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끝모를 초원 능선에서 길 잃어도 좋으리

프레시안 알림 2018. 7. 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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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오름학교 <초가을의 초지능선오름> 특집

[프레시안 알림]

 

*강의 마감됐습니다^^


전 국토의 65% 이상이 산지로 된 우리나라, 한때 나무가 땔감으로 다 베어지고 전국의 산하가 헐벗었던 때가 있었지만 산림녹화사업이 성공을 거두며 지금은 전 세계에서도 드물 만큼 빼곡한 숲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목가적인 풍광의 초지대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천 앞바다 굴업도의 낭개머리나 ‘천사의 섬’ 신안에 있는 가거도 섬등반도의 풀밭능선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제주 오름 중에는 나무가 드물고 초지로 이어진 능선을 가진 곳이 몇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제5강에 포함된 용눈이오름이고, 이번 제6강에 찾아갈 오름들 또한 그렇습니다. 초가을의 선선함이 묻어나는 제주의 바람이 훑고 지나는 풀밭능선이야말로 오름나그네들에게 더없이 좋은 트레킹 대상지 같습니다.

2017년 11월 개교한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가 제1강 <애월의 오름>, 제2강 <안덕의 오름>, 제3강 <표선의 오름1>, 제4강 <제주서부 중산간오름>, 제5강 <곶자왈 특집>에 이어 오는 9월 제6강으로 <초지능선오름>을 준비합니다. 높은오름, 동검은이오름, 문석이오름, 백약이오름, 거슨새미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송당본향당의 환상적인 초가을의 초지능선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9월 7(금)-8(토)일 1박2일로 열립니다.

▲겁이 많은 누렁소들은 수풀 속으로 숨기도 한다.Ⓒ이승태


미술평론가 유홍준 선생은 제주도를 다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곱 번째 책에서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는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의 말을 빌려 제주에서의 오름의 소중함을 설명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지난 11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이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를 개교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저명한 여행작가이며 제주오름 전문가인 이승태 선생님. 오름학교는 앞으로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캠핑과 등산,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작가입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으로, 그동안 산악전문지 <사람과산> 기자를 거쳐 편집장을 지냈고, 그 시절 우리나라 산줄기 답사를 위한 등산지도 가이드북인 <1대간9정맥 종주지도집>과 <한국100명산 등산지도집>, 국립공원 탐방안내서인 <북한산국립공원>, <지리산>, <설악산>을 제작했습니다. 2012년에는 일본 큐슈 지역의 대표적인 산 열다섯 곳을 소개한 산행보고 프로그램인 <마운틴TV>의 ‘큐슈의 산(9부작)’에 출연했으며, 일본 큐슈올레 전 구간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이자 취재작가, 한국여행작가협회에서 진행하는 ‘여행작가학교’ 강사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아일보> <화광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와 사보에 여행기사를 기고 중입니다.

2013년부터 제주 오름에 빠져 툭하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으며, 그동안 여러 매체에 오름에 관한 기사를 기고했습니다. 2018년에 오름 트레킹 안내서인 <제주 오름>(가칭)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북한산 둘레길 걷기여행> <캠핑 주말여행 코스북>(공저), <걸어유 충남도보여행>(공저)이 있습니다.

▲동검은이오름 정상부. 양쪽 높은 지대 사이가 가장 깊고 큰 굼부리다.Ⓒ이승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오름학교>를 여는 취지를 들어봅니다.

올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화산섬 제주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오름이 모여 있습니다. 그 수가 자그마치 368개라고 하니 매일 하나씩 올라도 한 해가 모자랄 정도죠. 제주 섬 어느 곳을 가도 오름이 있고, 그 오름에 기대어 마을이 있습니다. 그 오름으로 억새를 베러 다니고, 거기서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인들은 살아왔습니다. 오죽했으면 제주 사람들이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을까요! 오름은 제주의 마을과 마을을 형성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각 오름에는 제주 사람들이 떠받들던 신들이 자리 잡고 있고, 오름과 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거친 황무지인 ‘뱅듸(버덩)’는 예부터 말과 소를 키우는 터전이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 80퍼센트쯤은 오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 오름은 ‘육지’의 숱한 산들과 달리 오르기가 편하고, 어지간한 오름을 둘러보는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또 험한 곳이 거의 없으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그리 부담이 없죠.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름 자체가 그렇고, 오름 능선에 올라 조망하는 사방의 풍광은 숨을 멎게 할 정도입니다. 소와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오름 능선에 아무렇게나 앉아 제주의 바람을 느끼는 행복을 무엇에 비할까요! 기생화산인 오름은 대부분 분화구를 가졌고, 그 형태 또한 제각각입니다. 그 독특한 지형을 살피는 것 또한 흥미진진한 즐거움입니다.

다시 ‘오름나그네’가 되어
368개의 오름은 한라산 백록담 바로 아래의 방애오름, 윗세오름을 시작으로 바닷가에 솟은 성산일출봉과 송악산, 비양도와 사라봉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제주 동쪽 송당리 일대엔 가장 많은 오름이 분포해 오름들이 겹치며 산너울처럼 펼쳐지는 신비로운 풍광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 서쪽의 오름들은 하나씩 뚝뚝 떨어져 있죠. 그러나 저마다 빼어나 찾는 걸음이 즐겁습니다.

1927년 제주에서 태어나 1995년, 일찍 생을 마감하기까지 제주의 산악인이자 언론인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고(故) 김종철 선생은 제주의 모든 오름을 답사한 기록을 <오름나그네>라는 세 권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지금까지도 오름의 바이블로 통하는 귀한 책입니다. <오름나그네>의 책장을 넘기다가 오름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사랑, 감동과 호흡이 전해져 가슴 뜨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오를 수 있는 모든 오름을 올라보는 게 목표입니다. 모두 함께 ‘오름나그네’가 되어!

▲오후의 높은오름. 창공에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 있다.Ⓒ이승태


9월, 초가을의 <초지능선오름> 특집을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6강 1일차 / 9월 7일(금)
초지능선오름 특집1 / 높은오름-동검은이오름-문석이오름-백약이오름

이 동선으로 찾아 오르는 네 오름은 오름학교를 열면서부터 언제 갈까 고민을 거듭하던 곳입니다. 제가 무척 아끼는 코스기도 하고요. 하루에 걷기에 딱 좋은 거리와 규모를 가졌습니다. 적당한 거리의 들판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제주 중산간의 풍광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입니다.

송당리 오름 전망대, 높은오름
맨 처음 만날 곳은 이름에서부터 맹주다운 기운을 대놓고 풍기는 ‘높은오름’입니다. 제주에서 오름이 몰려 있는 구좌읍 송당리에서도 가장 높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과연 우뚝한 자태를 가졌습니다. 겉보기엔 삼각뿔모양이어서 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 같습니다.

높은오름(405m)은 일대에서 유일하게 고도가 400미터를 넘어서 주위의 숱한 오름보다 두드러집니다. 오름 자체의 높이인 비고(比高)도 150미터쯤으로 높은 축에 들어 가파른 사면을 이뤘습니다. 30년쯤 전만 하더라도 오름 전체가 온통 풀밭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나무가 더 많습니다.

정상엔 둘레가 500미터나 되는 우묵한 원형 굼부리가 세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채 멋진 자태를 보여줍니다. 다랑쉬나 산굼부리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아늑한 풀밭 느낌의 굼부리입니다.

일대에서 우뚝 솟다 보니 정상부 능선에서 사방을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의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으로 이어지는 멋진 풍광은 물론, 동부 오름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랑쉬오름과 송당리의 뭇오름을 조망하기에 최고의 명당입니다. 한라산도 잘 보입니다.

탐방로는 무척 단순합니다. 구좌읍공설묘지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릅니다. 공설묘지를 벗어나며 계단길로 바뀌며, 중간쯤에 숨 돌리며 쉬어가라고 얼마간의 평지도 나옵니다. 거기서 정상부 능선까지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능선에 올라서는 굼부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내려섭니다.

정상부엔 ‘피뿌리풀’이라고 부르는 귀한 식물이 자랍니다. 더덕처럼 생긴 굵은 뿌리의 색이 핏빛처럼 붉어서 이런 무서운 이름이 붙었는데, 수십 개의 작은 꽃이 모인 꽃송이는 아주 신비롭고 예쁩니다.

▲높은오름에서 본 한라산과 제주 동부의 오름들. 제주의 아름다움은 오름에 올라야 보인다.Ⓒ이승태


보석 같은 오름 중 한 곳, 동검은이
이 오름을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표현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두 뿔이 달린 곤충 같고,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마을 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제주의 어떤 오름과도 비교되지 않는 독특한 풍광을 지녔습니다.

오름 사면이 둥글고 층층으로 언덕진 지형이 사방으로 뻗어간 모습이 거미집을 닮았다고 해서 옛사람들이 ‘거미오름’이라 불렀습니다. 또 검은오름이라고도 불렀는데, 송당리 서쪽에도 있는 검은오름을 ‘서검은오름’, 거미오름을 ‘동검은오름’이라고 구별했습니다. 조천읍과의 경계에 걸쳐 있는 서검은오름은 현재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된 ‘거문오름’입니다. 동검은오름은 구좌읍, 성산읍, 표선면과의 정겹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통 ‘동검은이오름’이라 부르며, 한자로는 ‘東巨文岳(동거문악)’ ‘東巨門岳(동거문악)’ ‘東巨門伊岳(동거문이악)’ 또는 거미 주자를 쓴 ‘蛛岳(주악)’이라고도 표기합니다.

동검은이오름은 세 개의 굼부리를 가졌습니다. 무덤 하나가 들어설 만한 얕은 게 있는가 하면 정상 능선이 품은 굼부리는 바닥이 까마득하고 아찔할 만큼 깊습니다. 또 동북쪽으로는 부드러운 초지대를 이룬 알오름이 여럿입니다. 그 초지대 알오름을 따라 십여 마리의 소가 풀을 뜯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높은오름 들머리에서 500미터쯤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엔 ‘미나리못’이라는 물웅덩이도 있습니다.

높은오름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라 들어서다보니 동검은이오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포장도는 오른쪽으로 90도 꺾이며 문석이오름과의 사이로 빠져 백약이오름쪽으로 갑니다. 꺾이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너른 초지대가 보이고, 문석이오름 앞 소나무 아래에 표석을 비롯해 몇 개의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표석 앞에서 왼쪽으로 승용차가 다닐 만한 흙길이 나 있습니다. 곧 쇠파이프로 된 목장 울타리를 만나는데, 울타리를 통과한 후 울타리를 오른쪽에 끼고 직진하니 위치안내도가 서 있는 오름 입구가 금방입니다. 입구를 지나 오름자락의 수풀지대를 헤치며 5분쯤 가자 초지대로 이뤄진 알오름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동검은이오름 정상부의 작은 굼부리들. 구덩이마다 산담이 하나씩 들어섰다.Ⓒ이승태


경주 왕릉보다 더 부드럽고 잘 생긴 알오름마다 한두 마리의 누렁소가 차지하고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인기척을 느끼고는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누렁소와 눈이 마주칩니다.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을 것 같던 팍팍한 마음이 스르륵 풀리며 무장해제 되는 느낌입니다. 나도 소가 된 듯 기분 좋게 풀밭을 뛰어다니며 주변 풍광을 즐기게 되죠.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가장 멋진 억새를 감상할 수 있다고 여기는 손지오름이 손에 닿을 듯합니다. 그 뒤로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아끈다랑쉬오름이 버티고 선 익숙한 풍광이 안정감 있는 배경을 이뤘습니다.

소들이 몰려다니는 풀밭능선을 따라 동검은이오름 정상부로 향합니다. 소들이 자주 다닌 곳은 풀밭 사이로 홈이 파여 시커먼 선을 이뤘습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한참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이장하고 산담만 남은 무덤들이 초지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그 뒤로 어디까지가 오름이고 어디까지가 밭자락인지 아리송한 푸른 제주의 중산간이 아득히 펼쳐져 있습니다.

잠시 후 닿은 정상부 능선. 아, 이곳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습니다. 작은 분화구 같기도 한 몇 개의 작은 구릉이 이어간 끝에 건너편으로 정상 화구벽이 보입니다. 그 사이로 남쪽으로 트인 엄청나게 깊은 분화구가 자리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분화구는 온통 수풀이 우거져 곶자왈 같습니다.

당연히 사방 조망이 압권입니다. 속이 뻥 뚫리는 풍광이 오히려 가슴을 쿵쾅거리게 합니다. 백약이오름과 한라산도 잘 보입니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알오름들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동쪽화구벽과 정상인 서쪽화구벽 사이의 작은 굼부리마다엔 무덤이 하나씩 들어섰습니다. 그 뒤로 줄이 매진 길이 이어집니다.

정상부 능선은 매우 가팔라 칼날 능선 같습니다. 바람이 심할 때는 조심해야겠습니다. 건너편 높은오름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내려서는 길이 생각보다 가파릅니다. 이 길로 오른다면 꽤나 고생일 것 같습니다. 내림길 왼쪽으로도 커다란 굼부리가 보입니다. 그 뒤로 부드럽게 누운 구릉 같은 문석이오름이 펼쳐지고, 건너편의 백약이오름도 잘 보입니다. 그 너머론 숱한 오름들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산너울이 그림 같습니다.

▲부드러운 문석이오름 초지능선Ⓒ이승태


골프장이야, 언덕이야? 작고 심플한 문석이오름
가파른 동검은이오름을 내려서니 바로 건너편에 문석이오름 입구가 보입니다. 수풀지대를 헤치며 잠시 오르니 곧 펼쳐지는 널찍한 초지대. 한자로 ‘文石伊岳(문석이악)’이라 표기하는 문석이오름의 이름에 관해서는 정확한 유래가 전하지 않습니다. 높이는 292미터, 둘레는 2077미터며, 남북 방향으로 긴 모양입니다. 낮고 작아도 남서쪽과 북동쪽으로 각각 트인 두 개의 말굽형 분화구를 가진 복합형 화산체입니다. 가파른 북쪽 비탈면엔 삼나무와 소나무가 주를 이룬 숲으로 빼곡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초지를 이룹니다.

문석이오름이 이렇게 부드러운 초지대를 이루다보니 오프로드 차량들이 무자비하게 드나들어서 차량 바퀴자국이 초지대 사이로 선명합니다. 반대편 들머리에 줄을 쳐놓고 돌을 쌓아 막고는 있지만 그리 강력해 보이진 않습니다.

정상이 어딘지도 모를 만큼 둥글둥글한 문석이오름을 산책하듯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다가 내려섭니다.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문석이오름에서 백약이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들판 사이 흙길을 따릅니다. 길섶엔 억새가 무성하고, 개민들레가 뒤덮은 무덤도 지납니다.

▲골프장이야, 언덕이야? 문석이오름 초지능선Ⓒ이승태


약초가 많이 나서 이름 붙은 ‘백약이’
제주의 수많은 오름은 나름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동그랗고, 또 어떤 것은 한쪽으로 트여 말굽형을 이루기도 합니다. 어떤 오름은 분화구를 아예 찾을 수 없는 곳도 있죠. 우리가 전에 올랐던 바굼지오름 같은 곳은 커다란 분화구의 한쪽면만 남아 도무지 굼부리였다고는 짐작키 어렵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하고 수많은 굼부리 중에서도 사람을 압도할 만한 크기의 거대한 분화구를 가진 오름이 몇 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천읍 교래리의 산굼부리가 대표적이고,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다랑쉬오름도 깊고 커다란 분화구를 가졌습니다.

오르기 편하고 올라선 후 평평한 화구벽을 따라 거대한 분화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곳은 구좌읍 송당리의 아부오름과 표선면 성읍리의 백약이오름입니다. 백약이오름이 조금 더 높을 뿐 두 오름은 모양새가 너무나 닮았습니다. 로마의 콜레세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고 큰 분화구가 말을 잃게 만들죠.


▲정상 화구벽 안쪽으로 거대한 굼부리가 드러난 백약이오름Ⓒ이승태


백약이오름은 도로변에 붙어 있어서 접근이 쉽습니다. 그래서 최근 제주여행을 나선 젊은이들이 꼭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주차장에서 오름 능선으로 이어진 긴 초지대길이 예뻐서 웨딩촬영지로 인기입니다. 겨울이면 눈썰매를 즐기기도 합니다.

일직선으로 뻗은 초지대길이 끝나며 지그재그로 오름능선까지 오릅니다. 주변 풍광이 예쁘고, 가파르지 않아서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능선에 닿은 후엔 왼쪽이나 오른쪽 아무 방향으로 택해도 좋습니다. 원형으로 화구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되니까요. 정상은 오른쪽의 왕릉처럼 둥근 봉우리(357m)지만 보통은 왼쪽을 택해 화구벽을 한 바퀴 돌아서 정상으로 갑니다. 발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굼부리는 어지간한 광각렌즈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화구벽을 따라 난 탐방로는 초지대지만 굼부리 안쪽은 소나무로 울창합니다. 이도 최근에 조성된 숲이라고 하네요. 주변 목장에서 방목한 소가 굼부리 바닥 초지대에서 풀을 뜯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정상에서 굼부리 바닥까지의 깊이는 49미터라고 합니다.

온갖 약초가 많이 난다고 해서 ‘백약이오름’이라 불렀습니다. 한자로는 百藥山(백약산), 百藥岳(백약악)이라 표기합니다. 우리 풀과 약초에 대해 안목이 밝지 못한 이에겐 그리 유달라 보이지 않겠으나, ‘가믄탈낭’이라 부르는 복분자딸기와 층층이꽃, 향유, 떡쑥, 쇠무릎, 호장근, 고비, 참마, 하눌타리, 초피, 예덕나무, 청미래덩굴 등 귀한 약초로 가득한 보물창고가 백약이오름입니다. 옛날, 제주에서 서민들이 겨울에 장만해서 두고두고 먹던 ‘백초탕(百草湯)’이란 것이 있었다더군요. 야산의 풀 백 가지쯤을 캐서 뿌리째 말렸다가 가마솥에 넣고 오래 달인 것인데, 약이 안 될 수가 없겠습니다. 백초탕에 들어가는 재료가 이곳 백약이오름에 많았을 것 같습니다.

백약이오름의 화구벽 둘레는 1.3킬로미터쯤입니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내로라하는 숱한 오름들이 풍광을 이루며 다가옵니다. 서쪽으로 비치미오름과 성불오름, 큰사슴이오름을 지나 붉은오름, 물찻오름, 불칸디오름, 성널오름이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아스라한 풍광이 감동 그 자체고, 부대악과 부소오름, 거문오름, 안돌·밧돌오름, 체오름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 북쪽 풍광도 압권입니다. 높은오름과 동검은이오름, 다랑쉬를 지나 지미봉, 성산일출봉까지 뻗어가는 동쪽 또한 가슴 뛰는 절경이죠.

약초가 많아 백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지만 능선을 한 바퀴 돌며 가늠되는 오름 숫자도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많습니다.

▲소와 사람이 어우러진 백약이오름Ⓒ이승태


제6강 2일차 / 9월 8일(토)
초지능선오름 특집2 / 거슨새미오름-안돌·밧돌오름-송당본향당

지도를 펼쳐보면 송당리 서쪽에 네 개의 오름이 나란히 이어져 있습니다. 거슨새미오름과 안돌·밧돌오름, 체오름이 그것인데요, 제주의 오름나그네들은 보통 이 네 오름을 한꺼번에 돌아봅니다. 그런데 최근 개인사유지인 체오름의 출입을 아예 통제하고 있어서 나머지 세 오름을 이어서 트레킹하는 실정입니다. 동북쪽으로 트인 체오름의 분화구 바닥엔 멋들어진 후박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인기가 많았었는데 여간 아쉬운 게 아닙니다.

▲억새가 무성한 거슨새미오름Ⓒ이승태


거꾸로 흐르는 샘을 가진 오름, 거슨새미
거슨새미오름은 송당과 대천을 잇는 비자림로변에 있습니다. ‘거슨새미’라는 요상한 이름은 이 오름이 가진 샘 때문에 붙었습니다. 오름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다 쪽이 아닌 한라산 쪽으로 흘러서 ‘방향을 거슬러 흐른다’는 의미입니다. 제주에서 몇 안 되는 역천(逆泉)이라는군요. 물론 지형 때문이지 물줄기 자체가 역류하는 것은 아닙니다.

샘을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 트인 반달 모양의 산세를 지녔고, 야트막해 보이는 정상은 380미터입니다. 자락의 편백숲을 지난 오름능선은 온통 억새로 뒤덮였습니다. 덩치가 작고 가파르지 않아서 오르내리는 게 금방입니다. 양쪽 능선 사이, 샘이 흘러가는 방향으론 널따란 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안돌오름 정상에서 본 밧돌오름. 초지대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이 인상적이다.Ⓒ이승태


걷는 즐거움이 빼어난 형제오름, 안돌·밧돌
거슨새미를 지나 다시 바깥으로 나온 곳에서 넓은 길 옆 편백숲 사이로 길이 이어집니다. 곧 오름 사이의 네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가다보니 왼쪽으로 안돌오름 입구가 보입니다. 거슨새미 자락에서 700미터쯤의 거리입니다.

편백과 삼나무가 어울린 숲을 지나자 완만한 오솔길이 초지대를 따라 기분 좋게 이어집니다.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은 목장 경계인 삼나무 울타리와 철조망이 사이로 지날 뿐, 나란히 붙은 형제오름입니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고, 큰 나무 없이 풀밭으로 덮인 외형도 서로 닮았습니다. 두 오름 모두 동북쪽으로 열린 분화구를 가졌습니다. 정상에 돌무더기가 있어서 ‘돌오름(石岳)’이라 불리는데, 남서쪽에 있는 게 안쪽에 들어앉아 있어서 안돌오름(內石岳), 북동쪽에 위치한 게 그 바깥쪽에 나앉아서 밧돌오름(外石岳)으로 불립니다. 송당리에서 볼 때 마을에 가까운 쪽이 밧돌입니다.

오름능선이 부드럽고, 예뻐서 걷는 기분 나는 곳입니다. 정상부 능선에 서면 두 오름 어디서나 제주 동부의 숱한 오름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안돌오름에서 북쪽으로 건너보이는 체오름 사이 빼곡한 삼나무숲이 장관입니다.

안돌오름 정상(368m)에 서니 건너편 밧돌오름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이 감탄스럽습니다. 삼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아래까지 깊이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 풀밭 사이의 정겨운 오솔길이 그대로 다 보이고, 오름 사면을 따라 풀을 뜯으며 소들이 지난 길이 주름처럼 비뚤비뚤 독특한 풍광을 이뤘습니다. 그 뒤로 높은오름과 동검은이오름, 다랑쉬, 돗오름, 둔지봉이 툭툭 튀어 오르며 제주 동부의 아름다운 하늘금을 긋고 있습니다. 이 풍광이 예뻐서 한참을 머무르다 내려섭니다.

사면 곳곳에 돌이 박힌 밧돌오름(353m)을 오르다가 돌아본 안돌오름은 거슨새미쪽에서 볼 때와는 달리 삼각뿔 모양입니다. 정상부에 몇 개의 산담이 있는 밧돌오름엔 일제강점기 말에 파 놓은 진지동굴도 보입니다. 높이로는 안돌오름에 밀리나 ‘돌오름’이라는 이름값으로 따지면 정상에 돌이 없는 안돌보다는 밧돌오름이 형 같습니다.

정상부 능선에 올라 보니 이곳 밧돌오름도 안돌에서 볼 때와는 달리 가운데 말굽형 분화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능선이 동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두 능선 모두 부드러운 풀밭이어서 걷는 즐거움이 빼어납니다. 오름의 북사면을 따라 형성된 굼부리의 골짜기 상단부에 ‘돌오름물’이라는 샘이 있다는데, 아직 찾아보진 못했습니다.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산상천(山上泉)이라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면 찾아보고 싶은 곳입니다.

밭돌오름의 서쪽 기슭에 자리한 들판을 ‘손당(송당)머리’라고 부른다는군요. 송당마을의 맨 위쪽이라는 뜻입니다. 벤치가 놓인 북쪽능선에 올랐다가 다시 돌아서 건너편인 북동쪽능선을 따라 웃손당으로 내려섭니다.

▲밧돌오름 정상부의 부드러운 능선Ⓒ이승태


원조 신당을 모신 송당본향당
제주의 마을은 오름자락에 기대어 들어선 경우가 많습니다. 오름이 368개나 되다보니 사실 어디에 마을 터를 잡더라도 오름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죠. 이처럼 마을과 깊은 관계에 있는 오름에는 대개 신당이 있어서 오름이 제주 사람들의 민속신앙에 아주 밀접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당이 들어선 곳은 대체로 산기슭이었으나 더러 산허리나 굼부리, 산꼭대기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송당리의 비자림로 길가에 서 있는 ‘濟州神堂之元祖 松堂本鄕堂(제주신당지원조 송당본향당)’ 표석Ⓒ정태균


이렇게 신당이 있는 오름을 특별히 ‘당오름’이라고 불렀습니다. 제2강 때 갔었던 안덕면 동광리의 당오름을 비롯해 조천읍 와산리, 한경면 고산리와 송당리의 당오름이 제주의 대표적인 신당을 가진 오름입입니다. 우리가 올랐던 동광리의 당오름은 오래 전에 당이 헐리고 이름만 남은 경우고요.

송당리의 당오름은 해발 274미터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69미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濟州神堂之元祖 松堂本鄕堂(제주신당지원조 송당본향당)’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의 신당이 오름 북서쪽 기슭에 있습니다. 삼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해 어두운 풍광을 이루는 작은 오름이어서 으스스한 기분마저 드는 송당리 당오름 주변엔 안돌·밧돌오름과 거슨새미오름, 아부오름, 높은오름, 다랑쉬, 돗오름에 둔지오름까지 내로라하는 동부의 오름들이 에워싸듯 자리합니다.

신당은 제주 무속신앙의 성소로, 송당본향당에선 해마다 음력 정월 열사흘에 당을 책임지고 있는 무당인 매인심방(당에 매여 있는 심방)에 의해 대대적인 당제가 치러집니다.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풍요를 기원하는 이 당제를 위해 타지로 이주한 이들도 돌아와 참배를 한다고 하네요.

송당본향당의 당신은 여신 ‘금백조(백주또)’인데, 금백조와 남편인 ‘소로소천국’의 자식들이 제주도 곳곳에 당신으로 좌정했다고 하며, 현재 신당의 원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당의 당굿은 1986년 제주도 무형문화재로, 본향당은 2005년에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송당리의 비자림로 길가에 서 있는 ‘濟州神堂之元祖 松堂本鄕堂(제주신당지원조 송당본향당)’ 표석Ⓒ정태균


오름학교 제6강은 2018년 9월 7(금)~8일(토)일, 1박2일로 제주도에서 열립니다. 상세한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9월 7일(금)>
08:50 제주공항 1층 3번 게이트 오른쪽(공항 내부임)에서 집합합니다, 참가자는 각자 항공편, 배편을 이용해 제주공항에 도착합니다. 정시에 출발하니 집합시각 엄수 바랍니다. 교통편 예약은 빠를수록 혜택이 많다고 하니 참고하시고, 참가신청 전에 교통편을 반드시 체크해주세요^^
-제6강 여는 모임. 참가지 확인과 인사 나누기
-버스 탑승, 높은오름으로 이동
-높은오름 도착, 탐방
-높은오름 하산 후 점심식사(학교에서 도시락 준비)
-동검은이오름 탐방
-문석이오름 탐방
-백약이오름 탐방
-백약이오름 하산, 식당으로 이동
-가시리 <나목도식당>에서 저녁식사 겸 뒤풀이 후 숙소 이동
숙소는 가시리 유채꽃프라자(다인실)

<9월 8일(토)>
07:30 아침식사(유채꽃프라자 구내식당)
-거슨새미오름으로 이동
-거슨새미오름 탐방
-안돌오름 탐방
-밧돌오름 탐방
-밧돌오름 하산, 식당으로 이동. 점심식사
-송당본향당 탐방
-제주공항으로 이동. 제6강 마무리모임
15:40 공항에서 해산(예정)
※위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코스나 대상지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오름학교 제6강 <초가을의 초지능선오름> 특집 답사 지도Ⓒ오름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등산복·등산화·배낭(제주의 특별한 바람에 대비해주세요^^), 스틱(건강을 위해 쌍으로 준비), 무릎보호대, 방수방풍의, 모자, 선글라스, 장갑, 수통, 우의(+접이식 우산), 따뜻한 여벌옷(여벌양말),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필기도구, 신분증(항공탑승용. 반드시 지참하세요!)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참가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꼭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참가비,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오름학교 9월'를 찾으시면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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