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윤 프로, 토마스'라면서, '조희연쌤'은 "교육감님"

윤근혁 2019. 1. 9. 10: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취재 그 후] '교사 호칭' 혼란 빚은 서울시교육청 관료들의 이중 잣대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8일 발표한 '서울교육 조직문화 혁신방안' 문서 1쪽. 조희연 교육감을 '교육감님'이라는 존칭으로 쓰고 있다.
ⓒ 윤근혁
   
"희연쌤!!", "원순씨!!"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부르는 애칭이었습니다. 이런 애칭으로 두 사람은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권력자가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효과 때문에 그랬을까요? 서울시교육청 총무과는 지난 8일 '서울교육 조직문화 혁신방안'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10개의 혁신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앞장세운 '수평적 호칭제'가 된서리를 맞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 '선생님' 대신 '쌤'... 호칭변경 TF에 현직 '쌤'은 0).
 
내용은 기존 직함 대신 "'~님', '~쌤' 또는 별칭(○○프로, 영어이름)"을 쓰라는 겁니다. 본청, 교육지원청에서도 교육감을 '희연쌤'이라고 쓰겠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만 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청이 학교에도 같은 것을 들이민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윤근혁 선생님'을 "근혁님, 근혁 쌤" 또는 "윤 프로, 토마스 윤" 식으로 부르라는 겁니다. 사전에도 없는 은어와 외국말까지 호칭으로 쓰라는 얘깁니다.
 
교육청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귀감이 될 만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런 걸 다른 이에게 제안할 때는 더 신중해야 합니다.
 
당연히 교원들은 발끈했습니다. '선생님'이란 직함은 교사에게는 단순한 직함명만이 아니라 자존심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기에 그랬습니다. 교권이 무너져 '매 맞는 교사'가 심상치 않게 생기는 형편이기에 더 그랬습니다.
 
관료들이 만든 '쌤 호칭 방안' 공문서엔 "교육감님이..."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쌤" 호칭 방안을 담은 서울시교육청 문서 맨 앞장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버젓이 적혀 있습니다.
 
"교육감님 말씀."
 
교사들을 "쌤"이라 부르라고 한 이 문서를 만든 담당 부서는 같은 문서에서 조 교육감에겐 "교육감님"이란 존칭을 쓴 겁니다. 공문서에서는 쓰면 안 되는 '존칭'을 넣은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중 잣대'죠. '교육감은 높이고 교사들을 깔본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는 관료들의 과잉충성입니다.
 
이처럼 서울시교육청 공문서에 '교육감님'이란 존칭이 등장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것부터 먼저 고치는 게 필요한 일이었죠.
 
조 교육감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지적을 받을 만합니다. 공문서에 넣은 '교육감님'이란 존칭 문제가 논란이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러고들 있으니 뒷말이 나오는 겁니다(관련 기사 : "교육감님 결재?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또한 '영어이름을 호칭으로 쓰자'는 제안은 상식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눈을 의심할만한 내용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라스베이거스교육청이 아니고 학교는 영어 족집게 학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발상이 거름장치 없이 공문서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외국말 호칭 제안행위는 국어기본법에도 어긋납니다. 현행법은 제4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국어책임관 부서로 선임된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도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렵습니다.
 
호칭은 문화입니다. 직함을 부르든, 애칭을 만들어 부르든 그것은 부르는 자의 맘입니다. 그러하기에 '수평적 호칭제'란 이름으로 하급기관에 호칭변경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특정한 호칭을 강요하는 순간 '꼰대'란 지적에서 벗어나긴 어렵다는 얘깁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억울한 점도 있을 겁니다. 권위주의 문화를 벗기 위해 10개의 혁신방안을 내놨는데 그 중 하나인 '호칭 제안'이 걸림돌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포장지를 앞세우다가 결국 중요한 선물은 제대로 펼쳐 보여주지도 못한 셈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