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코르셋'이 가져온 변화.. 업계에 끼친 영향 있었을까?

신혜지 2018. 8. 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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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미용·패션업계 "체감하지 못해" vs "변하는 사회 흐름 읽어야"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세상이 바라는 ‘여성스러움’을 거부하며 화장하지 않을 권리, 코르셋을 입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탈 코르셋’ 운동이 등장했다. 탈 코르셋 운동에 동조하는 여성들은 민낯에 짧은 커트머리, 운동화에 편안한 바지, 콘택트렌즈 대신 안경을 착용하며 ‘꾸밈노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억압적 문화에 반기를 들고 있다.

몇 개월 전부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탈 코르셋 인증’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며 ‘인증샷’을 올리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화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가지고 있는 화장품을 몽땅 부러뜨린 여성들도 있었다. 탈 코르셋 운동이 몇 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이 시점. 과연 여성들의 움직임이 실제로 관련 업계의 매출에 끼친 영향은 있었을까?

◆ 화장품 매출 감소?, “체감하지 못해” vs “전폭적인 사회 흐름 읽어야”

지난 7월 한 화장품 회사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탈 코르셋 운동이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 한 직원은 ‘지금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일명 탈 코르셋 운동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고, 해당 글에서 “내가 있는 부서에서는 매출 감소 등을 체감하지 못한다”며 탈 코르셋에 따른 변화에 의문을 던졌다.

해당 게시글에 찬성하는 직원들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 같다” “온라인상에서만 일부 나타나는 극소수 세력의 극단적 움직임으로 파악한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탈 코르셋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직원은 “주변을 조금만 봐도 화장품 구매 빈도수, 아침 화장에 할애하는 시간, 사용 제품 단계 등을 월등히 줄이고 있는 추세”라며 “우리 회사 고객도 빠지고 있는 게 팩트”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직원은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왜 소수의 이야기라 생각하나”라며 “20대 초중반대 전폭적인 사회 흐름이고 크게 체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와 관련해 해당 회사 관계자는 “전반적인 내수시장의 침체와 더불어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면세시장이 부진했던 것을 매출 하락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 측에서 발표한 내용 이외에는 공식적으로 따로 언급해드릴 만한 사안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A(27)씨는 “유의미한 통계가 나오지도 않았고, 설령 탈 코르셋의 여파로 회사의 매출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 어떤 회사도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 홍대 미용실 “숏컷, 늘어난 건 사실”

하지만 홍대에서 3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B씨의 의견은 달랐다. B씨는 “탈 코르셋의 영향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최근 몇 달 새 단발이나 숏컷을 하러 오시는 여성 손님들이 꽤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단발머리를 하러 오시는 손님은 많은 편이었지만 목이 드러나는 짧은 커트머리를 요구하는 분들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며 “특히 우리 미용실은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방문하는 미용실 중 하나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촌의 한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C씨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지난 몇 년과 비교해보면 올해 숏컷을 하시는 고객들이 꽤 늘어난 것 같긴 하다”며 “여름을 맞아 머리를 짧게 자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탈 코르셋의 영향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동작구에 사는 D씨(26)도 얼마 전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를 싹둑 잘랐다. D씨는 어릴 때부터 긴 머리를 유지해온 엄마와 언니를 보고 자란 탓에 단발머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무엇이 나를 무섭게 만드는 걸까’를 생각해보니 그 두려움 속에는 짧은 머리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존재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D씨는 처음 단발머리를 했을 때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짧은 머리에 익숙해졌다. 밥을 먹거나 양치질을 할 때 매번 머리카락을 부여잡지 않아도 되고,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도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소위 말하는 ‘예쁜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다. 머리 길이는 점점 더 짧아졌고 이제는 숏컷에 가까운 길이가 됐다.

D씨는 “머리가 짧아진 덕분에 생활이 더 편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스스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을 붕괴시켰다는데 더 큰 의의를 둔다”며 “비로소 나는 외모 강박이라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는 탈 코르셋 운동이 편의를 위한 선택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꾸밈’이라는 행위 자체가 실은 ‘사회적 여성성’이라는 굴레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이에 반기를 들며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다.

◆ 변하는 국내 패션업계… 여성 모델도 달라졌다

탈 코르셋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여성 의류업계에서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활동성과 편안함을 모두 갖추면서도 ‘티피오(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여성의류가 제작·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여성정장 바지, 남녀 공용 와이드 팬츠, 슬랙스, 티셔츠 등 편안한 옷을 제작·판매하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여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김수정 대표 제공

온라인 쇼핑몰 ‘꽃피는 시절’의 김수정 대표는 평소 실용성보다는 ‘겉치레’를 위해 만들어진 여성복에 큰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에 김 대표는 “기존 여성복에서 많이 보이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수많은 샘플링을 거쳐 옷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몇몇 제품은 품절 사태를 빚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는 공동구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덕분에 매출도 올랐다고 한다. 김 대표는“실제로 많은 여성분들이 내가 느낀 문제의식에 동감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 쇼핑몰에서 제작·판매하고 있는 옷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여성복 사이즈보다 반 치수 정도 크게 제작된 것”이라며 “그동안 여자 바지는 비정상적으로 작고 타이트하게 나왔다. 이는 사이즈가 큰 게 아니라 원래 정상적인 사이즈”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에는 ‘데님 와이드 팬츠’와 ‘스티치 5부 팬츠’는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기존 여성복에서 볼 수 없었던 넉넉한 밑위 기장과 깊은 주머니가 있다. 실용성을 최대화 한 옷이라 실제 착용 시에도 굉장히 편안한 제품”이라며 “다가오는 가을·겨울 시즌에는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엎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들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인드브릿지 홈페이지 캡처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마인드브릿지’ 역시 깔끔하면서도 활동성을 강조한 의상들로 구성된 옷을 선보이고 있어 많은 여성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최근 공개된 마인드브릿지의 화보 속 가수 설현씨가 입은 의상들은 SNS 상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마인드브릿지 관계자는 “자사의 비즈니스 패션은 보다 활동성을 강조한 의상들로 구성돼 있다”며 “여성 패션의 경우, 스커트와 같은 제품보다 슬랙스, 점퍼, 롱 코트를 활용한 아이템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특유의 허리 밴딩으로 ‘테이퍼드 핏’을 적용한 슬랙스의 매출이 좋다”고 밝혔다.

소비자 E(29)씨는 일련의 변화들을 지켜보며 “화보 속 편하고 사람다운 옷을 입은 모델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며 “옷뿐만 아니라 굽 낮은 신발을 신고 있는 모델의 모습을 보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았다고 느껴져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여자 정장에는 곡선이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이라 실상 일할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며 “이렇게 편안한 옷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씨는 “업계에서도 사회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에 따르면 페미니즘 등장 초기에는 패션과 외모에 관심을 완전히 끊은 활동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 역시 하늘하늘한 프릴이 달린 옷이나 화장에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비난을 퍼푸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대개는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여성들은 선택이 가능해지자 이왕이면 편안하고 활동이 용이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 역시 탈 코르셋으로 자신의 미용과 스타일에 대한 선호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편안함·편의성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그 ‘선택지’에 열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신혜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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