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아마데우스', 주말의 명화 가끔씩 그리워져요

박미영 2018. 9. 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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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아마데우스’ 스틸컷

영화를 양껏 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 ‘명화극장’ 같은 TV 프로그램은 화수분과도 같았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 영화를 꺼내고 또 꺼내주는. 개중에는 명화로 묶기에는 아쉬운 영화도 있었지만, 영화를 볼 수 있음에 마냥 행복할 따름이었다. 시그널 음악인 ‘영광의 탈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 들어도 심장은 이미 쿵쿵거리며 클라이맥스였다. 완성된 영화에 목소리를 얹는 더빙 영화였기에 성우들에게는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했다. 덕분에 안방에서 드라마를 보듯, 한껏 편안한 모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안방형 골드클래스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자면 ‘아마데우스’다. 단연코 모짜르트의 웃음소리다. 정확히는 배한성의 웃음소리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톰 헐스가 연기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배한성이 뽑아낸 것일 테지만. 처음에는 경박하게 여겨지던 웃음소리가 차츰 음표가 되어 경쾌하게 들렸다. 타인 앞에서 웃음의 밀도를 조절하는 어른들과는 다른, 아이처럼 천진하게 마구 터지는 웃음이랄까. 은근한 중독성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모짜르트의 웃음소리는 배경음처럼 깔린다.

늙은 안토니오 살리에리(F. 머레이 아브라함)는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가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는 병실로 찾아온 신부에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톰 헐스)를 자신이 죽였노라고 실토한다. 한때 살리에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에 각고의 노력까지 더해져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궁정음악장의 위치까지 올랐다. 모짜르트가 비엔나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의 휘황한 인생이 곪아가기 시작한다. 최저의 인간이 만든 최고의 음악을 향한 뜨거운 질투는 급기야 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살리에리는 생애 최초로 저주를 배우고, 광기에 사로잡혀서 모짜르트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1985년 개봉작인 ‘아마데우스’는 2015년에 재개봉하면서 디렉터스 컷으로 22분이 추가된 180분으로 상영되었다. 러닝타임이 꽤 길지만, 다채로운 로코코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고 모짜르트가 빚어낸 찬연한 선율은 귓가를 파고든다. 영화가 끝나도 여음(餘音)을 머금은 채, 음악의 고유한 아름다움에 새삼 탄복하게 된다.

영화의 타이틀은 ‘아마데우스’지만 모짜르트의 전기 영화가 아니다. 동명의 희곡 원작에 이어 영화의 각본까지 책임진 피터 쉐퍼는 실존 인물인 모짜르트와 살리에리를 허구의 세계로 옮겨왔다. 그리고 이 세계의 중심은 살리에리다. 대중에게 모짜르트를 각인시킨 작품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실제 삶과는 분명 간극이 있다. 관객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를 누리면 된다. 모짜르트처럼, 살리에리처럼 각 분야의 장인인 피터 쉐퍼는 탄탄한 플롯으로 직조하고, 밀로스 포만은 깊이 있는 연출로 광채를 냈다.

살리에리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바랐다. 비단 그의 바람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의 바람일 것이다. 모짜르트의 레퀴엠 작곡을 돕는 그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희열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입에서는 쓰라린 말들이 쏟아진다. 이해가 안 가고, 너무 빠르다고…. 그는 모짜르트를, 모짜르트에게만 재능을 내린 신을 사로잡고 싶지만 늘 힘에 부친다.

살리에리의 말처럼, 그는 평범한 자들 중 챔피언이다. 모짜르트가 1등, 살리에리가 2등이라고 본다면 나는 살리에리도 되기 어려운 평범한 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도 ‘아마데우스’를 보면 볼수록 살리에리의 마음에 스며든다. 살리에리 심장의 박동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마음속에 깃든 그림자로 인해 시들어가는 그가 아리다. 쌉쌀한 인생이었던 까닭에 유독 달콤한 음식을 탐했나 싶기까지 하다.

‘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칼럼을 쓰는 내내 이문세의 노래 ‘조조할인’이 입에서 자동 재생됐다. 눈에 익지 않은 외국배우의 얼굴 위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덧입혀졌던 ‘주말의 명화’가 그립다. 이제는 옅어진 그 시간들이 진하게…. 몹시 그립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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