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배우 김영광 "좋아하면 무조건 직진, 연기 아닌 그냥 저예요"

송혜진 기자 2018. 9.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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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결혼식' 주연
김영광은 어릴 적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한때 만화방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집엔 만화책이 가득해요. 요즘도 시나리오나 대본을 읽을 때면 만화처럼 눈에 장면을 그려 보이죠. 또렷하고 생생하게 그려질수록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이 나요. ‘너의 결혼식’이 제겐 그런 영화였고요.” 그의 입가에 길쭉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감독님이 '방금 한 것 다시 해볼래?'라고 할 때마다 당황스러웠어요. 방금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질 않았거든요. 연습해서 나온 것도 아니고 고민해서 만든 것도 아녔으니까요. 그냥 카메라 앞에서 맘대로 놀았어요. 이렇게까지 마음의 빗장을 풀어놓고 연기한 건 처음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연기했는지 기억 안 날 수밖에요(웃음)."

잘 익은 밤톨이 쩍 갈라지듯 큰 입이 벌어지며 길쭉한 웃음을 머금는다. 깎아놓은 대리석처럼 생겼건만 배우 김영광(31)은 말랑한 찰흙에 가까웠다. 말투도 몸짓도 즉흥적이면서 유연했다. 이야기하다 민망하면 커다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고, 웃을 땐 입을 맘껏 열고 '하하' 소리를 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너의 결혼식'(감독 이석근)에서 그가 연기했던 주인공 '우연'과 똑같은 모습이다. 지난달 말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영광은 이 말에 "제대로 보셨어요!"라고 했다. "영화 속 우연이는 그냥 저예요. 지금껏 나와 다른 누군가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안고 촬영에 임했다면 이번엔 반대였거든요. 감독님이 '그냥 널 보여주면 돼'라고 하신 다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냥 제 안에 있는 표정과 웃음과 눈물이 다 튀어나오는 기분이었어요. 영화 속 우연이는 그러니까 정말 제 평소 모습 100%예요." 그의 큼직한 입이 다시금 길쭉해졌다.

10년 만에 끼운 '몰입의 단추'

첫사랑을 향해 바보처럼 직진하는 우연이가 본인의 원래 모습과 가깝다는 거죠?

"누군가를 좋아할 때 빠져드는 모습이 닮았어요. 영화 속 우연이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그야말로 팔다리도 어떻게 둘 줄 몰라하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같은 반 반장 여자 아이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 애에게 잘 보이려고 숙제 열심히 했고, 담임 선생님에게 '저 아이와 나란히 앉혀주시면 공부 저 열심히 하겠다'는 쪽지를 써서 드리기도 했어요. 그 애가 '네가 수학 시험 백점 맞으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을 땐 밤새 벼락치기를 해서 시험을 봤는데 마지막 두 문제를 끝끝내 못 풀어서 시험 끝나고 운 적도 있죠(웃음)."

영화 '너의 결혼식'의 한 장면


'너의 결혼식'에서 김영광이 연기한 '우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여학생 '승희(박보영)'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재수생이 되어서도 우연은 승희와 같은 학교에 다니겠다는 집념으로 공부해 결국 명문대에 진학하지만, 정작 대학에서 마주친 승희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달콤한 추억만을 녹여낸 많은 첫사랑 영화와 달리 '너의 결혼식'은 그렇게 울퉁불퉁한 현실을 함께 얘기한다. 박보영이 이런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승희를 세밀하게 연기했다면, 김영광은 그래도 사랑을 향하려 하는 달뜬 청춘의 얼굴을 그대로 그려내는 쪽이다. 두 사람의 연기 덕분일까. '너의 결혼식'은 4일 누적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영화 본 관객들이 "김영광이 진짜로 박보영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죠.

"저도 그 얘기 들었어요! 저랑 친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완전 네 평소 말투 그대로 영화에 나오더라'면서 '근데 박보영 정말 좋아하는 거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제대로 몰입했다는 소리로 들려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아시다시피 제가 그동안 연기하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웃음). 돌아보면 이번엔 정말 박보영씨랑 자연스럽게 상황에 녹아들었던 것 같아요. 우연이랑 승희랑 헤어지는 장면을 찍는 날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감독님을 붙들고 '시나리오를 바꿀 순 없느냐'고 물었다니까요."

―그런 몰입이 지금 가능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연기는 이런 거야'라는 막연한 틀을 가슴에 품고 있었고, 거기에 제 모습이 제대로 끼워지지 않아서 맘고생깨나 했었죠. 그 진통을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일까요. 이번에야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런 틀 같은 것은 없다는 걸요. 연기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내가 진심을 보여주지 못하면 그건 이미 좋은 연기가 될 수 없다는 걸요. 아, 그런데 실은 이런 말도 부끄러워요. 그냥 나이 서른 넘어서야 제가 첫 단추를 끼우는 법을 터득한 거예요. 연기라는 걸 한 지 10년 만에요(웃음)."

두들긴 만큼 열린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영광은 본래 모델 출신이다. 인천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3학년 때 "모델 되면 하루에 100만원씩 받는다"는 말만 듣고 나갔던 광고 촬영장에서 뒤통수만 찍혔다. 그런데도 그 뒷모습 사진을 보고 모델 에이전시 회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서울에 올라와 '카루소' 장광효 디자이너를 만나 면접을 봤고 이후 곧바로 패션쇼 무대에 섰다. 187㎝의 훤칠한 키, 깎아낸 것 같은 이목구비 덕에 김영광은 금세 톱 모델 자리에 올랐다. 다들 "성공했다"고 했다. 그런데 김영광은 이 무렵 오기 비슷한 것을 부렸다. 2008년 2월 무작정 이탈리아 밀라노로 날아갔고 수도 없이 현지 패션쇼에 서기 위한 면접을 봤다. 동양인 모델은 무대에 거의 서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수십 곳을 돌았지만 모두 떨어졌다. '포기해야 하나' 싶을 무렵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였다. 그렇게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 무대에 섰고, 그해 8월엔 동양인 모델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디올 옴므' 컬렉션 무대에도 올랐다.

―굳이 해외 진출 안 해도 잘나가던 시절 아녔나요.

"그랬죠. 그렇지만 얼떨결에 시작했던 그 일이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무엇이든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성격이거든요. 모델 일도 그랬어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기왕이면 좀 더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고, 그래서 무턱대고 문을 두들겼던 거죠."

2008년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연기 데뷔를 했다. 이후 '굿 닥터'(2013)와 '아홉수 소년'(2014),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2016), '파수꾼'(2017) 등 18편의 드라마에 출연했고 영화도 3편가량을 찍었다. 꽤 다작(多作)이다. 김영광은 "연기를 막상 시작해보니 연기하는 게 또 참 좋았다. 근데 그만큼 잘하진 못해서 안타깝고 애가 탔다. 놀 주제가 못 된다고 생각했고 쉬지 않고 일하려 했다"고 했다.

―계속 문을 두들기고 있었던 거네요.

"맞아요. 두들겨서 이제 요만큼 열린 거죠. 돌아보면 그래도 결국 두들긴 만큼 열렸던 것 같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더 두들길 거예요. 이만큼 열릴 때까지요." 김영광이 길쭉한 팔을 벌려 보였다. 큼직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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