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남극 물고기, 국내 아쿠아리움에서도 만난다

허정원 입력 2018. 7. 10. 16:05 수정 2018. 7. 10. 16: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극지방 물고기를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극지연구소는 남·북극 바다에만 서식하는 생명체를 국내로 옮겨와 연구하기 위해 극지 해양생물 아쿠아리움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에 따라 매번 남극이나 북극에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극지 생물을 관찰, 추적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재 연구목적으로 설치된 시스템의 안정성이 확보되면, 극지 해양생물의 양식이나 관상용 아쿠아리움 등 다른 분야로도 사용처가 확대될 전망이다.


빙하의 바다서 독특하게 진화한 해양생물...골다공증ㆍ빈혈 치료 등 연구가치 높아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아쿠아리움 시스템에는 현재 남극암치ㆍ검은암치ㆍ대리석무늬암치 100마리가 중이다. 사진은 대리석무늬암치(Notothenia rossii) [출처 팬덤파워드바이위키아]

남극과 북극의 바다는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고 산소 포화도가 다른 바다에 비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해양생물들도 이러한 환경에 맞춰 독특하게 진화해 왔다. 예를 들어 지난해 1월, 세종과학기지 해양조사팀이 발견한 ‘남극 빙어’는 피가 흰색이다. 수중의 산소가 풍부하다 보니, 산소 전달을 위해 존재하는 혈액 내 헤모글로빈이 그다지 필요치 않게 된 것. 혈액을 선홍색으로 보이도록 하는 헤모글로빈이 적다 보니, 피가 흰색을 띠게 된 것이다.

극지연구소 유전체사업단의 김진형 선임연구원은, “남극 어류는 극히 적은 헤모글로빈을 갖고도 문제없이 살아간다. 인간으로 치면 만성 빈혈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는 셈”이라며 “이러한 특징을 잘 연구하면 빈혈 치료제 개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극지연구소가 '극지 해양생물 아쿠아리움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국내에서 남극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2007년 3월, 호주 남부 남극해에서 발견된 아델리 펭귄의 모습 [AFP=연합뉴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5t 규모의 아쿠아리움 수조에는 현재 남극암치ㆍ검은암치ㆍ대리석무늬암치 100마리가 적응 중이다. 이들 어류는 물속에서 상하이동을 하는 데 쓰는 '부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부레의 도움 없이 헤엄을 치다보니 운동량이 많고, 때문에 뼈가 유연해지도록 진화해 왔다. 이를 ‘연골화 현상’이라고 한다.

김 연구원은 “연골화는 사람으로 따지면 골다공증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유사하다”며 극지 생물 연구가 골다공증 치료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극지에 가지 않고도 국내서 인공산란 가능...핵심은 ‘순환여과 시스템’

아쿠아리움 시스템의 핵심은 수온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자연상태의 바다와 유사하게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는 '순환여과 과정'에 있다. 연구목적으로 만들어진 아쿠아리움 시스템의 안정성이 확보되면, 극지해양생물의 양식이나 관상용 아쿠아리움 등 다른 곳으로도 사용처가 확대될 전망이다. 사진은 2017년 10월21일 개관한 스위스 로잔의 '아쿠아티스' [AP=연합뉴스]
이외에도 극지 해양생물은 영하 1.9도에 이르는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비동결단백질(AFP)을 발달시키고 있다. 영하의 수온에서 체액이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액체가 얼면 뾰족한 얼음 결정이 생기면서 단백질을 파괴하기 때문에, AFP는 극지방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에게 필수적이다.

따라서 AFP를 잘 응용하면 갑작스러운 한류로 인해 양식장의 물고기가 폐사하는 현상을 막고, 나아가 혈액이나 장기를 저온에서 손상 없이 보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극지연구소의 설명이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딱딱하게 얼리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로 보관하는 데에도 AFP가 쓰이고 있다.

극지 해양생물은 영하 1.9도의 차가운 수온에 적응하기 위해 비동결단백질(AFP)를 발달시키고 있다. AFP를 활용하면 한류로 인해 양식장의 물고기가 폐사하는 것을 방지하고, 혈액이나 장기를 저온에서 손상없이 보존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처 미국위생협회]
이렇듯 극지 해양생물은 연구가치가 높지만, 극지에 직접 가야만 연구할 수 있어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안정된 조건에서 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면서 극지에 가지 않고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가능케 한 아쿠아리움 시스템의 핵심 기술은, 수온을 영하 1도로 차게 유지하면서도 자연상태에서 노폐물 제거 역할을 하는 수중 미생물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대체하는 것. 이를 위해 수조에서 물을 빼내 12도까지 가열, 노폐물을 제거한 후 다시 냉각시켜 수조에 주입하는 ‘순환 여과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국이 보유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지금까지 극지 해양생물에 대한 연구는 현지에서만 가능했으나 아쿠아리움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국내에서도 연구가 가능해졌다. [출처 연합뉴스]
김 연구원은 “남극 어류의 인공산란을 유도해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실험 대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극지 해양생물의 특성화 연구를 통해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가치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