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임수정의 온도

아이즈 ize 글 김리은 2019. 6. 1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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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김리은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임수정이 연기하는 배타미는 마치 냉동실에서 갓 꺼낸 냉동인간 같다. 10세 연하의 음악 스타트업 대표 박모건(장기용)과 있어도 나이차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외양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든 급속으로 냉정을 되찾는 모습 때문에 그렇다. 업계 1위 포털 유니콘에서 일하는 그는 더 이상 가치관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한때 존경했던 선배 송가경(전혜진)에게 맞서고, 의도치 않게 책임을 덮어쓰고 유니콘의 검색어 조작 청문회에 출석하게 되자 현직 의원의 성매매 정황을 폭로해 정치권과 유니콘 모두를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박모건과 충동적으로 하룻밤은 보내도 그의 데이트 신청은 냉랭하게 거절한다. 옛정보다 신념을 중시하고, 자신이 약자인 상황에서도 전략적으로 판도를 뒤바꾸며, 결코 감정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배타미의 강단은 임수정의 서늘한 얼굴을 통해 시청자의 눈 앞에 제시된다. 하얀 피부는 손을 대보기도 전에 차가움이 느껴질 정도고, 눈빛은 바라보는 이를 압도한다.

차갑다고 해서 온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배타미가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이유는 단지 스스로에게 더 “옳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그는 자신의 사표를 들고 집 앞에 들고 찾아온 송가경의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화해를 기대하고, 청문회에서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한 색깔의 립스틱을 바른다. 박모건에게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끼면서도, 그와의 하룻밤을 굳이 “한심한 기억”이라 정의하는 이유는 그날의 충동적인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원래 부당”하며 “합당하게 지켜지는 생존”이 불가능한 세상의 이치는 서른 여덟의 배타미를 생존에 충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타인의 현실 역시 자신의 현실만큼 무겁다는 것도 안다. 그가 혼자 고기를 먹으러 온 초면의 여성에게 테이블을 내어주며 친절하게 대하고,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차현(이다희)의 남자친구가 저지른 외도에 분노하며, 자신으로 인해 사업에 피해를 입은 박모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박모건과의 만남을 끝내기 위해 “다음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임수정의 눈동자에 감도는 찰나의 물기는 배타미가 애써 감춘 온도의 본질을 보여준다. 도화지같은 얼굴 위에 미세한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입히고, 서늘하게만 보이던 눈동자에 다양한 감정을 품는 임수정의 모습은 배타미가 근본적으로는 온화한 선을 품고 있음을 신뢰하게 한다.

오랫동안 “동안”이라는 수식어로 불렸고, 그 탓에 오랫동안 실제 나이보다 어린 배역들을 연기해야 했던 배우. 그러나 정작 임수정이 맡은 역할들은 대부분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머무를 수 없었다. ‘장화, 홍련’의 수미는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을 짊어진 인물이었고, ‘...ing’의 민아는 죽음과 첫사랑의 무게를 동시에 견디는 10대였다. 비현실적으로 하얀 피부와 복숭아처럼 경쾌한 선을 그리는 입술은 임수정을 동화 속 인물처럼 천진하게 보이게 했지만, 외양보다 성숙한 눈빛에는 현실에 없는 세계를 갈구하는 것 같은 불안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기계로 여기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영군이나 맹목적으로 사랑에 매달리는 ‘행복’의 은희, 자유분방하고 과장된 모습으로 외로움을 감추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처럼 비현실적일 만큼 욕망과 결핍이 분명한 인물들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임수정은 ‘당신의 부탁’에서 죽은 남편의 아들을 기르며 고민하고 성장하는 여성을 연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과거의 그가 자신이 가진 의외의 서늘함으로 근본적인 불안을 표현했다면, 지금의 그는 불안을 냉정으로 가린 배타미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인간의 현실적인 온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평소 저는 제 나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과거 임수정은 화장기가 없는 자신의 얼굴 사진에 늙어보인다는 악플이 달리자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배우로서 “더욱 건강하고 매력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몸상태의 작은 변화도 얼굴에서 표현이 되는 나이” 역시 자신의 현실임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이런 모습은 “회사한텐 내가 몸빵 대신해주는 부품인지 몰라도 난 내가 소중해요. 날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 말하는 배타미의 모습과 닮았다. 서른여덟의 나이지만 “모든 일의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만 하는 어른”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배타미의 대사처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신의 온도를 찾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과제이기도 하다. 더 적절한 온도를 고민하며 성장하는 배타미를 표현하기 위해 냉랭함과 온기를 오가는 임수정의 얼굴은, 그래서 더 이상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명확하게 인간의 온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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