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다음 차로 정했다만 지금은 안 되겠다

이창희 2018. 6. 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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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비틀기] 험난한 전기차 사용기, 집에 갈 수는 있을까?

[오마이뉴스 글:이창희, 편집:김시연]

오랜만에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 머물게 된 3박 4일을 기회 삼아 전기차를 한 번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소형 전기차를 렌트하고, 휴대폰에는 충전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을 설치했다. 아직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배터리'로만 가는 '완전 전기차'이기 때문에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주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도전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래도, 불안하다. 운전 경력이 20년을 넘었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전기차가 멈추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운전을 하다가 연료가 떨어져서 고속도로에서 멈춘 적은 있지만, 보험회사에서 채워준 10리터의 연료는 금세 차를 살려냈다. 그런데, 전기차는 어떻게 살려낼 수 있지? 걱정이 많다.

우선 전기차가 불안한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이런 걱정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이번에 도전한 '완전 전기차'는 배터리로만 구동이 되며 가솔린이나 경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전화기 배터리가 떨어지면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이 자동차도 배터리가 소진되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보험회사에서 보조 배터리를 들고 와서 채워준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충전소까지 가야 하고, 급속충전이라 하더라도 30분 이상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어야만 차는 다시 움직이겠다 결심한다.

'꽃향기를 맡으면, 붕붕. 그러는 거 아냐?'

친구는 재밌다는 듯 농담을 던졌지만 쉽게 웃을 수 없다. 그나마 제주도는 신재생에너지나 자연친화적인 연료에 대한 다양한 시범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전기차를 크게 불편함이 없이 운행할 수 있다. 일단, 전기차 충전소는 제주도 전체에 고루 설치되어 있으니, 혹시라도 배터리가 부족한 상황이 오더라도 차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저런 걱정은 많았지만 사흘 동안의 전기차 도전기를 소개한다. 결론은? 힘들었다. 지금 몰고 있는 차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서 다음 차를 전기차로 바꿔보려고 했으나, 지금은 무리다.

다음 지도에서 검색하니 내가 살고 있는 포항-경주 지역에는 모두 15개의 충전소가 표시된다. 이를 제주도랑 비교하니 숫자로는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다. 기사를 검색하니 제주에는 총 595개의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다음지도
렌터카 회사에서 전기차를 받았다. 시동이 걸린 줄도 모를 만큼 조용한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운전석에서 보이는 화면에는 배터리 충전율과 앞으로 운행 가능한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충전율은 75퍼센트였고 앞으로 100킬로미터를 운행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근데 웬걸?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속도를 낼라치면 운행 가능 거리가 계속 줄어든다. 심장이 쫄깃하다. 정속 주행을 할 수밖에 없다. 원래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방법이 없다. 엔진이 없는 자동차라서 가뜩이나 조용한데, 감속도 가속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충전소에 다른 차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아직 40킬로 정도는 더 갈 수 있다는데, 그냥 버텨볼까?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다.)

에피소드 #1 : 충전이 되질 않아요!

저녁을 먹고 이젠 숙소로 가야 할 시간이다. 배터리 충전율이 20퍼센트라서 부랴부랴 가까운 충전소를 찾는다. 핸드폰에 설치된 충전소 앱이 가까운 편의점을 알려준다. 다행이다, 생각하고는 부랴부랴 내비게이션을 맞춘다. 다행스럽게도 충전기가 비어있다. 렌터카 회사에서 알려준 대로, 충전을 시도한다. 생애 첫 전기차 충전이다. 셀프 주유소를 처음 이용했던 때만큼이나 떨린다.

차량 충전기에는 차량별 충전 방식의 차이에 따라 세 개의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었다. 렌트한 차량에 적합한 케이블을 끼우고, 충전을 시작했다. 충전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충전이 시작된다. 이제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면서 기다려야겠다, 생각하고 몸을 돌려세운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충전기에 충전이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있다. 아직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해본 충전이니 일단 차에 시동을 걸어본다. 어라, 아직 배터리가 그대로 20퍼센트에 멈춰있다. 이대로는 집에 갈 수가 없다. 다시 충전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같다.

"혹시, 충전기에 문제가 있나요?"
"글쎄요. 저희는 그냥 공간만 빌려주고, 충전기 관리는 하지 않아서요. 아까는 누군가 충전을 하고 가셨는데요?"

편의점에 들어가서 문의를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내가 뭔가를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던 차에, 충전기에 붙어있는 안내 전화번호를 발견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충전소가 어디라고요? 아, 거기 충전기가 고장이 나서, 지금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어차피 충전기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으니, 고장이 났다면 '사용 불가'라는 안내라도 띄워줬어야 하지 않은가? 충전기 운영 시스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트워크 연결은 그저 충전기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한 사용자 인식에만 사용하고 있는 건가?

그나저나, 큰일이다.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는데, 또 다른 충전소를 찾아야 한다. 다시 앱을 띄웠더니 다행스럽게도 근처의 호텔에 충전기가 있다고 알려준다. 간신히 충전소를 찾아가는데 배터리가 '잔량 부족'이라는 경고를 띄운다. 늦봄의 제주라고는 해도, 한밤의 날씨는 너무 차가웠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결국, 간신히 충전기를 찾아서 충전을 시작하고는, 호텔 로비에서 잠시 노숙을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차량 충전기가 있는 곳이 근사한 호텔이었다. 내 숙소는 여기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었기에, 12시를 넘어간 새벽에 호텔 로비에서 잠깐 노숙을 시작했다. 30분이 3시간만큼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창희
에피소드 #2 : 차가 거북이가 되었어요

근사한 호텔 로비였지만, 노숙자 신세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간신히 30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고 난 후, 충전기로 달려갔다. 이제 50퍼센트 정도 충전이 되었다고 알려준다. 이 정도면 숙소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충전을 중단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내 화면에 아까는 보지 못한 것만 같은 등이 여러 개 들어왔지만, 무시했다. 일단, 새벽이 가까워오는 제주의 한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 서둘러 숙소로 차를 몰았다.

'어, 저 등들은 다 뭐지?'
'왜 차가 가속이 안 되는 거야? 속도가 30킬로를 넘지 않는데, 이거 뭐지?'

갑자기 차가 이상 징후를 보인다. 배터리는 충분한데, 언덕을 올라가는 것도 힘겨워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30킬로미터를 넘기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운전석에서 가장 잘 보이는 화면에, 거북이가 등장했다. 차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부랴부랴 전화를 한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받기는 할까 걱정했는데, 스티커에 붙어있는 대로 24시간 운영되긴 하나보다.

"무슨 일이시죠?"
"차에 경고등이 들어와서요. 어떻게 해야 하죠?"

"무슨 경고인데요?"
"거북이가 들어왔어요."
"아, 거북이요? (…) 저희가 내일 차를 바꿔드릴게요. 일단, 숙소까지는 가실 수 있나요?"
"이대로 운전해도 괜찮은가요?"
"운전은 하셔도 되는데, 속도는 안 날 겁니다.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지만, 더 이상은 춥고 졸려서 따져 묻지도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깜깜한 한밤의 제주 도로를 달리는 차는 많지 않았고, 나는 비상등을 깜빡이며 간신히 숙소에 들어갔다. 전기차 운행 첫날이 파란만장하다. 벌써부터 너무 힘들었다.

다음날 렌터카 회사에서는 차를 새로 가져다주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어제 하루에만 같은 차량 몇 대에서 배터리 오류가 났다고 한다. 원인을 거슬러보니, 같은 충전소를 사용한 차량들인 듯했다. 다시 한 번, 차량 충전기 운영에 대한 불만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어쨌든, 배터리 오류가 발생한 차량은 운행이 불가하다는 게 이번 사건의 결론이었다. 곤란하다.

에피소드 #3 : 제가 전방 주차는 잘 못하는데요

간신히, 차를 세우고 충전을 시작합니다. 전방주차는 너무 힘들고, 케이블은 너무 짧아요. ⓒ이창희
공항 주차장에는 비교적 많은 숫자의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충전을 하려고 장소를 찾는데, 큰일이다. 충전기가 설치된 공간 옆으로는 빼곡하게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전방 주차를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가뜩이나 전방 주차를 해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은데, 후방으로 차를 세우게 되면 충전기 케이블이 짧아서 차의 충전 포트에 꽂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주차장을 돌면서 전방 주차가 가능한 충전기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충전기가 설치된 곳에 일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거나, 충전이 완료되었음에도 차를 빼지 않은 차들도 많아서 더더욱 충전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충전기를 찾아서 충전을 시작하면서, 케이블을 좀 더 길게 하거나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다시 힘들어졌다. 전기차, 역시, 괜히 빌린 걸까?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나의 전기차 첫 경험은 끝이 났다. 사흘 내내 '힘들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불안감'도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차에 익숙해지고 전기차 시스템에 익숙해지면서, 장점도 서서히 눈에 보이긴 했다. 차는 일반적인 엔진 차량에 비해서 무척이나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고, 가까운 거리를 조금씩 운행하는 것으로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관공서의 충전기가 무료로 운행되는 곳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관공서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무료인 곳도 많더라고요. 다만, 충전이 완료된 차량들이 바로바로 차를 ?주지 않아서 문제이긴 하더라고요. ⓒ이창희
하지만, 전기차가 바로 일반화되기에는 아직 무리가 많겠다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충전기 인프라가 일반화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차량 충전 방식이 표준화되는 것이나 공동 주택에서 충전용 전기 요금을 분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할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터리용 차량이 기존의 엔진 차량을 그대로 대체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뒤따르는 수많은 기능상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나긴 충전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장거리 운전을 고려할 때 충전하느라 추가로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혹시라도 차량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이다.

나의 짧은 경험담이 전기차에 대한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음번 나의 선택은 전기차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기계공학 전공자로서, 전기차의 활용 방식은 기존의 엔진 차량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배터리 기술을 아무리 발전시킨다 해도, 용량을 한없이 늘릴 수도 없을 것이며 충전 시간을 연료 주유하는 시간만큼 단축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용 방식을 고민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충전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차량별로 세 개의 서로 다른 방식의 충전 케이블을 사용한다. 아무리 급속충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전기차는 우리가 지금까지 써왔던 '차'와는 사용 방식이 달라야 할 것만 같다. ⓒ이창희
예를 들면, 전기차는 좁은 지역에서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장거리 운행이 필요한 이동에 대해서는 공공 교통수단을 강화하는 것처럼 역할을 나눠보는 것이다. 여기에 이동한 곳에서의 교통수단이 필요하다면, 일부 도시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차량 공유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계가 분명한 기술에 대해 (기존 기술과 비교하여) 완벽을 기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개발된 기술의 활용을 좀 더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아, 부질없는 상상은 그만해야겠다. 나의 첫 번째 전기차 사용기는 험난하게 끝이 났고, 전기차로 차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었다. 너무 고생스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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