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를 놀이로 바꾼 1020들

김승현 기자 2019. 7. 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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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쓰레기마트’. 각양각색의 에코백을 어깨에 둘러멘 20~30대 남녀 20여명이 매장 안과 밖을 가득 메웠다. 가방 속에는 빈 플라스틱 페트병과 찌그러트린 캔들이 보였다. 한 여성이 매장에 설치된 순환 자원 쓰레기통(네프론)에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고 쓰레기를 넣자 ‘폐기물 인식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잠시 후 화면에 포인트가 떴다. 캔은 개당 15포인트(원), 페트병은 10포인트였다. 여기저기서 ‘신기하다’, ‘빨리 하나 더 넣어봐’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쓰레기마트'에서 시민들이 각자 빈 캔과 플라스틱 통들을 자원순환 쓰레기통에 넣고 있다. 쓰레기마트는 쓰레기를 현금 포인트로 바꿔 매장에서 판매하는 헝겊지갑 등 친환경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김승현 기자

쓰레기마트는 재활용 로봇 스타트업 수퍼빈이 ‘환경 보호를 놀이처럼 즐겨보자’는 취지로 세계자연기금(WWF), 코카콜라와 함께 지난달 27일 문을 연 재활용 마트다. 쓰레기를 넣어 모은 포인트는 현금으로 바꿔, 매장에 전시된 페트병 가방이나 헝겊으로 만든 브로치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연남동에 사는 대학생 오모(26·여)씨도 집에서 빈 페트병과 캔 10개를 싸 와 포인트로 바꿨다. 오씨는 "어차피 버릴 쓰레기인데 돈으로 바꿀 수 있어 유용한 것 같다"며 "포인트 적립 게임을 하는 것 같이 재밌어 자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인근 햄버거 매장 직원 2명이 빈 캔 50여개를 흰색 투명 봉투에 넣어와 10여분간 포인트로 바꿔가기도 했다. 수퍼빈 이수지 매니저는 "지난해 초부터 전국 지자체 80여 곳에 네프론을 운영하고 있다"며 "쓰레기로 모은 현금 포인트가 친환경 상품 구매까지 이어지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매장을 열었다"고 했다. 이달 3일까지 총 180명 시민들이 캔 403개, 플라스틱 페트병 495개를 현금 포인트로 바꿔갔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환경보호 활동을 놀이처럼 즐기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쉽고 재밌게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해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플로깅(plogging)’이 대표적인 예다. ‘줍다(pick up)’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인 플로깅은 조깅하러 나갈 때 비닐봉지나 작은 손가방을 들고 나가 쓰레기를 주워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국내에서는 조깅 동호회를 중심으로 확산된다. 2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플로깅 키워드를 검색하면 1000여개의 후기 게시물이 뜬다.

광주광역시에서 러닝 모임 ‘DTR_gwangju’를 운영하고 있는 이룡재(23)씨는 지난달 초 플로깅을 진행했다. 18명이 광주 펭귄마을부터 남광주시장을 도는 4㎞ 구간을 1시간가량 달리며 담배꽁초나 캔 등을 주워 담았다. 이씨는 "완주에 대한 부담이 덜하면서 건강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챙길 수 있어 젊은 참여자들 만족도가 높았다"며 "앞으로 한 달에 1~2번씩 플로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자체들이 이 같은 환경 보호 놀이를 주도하기도 한다. 서울 관악구는 4월 말부터 한 달간 ‘트래시태그(trashtag)’ 이벤트를 진행했다. 트래시태그는 골목길이나 공공장소 등에 쌓인 쓰레기를 치운 뒤 청소 전·후 사진을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캠페인이다. 한 달 동안 주민 110여명이 관내 관악산과 도림천 등을 청소하며 이벤트에 참여했다. 대구 달성군시설관리공단도 지난 4월 말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트래시태그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지인 10여명과 트래시태그에 참여했던 직장인 조용삼(25)씨는 "청소 전후 결과가 뚜렷하게 비교돼 사진을 볼 때마다 보람이 더 크게 느껴진다"며 "친구들이 게시물에 단 칭찬 댓글을 보며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이 환경 보호 활동에서도 현금 포인트나 소셜미디어에서의 긍정적 피드백처럼 구체적인 이익에 끌리고 있는 것"이라며 "이익과 의미가 결합한 이색 환경보호 활동에 대한 젊은층의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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