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갈칫국과 성게국, 제주의 오래된 그 맛

2018. 12. 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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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노포 순례기 3 -제주시 서문로
복집식당의 성게국

서문로는 예부터 제주시의 중심으로 불리는 관덕정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데, 제주읍성의 서문이 있었다는 위치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서문 다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의 핵심은 서문공설시장이었다. 1970년대까지는 서문시장이 제주의 가장 큰 재래시장이었고 주변으로 거대 상권이 만들어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토박이들의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던 속칭 ‘무근성’이 배후 소비지역이었다. 무근성 진입로의 돼지갈비 골목은 70년대 제주 최대의 먹거리 골목이었고 서문공설시장 인근에는 서민형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 뒤 관덕정 서쪽에 있던 제주시청의 이전, 연동 일대 제주 신시가지 조성, 대형 할인마트 등장 등으로 재래 상권의 몰락과 함께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오랜 상권의 역사만큼 침체도 깊어서 많은 노포들이 사라져갔지만 그 와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월의 지킴이들을 찾아본다.

■복 대신 멜, 갈치- 복집식당

복집식당

신랑은 제주대학교 법학과 1기 졸업생이었다. 최고의 엘리트였던 그는 교사의 꿈을 이루려 임용을 기다렸지만 이른바 ‘연좌제’에 걸려 좌절을 겪는다. 방황하는 신랑을 대신해 아내가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고 10원짜리 우동을 삶아서 팔기 시작했다. 1969년, 식당의 시작이었다. 아내를 보며 정신을 차린 신랑이 도와주면서 당시 제주에서 많이 잡힌 복어를 사다가 복국을 끓여 팔았고 인근 제주대 교수들과 공무원 등 손님이 늘었다. 장사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 사업자 등록을 할 때 식당 이름도 생각하지 않고 세무서에 갔다가 즉석에서 복국을 파는 식당이니 ‘복집식당’이라 지었다. 그렇게 10여 년 복국을 팔다가 복어 어획량이 감소해 복국을 포기해야 했다. 수입산은 제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제주에서 많이 나오는 ‘갈치’로 국을 끓였다. 여름에는 ‘멜’을 사다가 국을 끓였다. 한 가지 철칙은 냉동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물 갈치와 멜을 그때그때 사다가 조리한다. 제주 사람들의 전통적인 국 맛 그대로 끓였고 지금 이 집의 대표 메뉴이다. 5년 전 엘리트 신랑은 세상을 등졌고 82세의 부인이 작은딸과 함께 국을 끓인다. 성게국도 비싼 성게가 푸짐하게 들어가서 오래된 제주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주소: 제주시 비룡길 5 / 064-722-5503

■자가 제면의 자부심-송림반점

송림반점의 짜장면

평소 책을 좋아했던 주인장은 출판사 영업사원을 오래 하다 1987년 여름 중국집을 시작했다. 올해로 벌써 40년이 지났다. 평소 영업을 다니며 짜장면을 많이 먹어본 내공을 담아냈다.

특히 이 집의 면은 다른 중국집(중국음식점)과 달리 매우 가늘다. 일반적인 중화면의 절반 정도 두께이다. 이렇게 가는 이유를 물어보니 단순하다. “손님들이 좋아해서….”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할 리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직접 반죽하고 뽑으니까….” 말끝은 흐렸지만 자부심이 느껴진다. 언제부턴가 동네 골목마다 중국집이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생산된 중화면을 당연한 듯 사다 쓰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그것이 오히려 품질관리 면에서 더 유리했지만 당신네는 직접 다 한다는 자부심! 그 자부심이 40년을 버틴 원동력일 것이다.

빛바랜 간판만큼 단골의 역사도 길다. 원칙적으로는 배달을 안 하지만 오랜 단골들의 부탁은 거절할 수가 없어 지금도 공설시장 등 몇 곳은 배달해주고 있다. 43년생인 주인장은 10여 년 전 아들에게 주방을 내주고 지금은 카운터에 앉아 단골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오래된 실내지만 청결한 느낌이다.

주소: 제주시 관덕로 2-1 / 064-722-4229

송림반점

■호남과 제주 맛의 콜라보-태광식당

태광식당의 한치주물럭

고향 목포를 떠나 부부가 제주에 정착한 것은 1970년대 말이었다. 몇 년이 흘러 1982년 조그마한 식당을 시작했고 남도의 손맛으로 제주의 식재료를 조리하는 맛집이 되었다. 1985년 원래의 식당에서 300m 정도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처음에는 여름철 물회가 인기가 높았다. 제주 사람들이 잘 쓰지 않던 고춧가루 양념을 많이 사용하면서 매운맛으로 무장한 빨간 물회가 여름철 인기 메뉴가 되었고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제주 돼지고기를 빨간 양념으로 주물럭을 만들어 팔았다. 오삼불고기가 인기를 끌던 90년대 후반 일반 오징어가 아닌 한치주물럭을 돼지고기와 함께 조리하니 오징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맛있었고 오래지 않아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도 거론될 정도였다.

지금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돼지고기주물럭과 한치주물럭인데 따로따로 시켜 먹는 것보다 섞어달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새빨간 양념이 아주 매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살갑게 매콤한 수준이다. 대파와 깻잎이 많지만 금세 숨 죽어서 고기와 한치가 실하게 드러난다. 건더기를 다 먹을 때쯤 국수사리를 주문해서 양념에 비벼 먹고 밥을 볶아 먹으면 배는 부른데 바닥을 긁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주소: 제주시 탑동로 144 / 064-751-1071

태광식당

글·사진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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