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간세인형'을 아시나요 [이곳&이야기]

입력 2019. 5. 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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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과 버려지는 자투리 천이 제주의 관광상품 간세인형으로 재탄생했다. 간세인형은 제주올레의 대표 기념품이다. ‘간세’는 제주 사투리로 ‘느릿느릿, 게으름’이라는 뜻이다.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모형의 간세인형 / 사단법인 제주올레 제공

한때 누군가 아끼며 입었을 빨간 체크무늬 남방. 판판하게 옷을 펼치고 조랑말 모양의 본을 뜬다. 본뜬 2장의 천을 겹쳐 솜 넣을 구멍을 제외한 가장자리를 재봉틀로 촘촘하게 박음질한 후 뒤집어 솜을 꾹꾹 눌러 넣어준다. 어느덧 통통하게 살이 오른 조랑말 테두리를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스티치 한다. 단추로 눈을, 실로 꼬리를 매달면 금방이라도 폴짝폴짝 뛰어나갈 것 같은 곱닥한(‘고운’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나만의 조랑말’ 간세인형이 완성된다.

헌옷과 버려지는 자투리 천이 제주의 관광상품 간세인형으로 재탄생했다. 간세인형은 제주올레의 대표 기념품으로, 제주올레를 상징하는 표시인 조랑말 모형을 하고 있다. ‘간세’는 제주 사투리로 ‘느릿느릿, 게으름’이라는 뜻이다. 제주에서는 게으름뱅이를 ‘간세다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형 모형인 조랑말 역시 속도보다는 지구력이 장점이다. 인형 속에 ‘느림’을 지향하는 제주올레의 철학을 담은 셈이다.

헌옷 한 개로 인형 2~6개 만들어

간세인형은 수천 개를 제작해도 모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인형’을 갖는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헌옷이나 자투리 천을 재활용해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깁는 작업이다 보니 같은 본을 사용해도 매번 다른 색과 무늬, 재질의 인형이 완성될 수밖에 없다. 저탄소 친환경 수공예품을 표방하는 만큼 조랑말 눈으로 사용되는 단추는 코코넛 소재를, 꼬리는 실을 사용한다.

김주연 (사)제주올레 홍보·콘텐츠 수석팀장은 “간혹 커플을 위해 같은 천으로 비슷한 2개의 간세인형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그 외에는 같은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며 “평균적으로 헌옷에서 적게는 2개, 많게는 6개까지 인형을 만들 수 있지만 천을 조합해 매번 다른 인형이 나온다”고 말했다.

더욱 특별한 사연을 지닌 간세인형도 있다. 간세인형 대부분은 제주를 여행하는 올레꾼이나 관광객이 사는데, 일부는 주문제작해 구입하기도 한다. 한 퇴직경찰은 자신이 입었던 제복으로 간세인형을 만들었다. 이 간세인형에는 제복에 달렸던 이름표와 경찰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옮겨졌다. 어떤 이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옷으로 간세인형을 제작해 형제끼리 나눠 가졌다. 부모님의 체온을 고이 간직하기 위해서다. 간세인형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거나 수집하는 간세인형 마니아도 적지 않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1층에서 판매 중인 간세인형. / 박미라 기자

간세인형을 만드는 이들은 제주지역 여성들로 구성된 간세인형공방조합이다. 2010년 조합을 구성해 본격적으로 인형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간세인형은 1개당 1만8000원에 판매된다. 수익금의 일부는 판매량에 따라 생산자인 조합원에게, 일부는 제주올레길의 유지와 보수에 쓰인다. 현재 조합원은 31명인데, 18명 안팎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매년 8월에는 신규 조합원도 모집한다. 2개월의 기본교육과 1개월의 예비조합원 과정을 거쳐야 정식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여성들의 일자리로 안성맞춤인 이유는 각자 집에서 인형 제작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올레 기념품을 제작·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인 퐁낭의 김유정 선임연구원은 “간세인형을 착한 인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는데, 헌옷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지역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톡톡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집에서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업주부도 얼마든지 짬을 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각자 집에서 제작한 인형을 가지고 한 달에 한 번 공방에 모여 조합장에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검수받는다. 판매하는 제품인 만큼 꼼꼼히 완성도를 검사하는 것이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1층 공방에서 간세인형공방조합의 한 회원이 간세인형을 만들고 있다. / 박미라 기자

인형 제작시간은 천의 재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2시간 안팎이면 가능하다.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제작하는 수량은 숙련도와 시간적 여유에 따라 최소 30개에서 100개 안팎에 이른다. 조합원 김나미씨(56)는 “7년 전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간세인형 만드는 것을 접했는데 적성에 너무 잘 맞고, 수입도 살림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며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잡념도 사라진다. 불면증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성스레 만든 인형이 판매될 때는 뿌듯하다”며 “1년에 한 번 여는 전시회 출품작을 만들 때는 재활용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평소 시도하지 못했던 라면 봉지, 버린 비닐, 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인형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헌옷과 자투리 천 모으기 캠페인

간세인형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손바닥 크기와 그보다 작은 열쇠고리용 등 두 종류가 대중적으로 판매된다. 소량이지만 제법 큰 간세인형 쿠션도 제작된다. 한 해에 팔리는 간세인형은 7000~8000개다. 김유정 선임연구원은 “간세인형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사품이 많아졌다”며 “간세인형에는 조랑말 갈기에 제주올레가 새겨진 라벨이 붙어 있다”고 말했다.

간세인형은 기부받은 헌옷으로 제작한다. 간세인형이 버려지는 천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올레꾼들이 옷장을 털어 헌옷을 모아 보내기도 하고, 협력업체 직원들이 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형 제작에 필요한 천은 언제나 모자라는 편이다. 김주연 홍보·콘텐츠 팀장은 “모형을 잡기 힘든 늘어나는 재질이나 기능성 천 등은 인형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며 “면으로 된 천이 가장 유용하고, 다양한 무늬가 있으면 더욱 좋다”고 말했다. 이어 “간세인형을 위한 헌옷, 자투리 천 모으기 캠페인은 상시 진행 중”이라며 “캠페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옷장에서 잠자고 있는 의류 중 잘 늘어나지 않는 셔츠 위주로 선별해 (사)제주올레 사무국(제주도 서귀포시 중정로 22)으로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간세인형은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포함한 제주올레 공식 안내소와 온라인 스토어(http://www.ollestore.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디자인 장터 지하 2층 SEF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간세인형 만들기 체험을 하고 싶다면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공방을 찾아보면 된다.

제주·박미라 전국사회부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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