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은 왜 한국인의 아침식사가 되지 못했을까?

이덕주 2018. 9. 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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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야사-21] 어렸을 때 보거나 들었던 광고가 오래 기억되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아래 광고가 그런데요.

후르츠링이라는 이 시리얼 제품의 광고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방송된 것은 1990년대쯤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 광고를 보면서 후르츠링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리얼을 저도 잘 먹지 않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도 시리얼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미국과 같은 서구사회에서 먹는 것에 비하면 훨씬 비중은 낮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시리얼 시장은 10여 년 째 정체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에 시리얼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식문화인만큼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는데요. 그래도 시장 규모가 1994년 200억원에서 800억원(1998년), 2000억원(2008년)까지 성장합니다. 하지만 2017년 시리얼 시장 규모는 여전히 2114억원에 불과합니다. 광고를 통한 높은 인지도와 간편하게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리얼이 한국인의 아침 식탁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리얼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시리얼의 정의는 '곡물가공식품'입니다. 밀, 귀리(오트), 쌀, 옥수수 같은 농산물을 가공해 먹기 편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선식'이라고 부르는 가루 형태로 만든 곡물도 시리얼과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지금처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시리얼이 탄생하기 전에는 포리지(Porridge)라는 이름으로 곡물을 뜨거운 물이나 우유에 넣어서 먹는 전통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죽 같은 제품입니다.

185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리얼의 일종인 오트밀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귀리를 가루로 만들어서 이를 죽처럼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요. 이 오트밀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기업이 바로 퀘이커오츠(Quaker Oats)로 지금은 펩시콜라를 만드는 펩시코에 속해 있습니다. 오트밀은 우리가 익숙한 시리얼과 달리 우유에 먹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우유에 먹어야해서 '핫 시리얼'로 분류됩니다.

미국인들이 아침에 먹는다는 오트밀이 바로 이겁니다

1863년에는 그래놀라가 발명됩니다. 통밀 밀가루 반죽을 건조시킨 후 조각 낸 제품으로 지금 우리가 접하는 그래놀라와는 사뭇 다른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딱딱해서 이를 먹기위해서는 밤새도록 우유에 담가놔야 했다고 합니다.

1900년대 초에는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콘프레이크가 발명되고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에서는 뮤즐리가 만들어집니다. 콘플레이크는 옥수수를 주성분으로 보리 호밀 등 곡물을 넣어 반죽으로 만든 후 이것을 얇게 압축한 후 구워낸 제품입니다. 플레이크는 그래서 공통적으로 납작한 모습입니다.

그래놀라, 콘플레이크, 뮤즐리 등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병원 환자식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걸 환자들에게 먹인 것은 소화가 잘된다거나 영양소가 풍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의학이 덜 발달되어 있던 당시는 이같은 곡물 위주의 식사가 실제로 병을 치료해주고 막아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콘플레이크를 발명한 존 하비 켈로그 박사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였고 교리에 따라 채식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또 자위행위가 여러가지 질병의 원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이 운영하는 배틀크리크 병원 환자들의 채식을 위해 콘플레이크를 개발했습니다.

배틀크리크 병원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병원과는 다른 고급 호텔 겸 요양원이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의 아들인 록펠러 주니어, 발명왕으로 유명한 에디슨,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 같은 부자들을 위한 시설이었습니다. 존 하비 켈로그 박사는 지금으로 따지면 셀러브리티 의사였는데, 그가 운영하는 배틀크리크 병원과 건강식인 콘플레이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의 요양소 환자였던 찰스 윌리엄 포스트는 콘플레이크를 베껴서 켈로그 박사보다 먼저 제품화하는데요. 그가 만든 회사가 지금의 포스트(Post)입니다. 켈로그 박사의 동생 윌 키스 켈로그는 포스트가 먼저 제품을 내놓은 것에 분노해 회사를 만드는데 이 회사가 바로 켈로그(Kellogg)입니다. 포스트와 켈로그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시리얼 시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켈로그 박사가 운영하던 배틀크리크 병원의 모습입니다. 그는 환자들에게 식단과 운동, 맑은 공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술, 담배, 커피, 섹스를 멀리하도록 했습니다.

건강식인 시리얼을 먹어서일까요? 켈로그의 두 창업자 형제는 천수를 누립니다. 형 존 하비 켈로그 박사와 동생 윌 키스 켈로그 모두 91세까지 장수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한 세기를 살아갑니다.

이처럼 시리얼은 우리가 먹는 '선식'처럼 건강식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얼이 아침식사로 제격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무엇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이 커지고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와 경쟁이 시작되면서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첫 번째는 광고였습니다. 시리얼은 광고를 통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캐릭터입니다. 1930년대부터 시리얼 회사들은 제품과 연관된 캐릭터들을 내놓고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좋아했던 켈로그 후르츠링(미국 이름 후르츠루프)의 앵무새가 대표적입니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로 유명한 토니도 1950년대에 등장해 콘푸로스트(미국명 : 프로스티드프로스트)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됐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설탕이었습니다. 1940년대부터 시리얼 회사들은 설탕을 집어넣어 달고 자극적인 시리얼을 만들기 시작하는데요. TV광고와 캐릭터, 설탕의 결합된 힘으로 시리얼 시장은 1950년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내고 미국인들의 아침식사로 자리잡습니다. 특히 이 세 가지는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는데요. 미국에서 베이비붐(전쟁 후 평화가 찾아오면 출산율이 크게 올라가는 현상)으로 아이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시리얼 시장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아침식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온 가족의 아침식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39년 매출 3300만달러였던 켈로그의 매출은 1948년에는 1억달러에 도달하게 됩니다.

켈로그 박사가 최초로 발명한 것이 콘푸레이크고 여기에 설탕을 코팅한 것이 콘푸로스트입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시리얼은 온갖 설탕과 향료 범벅이 된 자극적인 제품이 됩니다. 초코맛, 과일맛등 아이들을 유혹하는 시리얼이 이때 보편화됩니다. 시리얼=아이들 아침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켈로그라는 이름은 시리얼보다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경영전문대학원 이름으로 더 익숙합니다. 1979년 존 앤드 헬렌 켈로그 재단이 이 대학에 1000만달러를 기부하면서 켈로그 경영대학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재미있게도 이 켈로그 경영대는 시리얼회사 켈로그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존 켈로그는 켈로그의 창업자인 윌 키스 켈로그의 아들로 켈로그의 사장까지 지냈지만 아버지와의 불화로 회사에서 쫓겨납니다. 그는 시카고로 옮겨가서 스스로 기업을 세우는데 이곳에서 번 돈으로 세운 재단이 존 앤드 헬렌 켈로그 재단입니다. 시리얼 회사 켈로그의 본사가 있는 미시건 주가 아니라 시카고에 있는 대학교에 켈로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리얼 회사 켈로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여러 칼리지 중의 하나인 켈로그 칼리지라고 합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에어로빅 열풍이 불었습니다. /출처=Eric Pydz Call on Me M/V

영원할 것 같은 시리얼의 시대는 1980년대에 들어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당시 켈로그는 시리얼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됩니다. 그래서 당시 켈로그 최고경영자였던 윌리엄 E 라모스는 건강과 영양이라는 시리얼의 원래 의미를 다시 되살립니다. 점점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시리얼을 마케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리얼에는 다양한 영양소와 식이섬유,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으며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식의 마케팅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성인용 시리얼 시장이 크게 성장하게 되는데요. 그가 1979년부터 12년간 켈로그의 CEO로 머무르는 동안 주가는 12배나 상승합니다. 라모스 CEO가 동시에 진행한 것은 글로벌 확장인데요. 그가 진출한 국가 중 한 곳이 막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는 한국이었습니다.

시리얼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입니다. 국내 커피시장 1위였던 동서식품이 포스트와 손을 잡고, 농심이 켈로그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한국에서 시리얼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동서식품은 합작사인 제네럴푸즈가 포스트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스트 시리얼을 판매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켈로그의 경우는 농심이 지분 10%만 보유한 사실상 외국계 회사입니다.

1988년에는 매일유업이 '첵스'로 유명한 랄스톤 퓨리나와 손을 잡고 시장에 진출했지만 곧 철수했고 랄스톤 퓨리나의 '첵스'는 미국의 종합식품회사 제너럴밀즈에 팔립니다. 이중 '초코첵스'만 켈로그에 팔려 여전히 국내에서는 켈로그 초코첵스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시리얼 회사들은 광고와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의 아침식사를 공략합니다. 콘프로스트, 후르츠링, 코코볼 , 첵스 같은 제품들은 어린이 소비자들에게 어느정도 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성장세가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4년 이후 코코볼 장기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둘리

1990년대 들어 글로벌 시리얼 업계는 결국 위기에 봉착합니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시리얼마저도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설탕과 나트륨함량이 적고, 유기농 원료, 비GMO 원료로 만든 시리얼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기존 시리얼은 인공적인 색소를 첨가하고 설탕이 많이 들어있는 건강하지 못한 음식이라는 인식을 얻게 됩니다. 실제 과거 아이들을 위한 시리얼의 경우 전체 중량의 50%를 설탕이 차지한적도 있다고 하는데요. 2000년대 중반부터 시리얼 회사들이 설탕과 나트륨을 지속적으로 저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비자들은 시리얼을 설탕범벅인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흐름에 켈로그는 2000년에는 유기농 시리얼 회사인 카시를 인수하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시리얼 시장이 정체된 것은 이 같은 배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시리얼 시장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아침식사 시장은 시리얼은 아이들에게 나쁜 음식이다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점점 시리얼을 먹이는 엄마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도 시리얼이 설탕 범벅이며 건강에 좋지 않다는 소비자단체들의 발표와 언론 보도가 계속됩니다.

국민영양통계에 따르면 3~5세 아이들 중 시리얼 섭취비율은 2013년 16.43%에서 2016년 12.98%로 계속 하향 추세에 있습니다. 반면 성인 시리얼 시장은 다른 간편아침식과의 경쟁과 높아지는 아침결식률로 인해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아침결식률은 2005년 21.1%에서 2016년 26.3%으로 점차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시리얼에 들어있는 설탕이 오렌지주스 한잔보다도 훨씬 적다고 시리얼 회사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리얼시장에 두드러지는 변화는 바로 '과거로의 회귀'입니다. 바로 1863년 콘플레이크보다 더 먼저 발명된 그래놀라와 1900년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뮤즐리 시장이 커지는 것입니다. 콘플레이크와 아이들용 시리얼로 대표되는 기존의 시리얼 제품들과는 대비되는 제품군으로 그래놀라와 뮤즐리가 마케팅되고 있고 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핫 시리얼'의 부상도 대표적인 '과거로의 회귀' 현상입니다. 핫 시리얼은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기존의 콜드 시리얼에 대한 대안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롯데제과에서 퀘이커오츠를 수입해서 국내에 팔고 있기도 합니다.

콘플레이크와 그래놀라, 뮤즐리는 제조 공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플레이크는 옥수수, 밀, 귀리 등 곡물로 반죽을 만든 후 이것을 얇게 압착해 구워낸 제품입니다. 첵스나 치리오스 같은 시리얼도 곡물이 중심인 제품입니다. 반면 뮤즐리는 곡물, 견과류, 말린 과일등을 굽지 않고 공정을 최소화합니다. 그래놀라의 경우 곡물, 견과류, 말린 과일 등에 꿀이나 시럽을 바른 후 오븐에 구워서 만듭니다. 플레이크류는 곡물이 주원료이므로 가격도 저렴하고 영양소가 다양하지 않지만 뮤즐리나 그래놀라는 견과류나 말린과일이 많이 들어가서 가격도 비싸고 영양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래놀라나 시리얼을 칼로 베듯이 나눌 수 없는 것이 시중에 판매되는 그래놀라 중 많은 수가 그래놀라와 시리얼을 섞어서 판매하고 있기도 하고 시리얼에도 견과류를 넣어서 판매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그래놀라의 설탕과 칼로리입니다. 그래놀라는 제조공정상 플레이크보다 열량도 훨씬 높고 당의 양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건강한 식품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시리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제 건강과 영양보다는 친환경적인 이미지와 품질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시리얼 회사들이 요즘 반대로 설탕을 다시 시리얼에 집어넣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는데요. 어차피 설탕의 양과는 무관하게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시리얼을 먹지 않기 때문에 기존 소비자들이라도 만족시키자는 취지라고 합니다.

최근 그래놀라 시장에 뛰어든 오리온의 제품 중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시리얼 형태가 아닌 `그래놀라 바`입니다.

'과거로의 회귀'와 다른 시리얼 시장의 또 다른 트렌드는 '에너지바'시장의 성장입니다. 2015년 세계 곡물가공식품 시장 규모를 보면 전체 436억달러 시장(약 49조원)에서 기존의 콜드 시리얼 시장이 53.3%, 핫시리얼이 10.5%인데 시리얼바 시장은 36.2%인 158억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시리얼을 뭉쳐서 만드는 것이 시리얼바인데 이 시리얼 바는 심지어 우유나 물도 필요없다는 점에서 간편함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편식이라는 시리얼의 본질에 부합하는 제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리얼은 그 출발에서부터 '환자식' '건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 시리얼에 설탕을 첨가하면서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식사가 돼 버렸고 지금도 당시에 얻은 '나쁜 음식'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건강식'이라는 원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맛이 없으면 먹지 않는 것처럼 시리얼의 건강만 강조되는 것도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아침을 먹이려면 맛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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