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훌륭하지만, 꽤 괜찮은..딱, 내가 원했던 '로코' [이로사의 신콜렉터]

이로사 칼럼니스트 2019. 6. 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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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Always Be My Maybe)>을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넷플릭스가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아스달 연대기> 1화를 보고 나서 좀 맥이 풀린 상태였는데, 넋 놓고 있는 사이 넷플릭스가 알아서 이것을 플레이해주고 있었다.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은 것은 두 명의 아시아 배우 얼굴 때문이다. 영화는 평범하고 발랄한 미국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였는데, 다만 남녀 주인공이 둘 다 아시아 배우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오프닝은 1990년대 힙합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그 위로 주인공들의 이름 ‘사샤’와 ‘마커스’가 귀여운 손글씨로 얹히고, 2019년 성인인 그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이어 2003년, 1999년,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점점 더 어려지는 주인공들의 사진이 필름 돌아가듯 스쳐 지나가고 영화는 1996년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있다.

어릴 적 절친인 마커스(랜들 파크)와 사샤(앨리 웡)가 15년 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연애담을 그린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은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플롯을 다루지만 디테일 면에서는 기존의 익숙한 전형을 유쾌하게 뒤집는다. 넷플릭스 제공

안경 쓴 귀여운 아시안 소녀 사샤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집 안으로 들어선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스팸을 굽고 흰 밥에 후리가케를 뿌린 뒤 정성스레 모형 우산을 꽂아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켜둔 TV 드라마에선 전형적인 4인 백인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이 흘러나온다. 그때 벨이 울리고, 문이 열렸을 때 현관 앞에 선 것은 옆집에 사는 얼굴이 통통한 아시아 소년 마커스다. 그는 “혹시 국 먹을래?” 하고 묻는다.

“엄마가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내일 보온병에 싸서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아. 국 가져온 애 옆에 앉으려는 애는 없잖아. 국 가져온 애들끼리 앉겠지. 난 그런 얼간이들이랑 앉기 싫어.”

사샤는 베스트 프렌드인 마커스와 함께 옆집으로 들어가고 ‘Always Be My Maybe’라는 메인 타이틀이 떠오른다. 이제 이 영화의 디테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감이 온다. 나는 영화를 끄지 않고 계속 보기로 한다.

■ 뻔한 플롯, 새로운 디테일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릴 적 절친인 사샤(앨리 웡)와 마커스(랜들 파크)가 15년 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연애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수없이 반복해온 뻔한 스토리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뻔한 스토리의 내부를 무엇이 어떻게 채우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 사이 어쩌면>은 옛날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미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동시에 전복적이라 할 만한 디테일로 그 안을 가득 채운다.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지만, 으레 백인 남성이 차지하던 자리에 아시안 여성이 들어오면서 전형을 뒤집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샤와 마커스 두 사람이나 극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사샤다. 사샤는 자신감에 차 있으며 좀 웃기고 괴짜이면서도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성인이 된 그녀는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뉴욕에서 성공한 유명 셰프가 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점을 오픈하는 일로 고향에 돌아와 있다가, 여전히 그곳에 머물며 에어컨 기사 일과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마커스를 다시 만난다. 사샤는 우여곡절 끝에 마커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뉴욕에서의 커리어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그녀는 마커스에게 “난 뉴욕으로 돌아갈 거야. 같이 가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라고 한 뒤 떠나버린다.

친구인 소년·소녀가 어른이 되어 사랑에 빠진다는 뻔한 스토리인데 전복적 디테일과 촘촘한 묘사로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시청’ 우리가 ‘안방극장’ 넷플릭스에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사샤역을 맡은 배우 앨리 웡의 웃기고 도발적인 면모는 이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앨리 웡은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베이비 코브라>와 <성역은 없다>로 잘 알려진 코미디언이다. 그녀는 두 편의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임신으로 커다랗게 부푼 배를 안고 무대에 올라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임신과 출산, 엄마 되기에 대한 센 풍자와 농담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랜들 파크와 함께 이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했는데, 특유의 현실반영적 풍자와 농담이 영화 내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세부적 묘사를 보는 일도 이 영화의 큰 재미다. “한국인들은 요리할 때 언제나 가위를 쓰지”라며 가위로 파를 자르는 장면이나, 시끄럽고 무례하지만 맛있는 중국 식당, 온통 장애인 스티커를 붙인 불법 주차 차량이 늘어선 차이나타운 거리, 한국계 마커스 부자가 대중탕에서 때를 밀면서 나누는 대화 등은 아시아 문화권의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을 만들어낸다.

그 밖에도 영화에는 인스타그램, 힙스터 문화 등과 관련한 동시대적 조크가 흘러넘치며 임신한 레즈비언과 열대 조류 불법 거래를 주제로 행위예술을 하는 히피 예술가, 다이어트 중인 인도계 미국인 등 문화적·인종적으로 다양한 인물과 배우들이 등장해 다양성과 대안성을 부각한다.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자기 자신 역할로 깜짝 등장해 자신이 가진 문화적인 상징을 갖고 놀며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장면들은 보너스다.

영화는 그러면서도 안전한 장르 영화의 문법에 싸여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가진 미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사랑에 대한 바보 같은 이상, 그것을 실현하는 인물들, 그 위로 내려앉는 온기.

즉 <우리 사이 어쩌면>은 심리적으로 편안한 TV 영화의 문법을 따르되, 세련된 동시대 문화와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진화한 디테일을 선보인다. 나는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며 이것이 넷플릭스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적의 즐거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훌륭하지 않아도 돼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생기기 전, 내게는 자기 전에 보는 영화 목록 같은 게 있었다. 진지하고 어려운 영화 말고(침대에서 머리 쓰고 싶지 않다), 때려 부수거나 무서운 영화 말고(어수선한 꿈을 꿀 가능성이 크다), 친근한 얼굴이 등장하면서도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불을 깔아주는 영화들이었다. 주로 로맨스를 다룬 90분 내외의 1990~2000년대 초반 영화들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TV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들이었다.

TV는 산만한 환경에서, 그러니까 밥을 먹으면서, 침대에 누워 쉬면서,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친근하고 쉬워야 한다. 동시에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가치관을 발 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그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넷플릭스는 심리적으로 편안한 TV에 가까운 영화이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영화들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자기 전에 보는 것 말고도, ‘기분이 울적할 때’ ‘신선한 이미지를 보고 싶을 때’ ‘자신감을 충전하고 싶을 때’ 집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의 목록은 넷플릭스에서 끝없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행보를 보면 그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가 지향하는 하나의 방향이기도 하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6편의 오리지널 로맨틱 코미디물을 내놓았고, 그중 역시 아시안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전 세계 8000만명 이상이 시청한 성공작이 됐다. 세간에선 기존의 영화산업이 최근 수년간 주목하지 않았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수요를 파악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넷플릭스 영화에는 <로마>와 같은 아트하우스 마스터피스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장르 영화, 작은 영화들이 있다. 넷플릭스는 그렇고 그런 장르 영화들을 좀 더 새로운 디테일로 무장해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거기에는 대체로 다양성, 대안성, 소수자의 주체성, 현실반영성 등의 요소가 포함된다. 이것은 꼭 넷플릭스의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주는 지표라기보다 시대를 반영하는 감각의 지표처럼 보인다.

<우리 사이 어쩌면>을 보면 돈 많은 넷플릭스가 왜 ‘덜 훌륭한’ 영화들을 줄곧 만들어내는지 알 것 같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우리에게는 그런 영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훌륭할 필요가 없다. 종일 밖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며, 누군가를 바보같이 사랑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새삼 일깨우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면 된다. 거기에 며칠 전에 일어났고 오늘 일어나고 있는 지금 여기의 시대감각이 살아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게 우리가 ‘극장’이 아닌 ‘안방극장’에 바라는 것 아닐까? 더구나 넷플릭스는 알아서 골라 플레이까지 해주지 않는가?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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