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핸드백 대신 운동화로.. 명품의 얼굴이 바뀌었다

김은영 기자 2018. 5.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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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라이프가 바뀐다 ①]
핸드백에서 운동화로…길거리 패션이 이끈 패션 지각변동
캐주얼 트렌드 확산되면서 운동화 인기

못생긴 운동화 열풍을 주도한 발렌시아가 ‘트리플S’/하이스노비티

프리랜서 박모(29) 씨는 최근 110만원을 주고 산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를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145만원에 되팔았다. “한 두 번 신은 운동화도 원가보다 비싸게 팔아 차액을 남길 수 있어요. 번 돈은 다시 새로운 한정판 운동화를 사는 데 씁니다. 다양한 신제품을 직접 신어보고, 돈도 벌 수 있어 ‘일석이조’에요.” 그에게 운동화는 재테크 수단이다.

“’잇 백’이요? 이젠 ‘잇 운동화’죠.” 직장인 김모(35) 씨는 최근 구찌의 에이스 스니커즈를 장만했다. “해외 명품 쇼핑몰에서 10% 정도 저렴하게 구매했어요. 핸드백은 잘 메지 않으니 운동화를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죠. 가격도 핸드백보다 저렴하고요.”

◇ 비즈니스 캐주얼 대신 청바지, 운동화 신는다

자영업을 하는 이모(37) 씨는 운동화 수집광이다. 아디다스와 칸예웨스트가 협업한 이지부스트 시리즈, 나이키 조던 시리즈 등 한정판 운동화를 모은다. 작년 여름엔 루이비통과 슈프림이 협업한 운동화를 구하기 위해 매장 밖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누추해보이는 옷차림에도 한정판 운동화를 신으면 스타일이 살아납니다. 자신감도 생기고요. 명품 가방을 메는 여자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싶어요.”

양말처럼 신는 발렌시아가 스피드 트레이너/발렌시아가

한모(32) 씨는 2년 전 IT기업으로 이직을 하면서 운동화의 매력에 빠졌다. 이전보다 출근 복장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줄곧 남성복 매장에서 옷을 샀지만, 이젠 캐주얼 매장에서 옷을 사요. 아이돌이 입는 길거리 브랜드도 입죠. 옷차림에 맞는 신발을 찾다 보니 운동화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그는 나이키와 반스 등을 즐겨 신는다.

운동화 사랑은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박모(34) 씨는 3년 전부터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다. 한때 여성스러운 옷에 하이힐, 명품 가방을 차려입었지만, 무지외반증이 심해지면서 운동화를 신게 됐다. 다섯 켤레의 운동화를 두고 옷차림에 맞춰 신는다. “처음엔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화를 신었지만, 요즘엔 치마나 정장에도 어울리는 세련된 디자인이 많아졌어요. 특히 양말처럼 신는 삭스 스니커즈는 발목을 가늘게 잡아줘 치마나 원피스와도 잘 어울리죠.” 그는 운동화를 신으면서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고 했다. “하이힐을 신고 불편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운동화를 신은 제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고 세련돼 보여요.”

◇ 운동화 리셀 시장도 인기, 원가보다 2~30% 벌 수 있어

운동화 열풍이 거세다. 루이비통의 ‘스피디’ 백이 ‘3초 백’이라 불리며 거리를 휩쓸던 때도 옛말, 이젠 명품 가방 대신 명품 운동화를 산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09년 1조2226억 원이던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2012년 2조4490억 원으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커졌으며, 올해는 3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신발 시장에서 운동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36.2%에서 2016년 5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53%로 꾸준히 늘고 있다.

구찌 에이스 스니커즈(왼쪽)와 루이비통 아치라이트/각 브랜드

이런 세태를 반영해 핸드백으로 명성을 끌던 명품도 운동화 만들기에 한창이다. 과거 모터사이클 백으로 ‘잇 백’의 명성을 누렸던 발렌시아가는 스피드 트레이너와 트리플S를 잇달아 히트시켰다.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핸드백으로 고상함을 뽐내던 구찌도 화려한 자수가 들어간 에이스 스니커즈와 꽃무늬 슬리퍼로 젊은 브랜드로 거듭났다. ‘3초 백’으로 유명한 루이비통은 지난해 뉴욕 길거리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해 운동화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아치라이트로 못생긴 운동화 열풍에 합류했다.

운동화의 흥행은 매출과 정비례한다. 올해 1분기 구찌와 발렌시아가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37.9%, 31% 증가했다. 반면 운동화 흥행이 저조한 프라다는 실적이 하락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운동화 매출은 전년대비 10% 증가한 35억 유로(약 4조370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운동아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끄는 나이키와 오프화이트가 협업한 ‘조던 1 레트로 하이 오프화이트’/나이키

운동화 열풍이 거세지면서 운동화 리셀(Resell) 시장도 커지고 있다. 인기가 높은 한정판 운동화의 경우 중고시장에서 정가보다 30% 이상 비싼 값에 거래된다. 해외에는 주식시장처럼 운동화를 경매하는 웹사이트도 성행한다. 운동화 경매 사이트 ‘스톡X(StockX)’에서 올해 1분기 가장 가치가 높았던 운동화는 나이키와 오프화이트가 협업한 ‘조던 1 레트로 하이 오프화이트’로, 정상가 190달러(국내가 22만9000원)짜리 운동화가 평균 1천771달러(약 191만원)에 재판매됐다. 이쯤 되면 핸드백에서 운동화로 소비 중심이 이동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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