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트래시태그가 부린 '마법'..부산대 길거리 청소열풍

조아현 기자 2019. 7. 1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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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잔 건물 벽틈 줄줄이..바닥엔 담배꽁초 쌓여
개인이 주체로 나선 생활운동.."순환경제 가능성"
15일 오후 6시30분쯤 부산 금정구 부산대 인근 도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건물 벽 틈새에 끼여있던 쓰레기를 꺼내 하나씩 분리수거 하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부산대학교 인근 번화가와 길거리를 중심으로 한국판 트래시태그(trashtag) 활동이 번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트래시태그는 쓰레기를 뜻하는 영어 트래시(trash)와 해시태그(hashtag)의 합성어다. 시민들이 직접 쓰레기를 치운 뒤 깨끗하게 변한 장소의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일종의 환경보호운동이다. 특히 해외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부곡동에서 길에 아무렇게나 내다버려진 쓰레기를 손수 치우는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이웃 주민들과 대학생은 물론 환경미화원, 공무원까지 힘을 보탠 자원봉사자 그룹 '클린지킴이'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동네 곳곳을 청소하고 길거리가 변한 모습을 SNS를 통해 사진과 글을 올린다. 또 함께 동참하는 주민들의 글에 댓글로 격려하고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누른다.

이들의 트래시태그 챌린지 운동이 시작된지 40여일만에 참여 인원은 830명을 넘어섰고, 게시물과 댓글은 5000개를 돌파했다. 쓰레기 청소에 열광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관할 구청은 크게 환영하는 모습이다.

◇한국판 트래시태그 운동 '금정클린지킴이' 열기 확산…암 투병 봉사자도

벽틈새와 구조물 사이에 쌓여있는 쓰레기와 한 평 남짓한 길바닥에서 나온 담배꽁초, 화단 수풀 안에서 나온 반려견 배변봉투까지 쓰레기 무단투기 행태도 다양하다. /© 뉴스1

15일 오후 6시쯤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1번 출구 앞에서 이들을 만나 따라가봤다. 번화가 건물 벽 틈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쌓여있었고, 번화가 술집 앞에 있는 한 평 남짓한 길가에서만 쓰레받기 절반을 채울 정도의 담배꽁초가 나왔다. 한 봉사자는 "오후 8시가 넘으면 길바닥에 널린 담배꽁초는 새하얀 눈이 덮인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은 보도블럭과 하수구 틈에 끼여 잘 빠지지 않는 담배꽁초를 일일이 손으로 긁어내고, 무단투기로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헤집어 하나씩 분리수거했다. 또 상가 앞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탓에 쓰레기더미로 변한 과일박스를 차곡차곡 정리하고는 과일가게 사장을 찾아가 무단투기를 하지 않도록 타이른다.

젊은 사장은 곧 머쓱한 얼굴로 죄송한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멈추지 않고 옆 가게 정육점과 편의점까지 들러 계도 활동을 마치고서야 발걸음을 옮긴다. 남자친구와 함께 지나가다가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무심코 버리던 20대 여성이 봉사자들의 레이더망에 잡혔다. '방금 담배꽁초를 버렸느냐'는 물음에 발뺌하다 봉사자들이 가까이 다가가 '버리면 안된다'고 정중히 요구하자 '죄송하다'면서 다시 발길을 돌려 담배꽁초를 주워갔다.

김옥득씨(62)는 "사실 무단투기 현장을 목격하고 뒤따라가 '담배꽁초 버리지 말아주세요. 주워담아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혹여나 해코지를 당할까봐 속으로는 덜덜 떨린다"며 "째려보거나 핀잔섞인 거절 답변이 되돌아 올 때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강순화씨(55)는 "아파트 경비원 한 분이 담배꽁초를 버리는 입주민에게 계도활동을 함부로 했다가 민원이 들어와 해고당할까봐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경우를 봤다"며 "자발적으로 하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봉사자들 중에서는 암 투병 중인 사람도 있다. 창틀(새시) 회사를 운영중인 허창구씨(59)는 지난 2월 대장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병행 중이지만 입원하지 않는 날이면 항상 클린지킴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허씨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누군가 해야 하지 않겠나. 금방은 안되겠지만 서서히 좋아질 거라 희망을 품어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예상치 못한 열풍에 관할 구청 공무원들은 '마법같은 일'이라면서 트래시태그 챌린지 운동에 동참하는 주민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올해 12월까지 트래시태그 챌린지와 동네 쓰레기 청소를 책임지게 된 클린지킴이들. 이들이 손수 제작한 피켓과 개조된 장바구니 캐리어가 눈에 띈다. 오른쪽부터 김옥득(62), 박지선(62), 서수자(59), 강순화(55), 허창구(59), 곽연숙(61)씨. © 뉴스1 조아현 기자

◇이타심과 격려가 만들어낸 거리청소 열풍…"새로운 시민운동 패턴 주목"

부산 금정구는 서동지역에서 벌어지는 무단투기로 골머리를 앓았다. 구에서 발생하는 무단투기 쓰레기 가운데 약 40%가 서동로에서 발생했지만 수거하는 일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난 4월 자발적인 주민참여를 도모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금정클림지킴이' 모집을 시작했다. 무단투기 단속과 생활쓰레기 수거를 위해 트래시태그 챌린지 운동을 도입한 것이다.

대학생 홍보단이 진행한 '클린아이' 쓰레기 청소 운동은 당초 10여일만 하기로 했으나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한 달이 넘도록 지속됐고 이를 지켜보던 공무원들도 트래시태그 챌린지에 참여 의사를 잇따라 밝혔다. 서동지역 골목길과 상습무단투기 지역을 중심으로 청소운동을 전개하는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쓰레기양도 크게 줄었다.

SNS를 통한 청소운동 파급 효과는 컸다. 5월28일부터 트래시태그 챌린지에 뛰어든 클린지킴이들은 40여일만에 830여명의 동참을 이끌어냈고 SNS에 올린 사진 게시글과 댓글을 합하면 약 5000개를 넘어섰다. 주민들은 쓰레기를 '보물찾기'라고 부르면서 매일 쓰레기봉투를 들고나와 거리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특별한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루 1차례 트래시태그 챌린지를 성공하면 포인트를 받는 것이 전부다. 거리를 청소하거나 무단투기 근절을 홍보하면 20포인트, 30포인트씩 점수가 누적되는데 최대 600점을 모으면 연말에 종량제 10ℓ짜리 쓰레기 봉투 30장을 받는 것이 전부다.

포인트는 600점이 최대인데도 매일 지속하는 활동에 2000점을 넘어선 사람이 허다했다. 금정구는 클린지킴이들이 쓰레기 청소에 사용하는 장갑과 마스크 등을 자비로 구입하고 필요한 도구까지 직접 제작하자 활동비를 지원할 수 있는 조례를 상정했다. 해당 조례가 26일 구의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2020년 1월부터는 이들에게 보다 폭넓은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별다른 이득도 없는 쓰레기 청소에 왜 주민들이 열심인 것일까.

김희재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를 통해 인증사진을 남기고 서로 격려하면서 타인의 동참을 유도하고 무엇보다 쓰레기를 치우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지켜갈 때 새로운 시민운동 패턴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환경오염은 전 지구적 문제지만 국가나 시민단체보다도 이제는 개인이 주체로 나서서 생활운동을 일으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환경문제를 환기시키고 순환경제 구조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보인다"고 전망했다.

choah45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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