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김은숙 작가가 해낸 것

2018. 9. 2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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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미스터 션샤인’은 큰 역할을 했다. 멜로가 힘들 것 같았던 이병헌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김태리와 멜로 연기를 펼쳤는데도 괜찮았다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은 우리의 근대사, 말하자면 지극히 로컬한 소재로 글로벌한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고종, 을사늑약, 정미7조약이 나오는 데 외국 사람들이 보게 됐다는 뜻이다. 중국의 19세기 후반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을 소재로 하는 중국 드라마를 세계 시장으로 배급했는데 자국에서도 히트하고 중국 이외의 외국인 시청자들이 보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미스터 션샤인’은 조선과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주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친일매국파와 죽음을 불사하고 들불처럼 일어선 의병 이야기다. 여기에는 물론 고애신(김태리)이라는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세 남자의 멜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드라마의 주내용이 우리의 19세기말~20세기초를 다루고 있어, 이 드라마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시청자들 사이에 구한말 시대를 공부하는 ‘션샤인 학당’ 모임이 만들어지고, 일제의 통감부 자리가 있었던 남산 예장동 등 구한말 역사의 아픈 흔적을 돌아보고 촬영지를 직접 방문하는 ‘션샤인 투어’가 이뤄지고 있다.

동시에 사극이나 시대극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로컬한 이런 내용을 엑조틱(Exotic, 이국적인)하게 만드는 데도 성공해 외국인들도 이를 시청하게 했다.

이 부분은 ‘미스터 션샤인’이 세계 130개국에 배급되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라는 점과 연관돼 있기도 하다. 앞으로도 ‘미스터 션샤인’ 같은 성공사례가 나와야 한다.

내수시장만을 목표로 하는 드라마 제작은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어차피 드라마가 가는 방향은 내수시장 소비 드라마도 필요하지만, 외국에서도 소비될 수 있는 한국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 같은 성공사례가 나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사와 멜로의 적절한 배합 이상의 정교한 가공 절차를 필요로 한다. 김은숙 작가는 이 어려운 일을 성공시켰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지난 27일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국내 진출에 따른 미디어 시장 환경 변화 세미나’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 시대의 방송문화’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발제문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홍 교수는 “미스터 션샤인의 경우, 시공간과 사건, 인물의 선택에서 국내 시청자를 대상으로 했던 그간의 드라마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발견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조선말 대가댁 양반 애기씨이고 그의 애국심과 열정적 쟁투를 다룬다는 점, 신분을 넘어선 사랑의 등장으로 한국 시청자라면 먼저 ‘토지’를 연상했겠지만, ‘토지’의 지역성과 만주로의 투사와는 매우 다른 공간적 상상력과 역사적 해석, 인물의 선택을 보여준다”고 썼다.

홍 교수는 이어 “‘미스터 션샤인’은 신미양요가 일어난 1871년의 경험이 핵심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시작되는데, 실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과 공간적 투사는 주인공 고애신과 세 명의 운명적 남자들을 조선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로맨스를 전개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될 뿐, 역사적 맥락과의 현실정합적 교섭은 없다”면서 “서울과 제물포 사이의 인물들의 오감, 고애신과 그의 연인의 잦은 강화도 왕래와 동해안까지의 승마, 고애신 부모의 시기상조적 독립운동 등 시공간적 핍진성의 부재는 한국 시청자들의 눈에 띌 뿐, 넷플릭스의 주 시청자인 해외 가입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고 해석했다.

홍 교수는 “(이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20세기초 경성은 자신의 운명과 싸우기 위해 선을 탈출해 미국과 일본으로 갔다 돌아온 세 명의 남자와 총을 ‘낭만으로’ 선택하고 노비 출신 미군을 애인으로 삼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조선말 양반여인이라는 예외적인 인물들이 살아가는 매우 스펙터클한 시공간이다”면서 “여기에서 사용되는 유머는 지극히 동시대적이고 탈한국적이며 서구적으로 과장된 연기에 기대고 있어서,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시청자를 위해 제공할 콘텐츠임을 환기시킨다”고 했다.

이처럼 ‘미스터 션샤인’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임에도 해외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구성과 감성을 정교하게 했음을 보여준다. 


김 씨 가문의 세도가 극심할때 주인 나리 김판서에게 부모를 잃은 사노비의 자식 이병헌(유진 초이)이 만주로 도피하지 않고 미국으로 간 것은 300억에 가까운 돈을 주고 이 드라마를 구매한 ‘넷플릭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미스터 션샤인’의 구성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미국의 외교 노선이 전통적인 고립주의에서 팽창주의로 전환했다고 하는 상징적 사건인 미서(美西)전쟁에서 명예로운 용사훈장을 받고 주둔지인 조선으로 가 조선의 흑역사를 맞닥뜨리는 유진 초이의 행보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홍 교수의 지적처럼, ‘미스터 션샤인’이 역사와 계급적 현실이 로맨스를 위해 동원된다 해도,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멜로도 멜로지만 오로지 나라의 주권만을 생각하며 불꽃처럼 스러져간 의병의 활약과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김은숙 작가는 이렇게 또 하나의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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