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출신 가족이 직접 만드는 정갈하고 기품있는 평양냉면, 서초동 '설눈'

유재웅 2019. 8. 12.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려물냉면
[미식부부의 맛집기행-79] '설눈이 뭐지? 눈 설(雪)이라는 말을 잘못 쓴 것 아닌가? 북한에서는 눈설을 설눈으로 거꾸로 쓰나!' 북한 출신 가족이 운영하는 냉면집이 생겼으니 한번 가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처음 가게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의문이었습니다. 시식 후 별도로 날을 잡아 문연희 대표(28)와 인터뷰하면서 제일 먼저 이 궁금증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눈설을 잘못 쓴 것은 아니냐고. '설눈'은 정월 초하루인 설날에 내리는 상서로운 첫눈이라는 뜻이에요. '설눈'으로 가게 이름을 지은 것은 설날에 눈이 내리면 기분이 좋잖아요. 북한에서는 설날에 냉면을 먹는 풍습도 있고요. 이런 뜻을 두루 담아 설눈으로 지은 거예요." 설명을 듣고 보니 나름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서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 북한식 냉면을 파는 집이 여럿이 있는데 '설눈'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를 연이어 물었습니다. 명료한 답변이 바로 날아오더군요. "서울에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운영한다고 소문난 여러 냉면집을 가봤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한국식 냉면을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운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남한의 냉면과 '설눈'의 냉면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염도의 차이였습니다. 가게를 열기 전에 서울에서 냉면 투어 많이 다녔습니다. 염도계까지 들고 다녔는데 저희 집 냉면의 염도가 1도라면 냉면 잘한다는 집의 염도는 1.7~1.8 정도 나오더군요. 제 입맛에는 많이 짰습니다. 저희 집 냉면이 심심하다고 말씀하시는 손님들도 계셔서 염도를 조절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통 평양냉면의 맛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고수하기로 가족끼리 결정해 지켜나가고 있어요. 이렇게 심심하게 하는 게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했고요."

이 집 냉면의 육수는 심심하면서 담백했고, 면발은 쫄깃했으며 육수와 냉면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3대째 냉면집을 운영하고 있는 집다운 노하우가 담겨있더군요. 문 대표가 전해주는 맛의 비결은 이렇더군요. "육수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뼈 사골, 돈 사골 등 5가지 재료를 넣고 정성껏 고아서 만들고 있습니다. 메밀면은 통메밀을 껍질을 그대로 제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메밀껍질에 식이섬유와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이지요." 통 메밀을 제분하는 업체를 구하는 데도 애를 많이 먹었답니다. 문 대표가 요청하는 대로 메밀을 갈려면 작업할 때마다 기계 청소를 새로 해야 하는 등 번거롭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마침 강원도에 문 대표의 요청대로 제분해주겠다는 고마운 업체를 만나 매월 정기적으로 이용을 하고 있답니다. 메밀은 강원도에서 나는 국산 메밀을 사용하고 있고요.

설눈의 통메밀 냉면이 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는 것도 이 집만의 비법이 숨어 있더군요. 메밀은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 성분이 없어 100% 메밀로만 면을 만들려고 하면 죽이 되어버리지요. 메밀면의 점성을 높이기 위해 냉면집은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재료를 혼합해 사용합니다. 보통은 밀가루나 고구마 전분을 섞어 사용하는데 설눈에서는 감자 전분을 사용하는 게 특징. 이 집 물냉면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도 인상적입니다. 맛있는 육수에 쫄깃한 면발을 담은 다음 면발 위에 오이, 무채, 편육 한 점, 가늘게 썬 노란 계란 지단 등 10가지를 올려놓는데 냉면의 밋밋한 맛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노랑과 초록 등 다양한 색상이 눈까지 즐겁게 해줍니다.

`설눈`의 문연희 대표
평양에 살다가 서울로 온 지 이제 3년 차인 문 대표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20대 여성의 느낌이 납니다. 다방면의 풍부한 지식, 경쾌한 말투,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는 자신감, 외모와 의상 등등을 보면 '평양에서 온 지 3년 차 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서울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서초동 법조 타운거리 건너편 뒷골목이긴 하지만 세련되게 인테리어를 해놓은 가게를 오픈한 것 역시 꼬리를 물고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이렇게 가게를 차리려면 비용이 제법 들었을 텐데 무슨 돈으로?' 이 집을 찾을 독자님들도 궁금해하겠다 싶어 제가 대신 물어보았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문 대표는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계신 분이 많다며 주저함 없이 바로 답변을 해주더군요. "저희 친가나 외가 모두 제주도가 원래 고향이세요. 그러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제법 큰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일본에서 자리 잡고 잘들 사시다가 부모님이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가서 평양 생활을 하게 된 거지요. 평양에 살 때도 그랬지만 서울 와서 가게 차리는 데도 일본 계신 친척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서울말을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강남에서 익스트림 스포츠 매장을 친척이 운영을 했는데 거기에서 판매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제품 판매로 손님들과 많은 말을 나누다 보니 금방 서울말에 익숙해지더라고요."

`설눈` 전경
설눈의 냉면은 문 대표 가족이 힘을 모아 만들고 있습니다. 좋은 손맛을 갖고 있는 문 대표 어머니는 문 대표보다 1년 늦게 서울에 합류를 했고요. 'Since 1977. 평양에서 3대에 걸쳐 냉면 점을 운영한 주인장 가족이 직접 요리하고 경영하는 집'이라는 설눈의 안내 문구 그대로 이 집 냉면에는 문 대표 가족의 40년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문 대표 친지 중 지금도 평양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는 분도 계시는 등 이산가족이어서인지 막힘없고 경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문 대표지만 언뜻언뜻 조심성과 신중함이 몸에 배어 나타납니다. 서울에 들어올 때까지 소설책 몇 권의 사연이 있었겠지만 음식에 대한 글이라 더 이상 깊게 파고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서울과 평양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겉으로 드러나는 도시 모습만 보면 평양 사람들이 서울에 온다고 해서 별로 놀라지 않을 겁니다. 근데 서울과 평양이 크게 다른 게 있습니다. 옷 입는 거예요. 평양에서는 아무 옷이나 입기 어렵거든요. 몸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옷은 입지를 못해요. 하지만 서울에서는 어떠한 옷을 입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20대 여성이고, 자유의 소중함을 이렇게 가까운 데서 느끼나 봅니다. 가게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단골손님이 빠르게 늘어간다기에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외식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유명한 냉면집, 고기 집으로 가게를 키우고 싶어요!"

♣ 음식점 정보
△메뉴- 고려물냉면 12,000원, 고려비빔냉면 12,000원
- 평양온반 9,000원, 갈비탕 11,000원, 만둣국 9,000원
- 소고기수육 25,000원, 갈비찜 45,000원, 돼지고기편육 20,000원, 왕만두 8,000원, 녹두전 8,000원
△위치: 서울 서초대로 46길 20-7. (02)5959-9339
△영업시간: 09:00 ~21:00
△규모 및 주차: 54석, 전용 주차장은 4대 주창 가능(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권장)
△함께하면 좋을 사람: ① 가족 ★, ② 친구 ★, ③ 동료 ★, ④ 비즈니스 ★
♣ 평점
맛    ★ ★ ★ ★ ★
가격   ★ ★ ★ ★ ★
청결   ★ ★ ★ ★ ★
서비스  ★ ★ ★ ★ ★
분위기  ★ ★ ★ ★ ☆

[박정녀 하나금융투자 롯데월드타워WM센터 상무·유재웅 을지대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