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나라 제주..탐라 만리장성

2018. 8. 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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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의 돌담과 돌 문화 ①
"인적이 간 곳, 돌담 없는 곳은 없다"
검은 현무암 돌담, '흑룡만리'
제주인들의 삶 녹아 있는 문화 상징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 지정

[한겨레]

제주돌문화공원 안 오백장군 갤러리 부근에 세워진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거석들.

제주는 돌의 나라다. 구멍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을 품은 제주의 색은 투박하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할 즈음 창밖을 내려다보면 푸른 대지와 들녘 위에 밭과 밭을 가르며 휘어지기도 하고, 곧게 뻗기도 한 선들이 보인다. 돌담이다. 제주도가 다른 지방과 다른 건 제주도 곳곳을 선과 선으로 잇는 돌담이다.

제주도에 있는 사람들은 화산섬 제주도가 돌의 섬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눈을 돌리면 사방이 돌담으로 둘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안가부터 중산간 목장 지대까지, 동부로 가도 서부로 가도 온통 돌담이다. 돌담은 마을 안이나 농경지, 해안가 등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1930년대 후반 제주도를 답사한 보성전문학교 교수 최용달은 “해안 지대고 초생 지대고 할 것 없이 돌담은 이곳의 명물이다. 인적이 간 곳, 돌담 없는 곳은 없다”고 할 정도였다. 제주의 돌담은 끊임없이 이어져 밭과 밭, 올레와 집, 집과 집, 해안가와 중산간 지대를 연결하는 선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제주도의 돌담을 ‘탐라의 만리장성’이라고 한 조선 중기 어사 김상헌은 “밭은 반드시 돌로 둘렀으며, 인가는 모두 돌을 쌓아서 높은 담을 만들고 문을 만들었다”고 했다. 검은 현무암 돌담이 끊임없이 이어진 특성을 살려 ‘흑룡만리’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돌담은 다른 지방에도 있지만, 제주처럼 하나의 ‘문화’를 이룬 곳은 드물다. 전문가들은 돌 문화를 “돌로 만든,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유형의 문화유산과 돌을 소재로 한 신화·전설·민요 등의 정신문화”(<제주의 돌문화>, 이윤형·고광민)라고 정의하는데, 제주는 돌 문화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본고장이다.

밭담으로 구분된 제주시 구좌읍의 밭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돌담은 바람을 막아주고, 경계를 획정하며, 소나 말을 보호하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다. 제주 돌담의 기원은 고려 후기인 1234년부터 5년 동안 제주 판관으로 있던 김구가 토호 세력으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밭에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었다는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농지를 개간하면서 밭에 널려 있는 돌들을 한쪽에 모아 두었고, 가족이 살 집을 지을 때도 돌담을 쌓아 바람과 눈비를 막았다. 제주 돌담의 역사는 제주인들의 삶의 역사다.

제주의 돌담은 기능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돼 사용된다. 생활을 위한 돌담은 초가집 담, 집 안으로 들어가는 올렛담, 농사를 위한 밭담, 목마장 등 마을 공동 목장에 쌓았던 잣성 등이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오름에 오르면 길다랗게 이어진 돌담이 보인다. 조선시대부터 600여 년의 역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간직한 대표적인 목축 문화유산이 잣성이다. 잣성은 중산간 지대에 방목하는 말들이 농경지로 내려와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때 중산간 지역을 빙 둘러가며 쌓은 ‘돌성’이다. 밀물 때 물고기가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던 원담, 해녀들의 탈의장과 추운 날 불을 쬐거나 쉼터 역할을 했던 불턱 등도 생활 돌담이다.

환해 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주 해안가에 쌓은 옛 군사시설이다. 환해장성의 하나인 하도리 별방진성 유적.

옛 군사 목적으로 사용했던 연대와 진성, 제주도 해안가를 따라 둘렀던 환해장성 등은 생존을 위한 돌담이었다. 현대사로 들어오면, 4·3사건 당시 군경이 무장대와 주민들을 분리하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 만든 4·3성담도 있다. 망자를 위한 돌담은 들녘이나 밭 가장자리에 만든 산담이 대표적이다. 산담은 제주시 구좌읍 용눈이오름이나 좌보미오름 등에 널려 있다. 이처럼 제주도 돌담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면서 독특한 돌 문화를 만들었고, 민중문화의 산물이 됐다.

그러나 돌담은 도로와 관광 개발, 농지 정리, 농업의 쇠퇴 등으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예전의 돌담은 콘크리트 벽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던 돌담은 벽돌담으로 바뀌고 있다. 산담은 후손들이 가족묘를 만들기 위해 이장하거나 화장 등의 이유로 상당 부분 사라지고 있다.

온평리 환해장성 유적.

제주의 돌담은 인공물이지만 자연미를 풍긴다. 오랜 세월 주민들의 노동으로 쌓은 돌담 선의 자연스러움은 질박하다. 돌담 연구가인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은 “거미줄처럼 마을과 들녘을 흐르는 돌담의 선은 사람과 환경이 결합해 만든 대지와 시간의 작품이다. 돌담은 제주만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경관을 이룬다. 돌담은 제주인들의 노동의 기념비이자 생산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역사적 증거다”고 말했다.

강경희 제주대 강사는 “제주의 돌문화는 제주인들이 오랜 역사 속에 함께 생활하면서 형성된 정신적 물질적 문화유산의 총체다. 제주인의 삶과 정신이 녹아 있는 제주의 대표적 문화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제주의 돌담 중 밭담은 2013년 1월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4년 4월에는 제주밭담 농업시스템이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는 점을 인정받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2015년부터는 해마다 제주밭담축제도 열리고 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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