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의 권정생, 동화 아닌 동화 같은 삶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자"
평생 병마와 싸우며 100여 편 발표
전기작가 이충렬씨 2년 여 작업
데뷔작, 첫사랑 등 새롭게 찾아내
전기(傳記)작가 이충렬(64)씨는 오래전부터 권정생의 삶을 가슴에 품었다. 번역동화나 기존 창작동화와는 결 다른 한국 동화를 창작한 그의 속내가 궁금했다. 이씨가 보기에 권정생은 “가난과 불행의 원인이 부모가 아닌 일제강점과 분단, 전쟁이라는 민족사에 있음을 알게 한” 유일한 동화작가였다. 당시 동화에서는 다루지 않던 현실 소재와 주제를 놓고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를 썼기에 ‘숨은 인간국보’급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수화 김환기 등 미술계 선구자와 김수환 추기경, 백충현 국제법학자 등 우리 사회 선각자의 일생을 복원한 책으로 전기문학(傳記文學)의 새 길을 냈던 이씨는 ‘100여 편 동화를 남기고 간 가난한 종지기’ 쯤으로 평가되는 고인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이가 권정생을 이야기할 때 가난과 병고 속 교회 종지기로서 삶, 아동문학가 이오덕과의 오랜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탄생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랜 습작 과정과 문학적 좌절을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진정한 작가가 된다. (…) 지금까지 권정생에 대한 글이나 책에서는 이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첫째는 그가 열여덟 살 때 쓴 첫 소설 ‘여선생’의 발굴이다. 권정생은 1969년 서른두 살 때 동화 ‘강아지똥’이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것으로 돼 있다. 73년 ‘무명저고리와 엄마’의 신춘문예 당선에 이어 장편소년소설 『몽실 언니』 출간, 수기와 편지 모음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간행 이후로 그의 문학세계가 한정된다. 이충렬씨는 편지와 회고 글에 언급된 ‘학원’ 잡지를 뒤져 부산에서 재봉기 배달 일을 하며 문학청년의 꿈을 키우던 1955년 작 ‘여선생’을 발견했다.
이충렬씨는 “동화 한 편을 쓸 때마다 온몸을 던졌던” 고인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원고를 썼다고 했다. 전기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고, 재인용돼도 문제가 없을 만큼 사실성에 치중했기에 “전기문학의 전범이라는 얘길 듣고 싶다”고 밝혔다. 이 책이 앞으로 권정생 연구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본(定本)이 되기를 그는 기대했다. 1976년 대학 국문학과 3학년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 애리조나 주에 정착한 뒤 피닉스에서 잡화점을 하며 글을 써온 그는 최근 42년 만에 완전 귀국해 전업 전기 작가로 나섰다. 권정생에 이어 그가 탐사할 작가는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다.
이씨는 이 전기를 권정생 선생 기일인 오는 17일에 맞춰 냈다. 재단법인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사장 박연철)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안동시 일직면 성남길 119번지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권정생 선생 귀천 11주기 추모의 정’ 행사를 연다. 박 이사장은 “인간의 삶과 업적에 특별한 안목을 지닌 이충렬 선생이 권정생 님의 삶을 그린 저서를 간행했다는 데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 ◆권정생
「 한국 문단이 손꼽는 창작동화가. 죽음과 삶의 문제를 이야기한 ‘강아지똥’, 분단 현실을 다룬 ‘아기양의 그림자 딸랑이’,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분단 및 베트남 전쟁의 민족사를 소재 삼은 ‘무명저고리와 엄마’ 등 기존 동화가 외면하던 주제를 파고 들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46년 귀국, 궁핍한 생활에서 얻은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평생 병마와 싸우다 2007년 절약해 모은 인세 10억 원을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라고 유언한 뒤 별세했다.
」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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