가진 대중의 호감, 특히 여성들이 가진 호감이 있겠죠. 그런 면이 작품에 상업적으로'만' 사용된다면 그건 별로에요. 늘 진심을 다해서 영화를 하려고 해요. 대중이 '이런 역할엔 안 어울리지 않아?' 하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하고, '꽤 보편적으로 잘 그렸네'하면 성공인 거죠. 좀 다른 맥락의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 대해 과도하지 않는 선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대중이 편하게 손을 뻗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둘러싼 과도한 관심과 불붙은 논란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센 척하는 게 아니라 두렵진 않아요. 일단 하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서 했으니까요. 또 시나리오를 보고 막연하게 여겼던 만족감을 작품에서 찾았어요. 더 이상의 두려움이 생길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에 기꺼이 참여한 공유는 궁극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한 편으로 갑자기 모든 게 바뀌진 않겠죠. 다만 우리 다 같이 이야기해보자는 거죠. 저는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이 영화라는 특성에 잘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의 결말이에요. 소설과 영화의 장르적 특성은 분명 다르니까요. 감독님의 선택에 찬성해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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