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고양이 혓바닥이 까끌까끌한 이유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18. 12. 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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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깨어있는 10시간 가운데 24%를 털을 핥으며 보낸다. pixabay제공

페르시아고양이처럼 털이 긴 품종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털이 뭉쳐 골치다. 페르시아고양이 주인은 매일 빗질을 해주고 매달 목욕을 시켜야 털의 기름(피지)을 분산시킬 수 있다.
- 알렉스 노엘과 데이비드 후, ‘미국립과학원회보’ 논문

한국은 여전히 개를 더 많이 키우고 있지만, 반려동물로 고양이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내 1인 가구가 늘면서 집에 홀로 남겨지면 외로움을 타는 개보다 고독을 즐기는 고양이가 반려동물로 적합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노는데, 특히 자기 털을 핥는데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고양이는 하루 평균 14시간을 자고 10시간 깨어있는데 이 가운데 24%를 털을 핥으며 보낸다. 도대체 고양이는 왜 이렇게 털 관리에 매달리는 걸까.

길이 2.3㎜인 돌기가 290개 몰려 있어

관찰 결과 고양이가 정성스럽게 털을 핥으면 털에 붙어있는 벼룩이나 부스러기가 사라지고 털이 가지런해진다. 털에 묻은 침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기 때문에 체온을 조절하는 데도 일조한다. 고양이는 발바닥에만 땀샘이 있어 땀을 내는 것만으로는 체온을 조절하기에 역부족이다.

고양이 혓바닥을 보면 사람이나 개와 좀 다르다. 혀끝 방향으로 손톱만한 면적에 벨크로(찍찍이)의 한쪽 면처럼 작은 가시 같은 구조가 촘촘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핥으면 까끌까끌한 이유다.

A: 고양이는 깨어있는 시간의 24%를 털을 핥으며 보낸다. B: 고양이 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시 같은 유두가 290개 정도 존재한다. C: 고양이가 털을 핥는 과정은 네 단계(혀 내밀기, 펴기, 쓸기, 집어넣기)로 이뤄진다. D&E: 털을 핥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체온조절로, 앞다리를 핥자 털에 묻은 침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가 온도가 떨어진다(파란색).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사실 이건 실유두(filiform papillae)로 길이가 평균 2.3㎜나 되고 혀에 290개 정도 있다. 참고로 사람 혀의 실유두는 맨눈으로는 존재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미뢰(맛을 느끼는 세포의 집합체)가 없어 촉각에만 관여한다. 1982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고양이 실유두는 손톱과 같은 케라틴 성분의 가시로 속이 찬 원뿔 모양이다.

미국 조지아공대 기계공학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마이크로-CT(컴퓨터단층촬영)으로 고양이 혀의 실유두(혀 돌기의 일종)를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30여 년 전 논문의 내용이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속이 찬 원뿔이 아니라 속이 빈 원뿔이 세로로 잘린 형태였다. 대통밥을 만들기 위해 길이 방향으로 쪼갠 대나무가 떠오른다.

연구자들은 이런 구조가 모세관현상에 관련돼 있을 것으로 직감하고 빨간 색소를 탄 물방울에 유두(돌기) 끝이 살짝 닿게 했다. 예상대로 물이 순식간에 통로를 따라 올라와 돌기 안에 안정하게 존재했다. 이렇게 물을 머금은 돌기를 마른 천에 갖다 대면 물이 쪽 빠져나간다. 전형적인 모세관현상이다.

연구자들은 고양잇과(科) 다른 동물들의 실유두 구조도 조사해봤다. 그 결과 몸무게가 고양이의 수십 배인 호랑이나 사자도 똑같은 구조인 건 물론이고 크기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구조가 고양잇과 동물에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A: 고양잇과 동물의 혀로 왼쪽부터 고양이, 살쾡이, 퓨마, 설표, 호랑이, 사자다. B: 실유두의 마이크로-CT 이미지로 6종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다. C: 고양이 혀에서 실유두가 분포하는 영역으로 평균 290개다. D: 실유두의 길이로 고양이가 2.3㎜이고 나머지 다섯 종도 거의 같다. E: 유두는 속이 빈 원뿔이 세로로 잘린 구조라서 끝이 물방울에 닿으면 모세관힘으로 액체가 금방 빨려 들어온다.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고양이 혀는 성능 뛰어난 빗

살아있는 고양이의 실유두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돌기 안에 침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털을 핥으면 돌기의 침이 털로 옮겨갔다. 고양이 침에는 각종 소화효소가 들어있어 털에 묻어있는 미세한 부스러기를 분해해 없애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침이라면 어차피 혀 표면에도 있는데 굳이 가시 같은 돌기가 필요할까.

연구자들은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고양이가 털을 핥는 모습을 자세히 분석했다. 이 과정은 네 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먼저 혀를 내밀고(extension) 활짝 편 뒤(expansion) 쓸고(sweep) 집어넣는다(retraction). 혀가 편평할 때는 돌기가 목구멍 쪽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있지만, 핥을 때는 혀가 뒤로 말리면서 돌기가 혀 표면에 거의 수직으로 선다. 그 결과 돌기 끝이 털을 통과해 피부까지 닿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란 액체를 머금은 고양이 혀로 털을 핥는 실험을 해보면 혀가 지나간 자리의 털로 액체가 옮겨져 털이 파랗게 보인다(위). 아래는 유두 하나에만 액체를 채운 경우로 털 몇 가닥파랗다.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그런데 고작 2.3㎜ 길이인 돌기가 어떻게 그 많은 털을 뚫고 피부까지 닿을 수 있을까. 고양이 털은 겉에 보이는 보호털과 그 아래 있는 솜털로 이뤄져 있는데, 개수로 솜털이 24배 정도 더 많다. 그런데 솜털은 아주 가늘어 털로 덮인 공간에서 실제 털이 차지하는 부피는 3%에 불과하다. 나머지 97%는 공기인데, 이런 구조 덕분에 단열(보온)이 잘 돼 겨울에도 체온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대신 혀로 핥을 때는 털이 쉽게 눌려 털층의 두께가 평균 37㎜에서 불과 1.2㎜로 줄어든다. 그 결과 길이 2.3㎜인 돌기가 피부까지 닿고 침이 털 뿌리까지 골고루 전달될 수 있다.

돌기는 빗살의 역할도 한다. 고양이가 혀로 털을 핥는 것만으로도 털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건 고양이 혀가 실유두라는 작은 빗살 290개로 이뤄진 빗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빗은 사람이 만든 빗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엉켜있는 털이 더 쉽게 정리됐고 빗에 묻어 나온 빠진 털들도 쉽게 없앨 수 있었다.

빗질(핥는) 방향 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돌기에 엉킨 털 가닥이 걸리면 저항력이 생기지만 돌기가 뒤로 밀려 서면서 힘이 완화돼 빗질이 잘 나가지 않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몇 번 핥아주면 엉킨 털이 가지런히 정리된다.

연구자들은 탄성이 뛰어난 재료로 고양이 돌기를 모방한 빗(빗살의 크기는 돌기의 네 배)을 만들어 보통 빗과 성능을 비교해 봤다. 그 결과 털을 고르는 효율이 더 높을 뿐 아니라 빗질 뒤에 빗에 묻은 털들도 훨씬 쉽게 없앨 수 있었다. 빗살이 한 방향으로 비스듬히 정렬해 있는 데다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기 때문이다. 

위는 고양이 혀의 단면(왼쪽)과 말렸을 때 유두가 일어선 모습(오른쪽)이고 아래는 이를 모방해 만든 빗이다. 일반 빗과 비교한 결과 고양이 혀를 모방한 빗의 성능이 훨씬 더 뛰어났다.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페르시아고양이는 관리가 필요해

개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고양이도 나름 여러 품종이 개발됐다. 이 가운데 털이 길고 풍성한 페르시아고양이는 우아한 자태로 예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이런 외모가 뛰어난 고양이를 키우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페르시아고양이가 혀로 핥는 것만으로는 털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혀로 핥을 때의 힘으로 페르시아고양이의 털을 눌렀을 때 두께를 측정했는데 예상대로 돌기의 길이보다 길게 나왔다. 털이 워낙 많고 길기 때문이다(그만큼 더 겹친다). 그 결과 돌기에 들어있는 침이 털 뿌리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엉킨 털도 제대로 빗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페르시아고양이 주인이 고양이 혀 돌기를 모방한 빗(물론 빗살은 돌기보다 큰)으로 빗질을 한다면 관리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침의 기능을 하는 액체를 머금은 뒤 빗질할 수도 있다. 

머지않아 반려동물 매장에 ‘고양이 혀의 돌기를 모방한 빗’이 등장하지 않을까.

페르시아고양이처럼 털이 긴 품종은 혀로 핥을 때 유두가 피부까지 닿지 못해 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고양이 혀를 모방한 빗이 나온다면 주인들이 수고를 꽤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이 있다 .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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