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속 북 공작원·인민군의 얼굴엔 왜 흉터가 있을까

김표향 2019. 10. 2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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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조'의 북한 공작원 임철령(현빈). 자신의 신념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얼굴 위 흉터는 베테랑 공작원으로서의 이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북을 오가며 임무를 수행해 하는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CJ엔테테인먼트 제공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박유희 지음

책과함께 발행ㆍ584쪽ㆍ3만3,000원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 ‘공조’와 ‘강철비’(2017)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미남 스타가 북한 공작원 또는 인민군 장교를 연기했다는 점이다. 2010년대 남북 관련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최근 남북 관계 영화 중 관객들이 알아채기 힘든 공통분모가 또 하나 있다. 2000년대 들어 남북 관련 영화의 북한 쪽 주인공들은 얼굴에 흉터를 지니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오경필(송강호)도,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이진태(장동건)도, ‘웰컴 투 동막골’(2006)의 리수화(정재영)도, ‘고지전’(2011)의 현정윤(류승룡)도 얼굴에 흉터가 있다. ‘공조’의 임철령(현빈)과 ‘강철비’의 엄철우(정우성)도 예외는 아니다. 군인이나 공작원으로서 산전수전을 겪은 인물의 강인함과 노회함을 표현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반공이 국시로 여겨지던 시절 만들어진 반공 영화 속 북한인의 얼굴엔 흉터가 없다. 북한은 타도해야 할 악이고, 악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착취자의 면모를 강조하려 몸은 살찌거나 얼굴은 매끄럽게 묘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2000년대 영화 속 북한인의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평론가인 박유희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착학과 교수는 시대와 대중의 인식 변화, 그리고 이를 반영하려는 영화계의 움직임에서 답을 찾는다.

1950~1980년대 영화 속 북한인은 절대 악이었다. 전쟁 직후 만들어진 ‘피아골’(1955)은 빨치산을 스크린 중심에 놓았는데 대중에게 반공의식을 고취시키기는커녕 빨치산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고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비판 받았다. 5ㆍ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에 대한 검열은 더 엄격해지고 체계화됐다. 한국 영화계에서 요절한 천재로 인식되는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당시 북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검열의 잣대를 명확히 보여준다.

‘7인의 여포로’(1965)는 북한군의 포로가 돼 끌려가다가 남한으로 생활하는 국군 여군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보부 영화과의 상영 허가를 받았지만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문제 삼으면서 용공 논란에 휩싸였다. 인민군이 여군 포로를 겁탈하려는 중공군을 교전 끝에 섬멸하는 내용 등이 문제가 됐다. 북한 사람은 민족애조차 없는 악마로 묘사돼야 하는데, 인간적인 면모를 그렸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7인의 여포로’는 중앙정보부 요구대로 재편집돼 ‘돌아온 여군’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이후 북한군에 대한 다면적 해석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모두가 악마의 얼굴(1979년 나온 애니메이션 ‘똘이장군’에선 돼지의 형상을 한 수령, 늑대와 여우 모습의 부하로 표현된다)을 한, 무찔러야만 하는 적일 뿐이다. ‘7인의 여포로’가 하나의 기준이 된 셈이다.

영화 '고지전'의 인민군 장교 현정윤(류승룡) 얼굴에도 흉터가 있다. 한국전쟁 개전 초기 그의 얼굴은 말끔하고 공산 통일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으나, 흉터진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하다. 쇼박스 제공

이후 세상은 달라졌고,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고, 영화 속 북한인의 모습은 변했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지평 위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흉터는 왜? 저자는 흉터를 북한 공작원 또는 인민군을 적으로 보는 마지막 표식으로 해석한다. 흉터는 북 공작원과 인민군을 매혹적인 악당으로 인식시키고 동시에 역사의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한편 여전히 존재하는 경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책은 남북 관계 영화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의 역사를 가족과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등 5가지 표상을 통해 반추하고 한국 사회를 되돌아 본다. 5가지 표상 아래에는 21개의 하위 표상을 설정하고 한국 영화들을 분석한다. 가족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모했고, 영화가 당대 이미지로서 가족을 표현한 방식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해석을 다는 식이다. 한국 영화 100년을기념하는 가장 의미 있는 접근 중 하나다. 앞에서 서술한 남북 관계 영화는 국가라는 표상 아래 북한 코너에서 다룬다.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표지. 책과함께 제공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mailto: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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