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바지에 전대.. 외국 디자이너 사로잡은 '황학동 패션'

최보윤 기자 2018. 8.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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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출신 디자이너 키코, 방한 중 도깨비시장에 매료돼

전 세계 관광지 어딜 가도 한국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등산복은 기본, 대충 얹은 듯한 모자와 허리띠를 한껏 끌어올린 배바지에 뭉툭한 운동화, 허리춤에 찬 전대(纏帶)까지…. '아재 패션'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맨 왼쪽은 최근 런던에서 열린 키코의 2019 봄·여름 남성 패션쇼. 오른쪽 두 사진은 디자이너 키코가 소셜 미디어에 찍어 올린 한국 아재 패션들. /게티이미지코리아·키코 코스타디노프 인스타그램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손가락질받던 그 패션이 느닷없이 해외 유명 디자이너 눈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은 불가리아 출신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Kostadinov·29). 런던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디자이너 중 가장 주목받는 스타다. 이번에 아식스와 협업한 운동화를 전 세계 처음으로 한국서 선보이기 위해 방한한 그는 서울 동묘 인근 황학동 도깨비 시장 주변을 거닐면서 자신의 눈에 포착된 중·장년 남성들의 패션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세계 최고의 거리(Best street in the world)'라는 문구와 함께였다. 느슨한 배바지 패션의 할배 사진엔 '좋아요'가 3700개 넘게 달렸다.

이에 국내 팬들은 '코리안 할배룩' '동묘 아재 스왜그(swag·힙합의 멋)' '아재가르드(아재+아방가르드)' 같은 수식어를 붙이며 환호하고 있다. 칭찬을 빙자해 비꼬는 것이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지만 코스타디노프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평도 적지 않다. 시장판에서 마주칠 법한 아재 패션 속에 현재 1020세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패션 요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시장 아재 필수품인 전대의 공식 용어는 패니 팩(fanny pack·엉덩이 가방). 올 시즌 루이비통·구찌·샤넬·에르메스 등 고급 브랜드 패션쇼에 등장해 열풍을 일으켰다. 또 등산복 패션은 '아노락(anorak)' 혹은 '테크웨어(tech wear)'란 용어로 재해석됐다. 아노락은 에스키모인들이 입던 방한복에서 영감 받은 스타일로 흔히 바람막이 점퍼라고 불린다. 지난해부터 발렌시아가, 사카이, 오프화이트 등에서 대거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테크웨어 역시 고어텍스 같은 소재를 이용해 방수·방풍이 잘되는 아웃도어 스타일이다. 노스페이스, 블랙야크 등 전문 브랜드는 물론 스톤 아일랜드, 준야 와타나베, 키코 코스타디노프의 2019 봄여름 패션쇼에도 등장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최근 "할아버지가 즐겨 입었던 조끼나 신발같이 고루하게 보였던 스타일이 현재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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