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 신정주와 '마음속 1등' 조건휘, 젊은 당구바람 '우리가 이끈다'

강필주 2019. 8. 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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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BA제공

[OSEN=강필주 기자] 지난달 27일 막을 내린 '신한금융투자 PBA 챔피언십'은 사상 첫 한국인 프로당구 챔피언 신정주(24)의 탄생으로 화제가 됐다. 신정주는 유럽 강세 속에 대한민국 당구의 우수성을 입증해 보였다.

한국 당구계는 신정주의 우승을 또 다른 의미에서 반기고 있다. 중년이 즐기는 스포츠 이미지를 신정주가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정주와 결승에서 명승부를 펼쳐 보인 조건휘(27) 역시 20대를 대표하는 젊은 선수라는 점에서 반기고 있다. 신정주와 조건휘의 결승대결은 프로당구 PBA를 넘어 한국 당구에 부는 새로운 바람이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지난달 31일 신세대 당구 중심에 선 신정주와 조건휘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어봤다. 

▲ 아버지가 이끌어 준 당구의 길

'부산사내' 신정주와 '서울사내' 조건휘가 큐를 잡게 된 계기는 똑같이 아버지 때문이었다. 

신정주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게임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몰래 게임을 즐기다 엄격한 공무원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그러다 중2 때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당구장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1년 후 중3때 선수 등록을 마쳤고 전국체전에 나가 2위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당구의 길로 들어섰다. 

신정주는 "그 때까지만 해도 당구장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당구를 치는 줄도 몰랐다. 알고 보니 개인 큐대도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 동호인이셨다. 내가 학교 공부를 싫어해서 그러셨는지 당구 선수를 반대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말해주셔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당구를 하다보니 성적이 나왔고 그러면서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건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당구에 입문했다. 구력만 보면 신정주와 같다. 조건휘는 "당시 아버지가 부업으로 당구장을 차리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구장을 차려놓고 관심이 없으셨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내가 당구장을 운영하게 됐다. 사람도 뽑고 손님도 맞이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치게 됐다"고 밝혔다.

조건휘는 고2 때 우연히 서울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갔다. 결과는 처참했지만 당구에 몰입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연맹 측에서 이충복 선수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실력을 다지게 됐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는 조건휘가 당구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사진]PBA제공

▲ 라식, 기흉 수술 그리고 수전증 

신정주는 20살 때 라식수술을 했다. 당구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다. 공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당구 선수에게 라식은 좀처럼 쉽지 않은 결정이다.

신정주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당시 어머니, 누나도 해서 같이 했다. 크게 부작용도 없고 위험하다 생각은 안했다. 지금 아무런 이상이 없다. 만약 시력이 떨어지면 또 수술을 할 것 같다. 아직 괜찮다"고 오히려 담담해 했다.

그러자 조건휘는 "원래 저도 라식을 생각했다. 그런데 누나가 라식을 했는데 10년 후 시력이 떨어지더라. 그래서 라식을 망설이게 됐다"며 신정주의 말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신정주는 폐에 기포가 생기는 기흉 때문에 폐 수술을 하기도 했다. 고1 때 왼쪽 폐를 시술했는데 재발, 수술을 한 신정주는 고3 때 오른쪽 폐에도 기흉이 생겨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신정주는 이 때문에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3년 동안 입영통지서가 날아오지 않으면서 병역 면제 판정이 내려졌다.

신정주는 "기흉은 급격한 성장기에 키 크는 속도를 따르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하더라. 중학교 때 3년 동안 20cm가 컸다. 고교 때는 아주 마른 몸매였다"면서 "면제 판정 후 조금 느슨해진 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잘해야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게다가 신정주는 평소 양손에 수전증이 있다. 긴장을 하게 되면 손 떨림은 더욱 심하다. 심할 경우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다. 신정주는 "이번 대회는 그런 떨림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 같다"면서 "종전에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경기가 진행돼 모든 사람이 당구대만 지켜본다는 느낌 때문에 긴장감이 컸다. 하지만 PBA는 활발한 분위기에 음악도 있다. 전체적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긴장이 빨리 풀리는 것 같다"고 스스로 분석했다. 

[사진]PBA제공

▲"당구계 아이돌? 애늙은이"

신정주는 '당구계 아이돌'로 불린다. PBA 출범 때부터 신정주를 주목하게 만드는 별명이다. 정작 신정주는 그런 별명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모르고 있다. 신정주는 "왜 그런 별명이 지어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싫어할 이유는 없다"면서 "아이돌이란 단어에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웃어보였다.

오히려 신정주는 스스로 '애늙은이'에 가깝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어른들과 많이 친해서 그런지 '애늙은이' 소리를 많이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당구장에서 50대 어른들과 함께 대화를 해와서 그런지 또래들이 유치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고 웃었다. 우승상금 1억 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 묻는 질문에도 "부모님 대출금을 갚아드리고 아버니는 옷, 어머니 시계를 사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애늙이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예비신부, '마음 속 1등은 자기'란 말에 감동"

조건휘는 올해 10월 5일 결혼식을 올릴 예비신랑이다. 4살 연하 예비신부는 4년 전 소개로 만난 조건휘의 첫사랑이기도 하다. 그 첫사랑은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조건휘에게 과연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줬을까.

조건휘는 "예비신부가 '내 마음 속 1등은 자기'라고 말해주더라. 솔직히 감동했다"면서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많이 풀렸다. 지면 아쉬움도 많이 남고 화도 나고 그렇다. 예비신부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확 풀리더라"면서 싱글벙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정주도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다. 신정주는 "부모님, 당구장 분들, 친구, 여자친구 등 주변의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32강을 끝내자마자 대한당구선수협의회 임정완 회장님이 제게 '드디어 32강을 넘었구나'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 때 내가 32강 징크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그 징크스를 알았다면 이번 대회에서도 탈락했을지 모르겠다. 그걸 몰랐던 덕분에 징크스도 깨고 자신감도 얻은 것 같다"고 웃었다.

[사진]PBA제공

▲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부담감"

'최초'라는 수식어는 적지 않은 책임감이 지우기도 한다. 우승감격이 어느 정도 가신 신정주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부담감이 있다. '잘하자'는 생각으로 대회에 나왔는데 '다음 대회에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주변의 시선이 의식된다. 스스로도 슬럼프가 오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며 걱정부터 살짝 털어놓았다.

그에 반해 조건휘는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결승까지 간 것만으로도 많이 기쁘다. 나름 괜찮았던 것 성적 같다"는 조건휘지만 "한 점 한 점에 승패가 좌우된다는 점에서 결승전이 계속 생각난다. 연습할 수 있는 공들이 생겼다.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다시 연습을 시작할 것 같다"고 다짐, 전의를 불태웠다.

신정주와 조건휘는 같은 목표가 있다. 어떤 대회든 꾸준하게 성적을 내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신정주는 "너무 빨리 우승을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면서 "사실 '내가 봐도 운이 많이 작용했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신정주는 잘치니까 저 성적이 당연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롤 모델인 최성원,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처럼 항상 꾸준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결혼을 통해 좀더 안정을 찾게 될 조건휘 역시 "이번 2등이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매 대회 8강, 4강, 결승,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올해 목표는 왕중왕전에서 우승하고 싶다"면서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앞으로 10~20년 동안 계속 상위권에 머물며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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