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출렁출렁 초록빛 물결, 파도가 아닌가!..청보리 익어가는 가파도

입력 2018. 4. 26. 09:59 수정 2018. 5.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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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77명의 작은 섬
최근 섬 복원 프로젝트 가동
푸른 청보리밭 탄성 자아내
주민들도 부흥 기대 중

[한겨레]

지난 12일 한 관광객이 가파도 보리밭에서 본섬(제주도)의 산방산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도는 8개의 유인섬과 71개의 무인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으로 만든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의 섬은 ‘본섬’이라 불리는 제주도와는 또 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와 소머리 오름으로 유명한 우도,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는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마라도로 가는 뱃길에서 보였던 유난히 납작해 보이는 섬인 ‘가파도’를 가본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파도는 한국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최고 해발 고도가 20m에 불과하다. 섬 어디에서나 수평선이 땅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현재 가파도는 온통 푸른빛이다. 바다의 빛깔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청보리 때문이다. 가파도는 청보리밭 섬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섬 전체 면적이 0.874㎢(26만4000여평)인데, 청보리밭 면적이 0.6㎢(18만여평)에 달한다. 섬의 대부분이 청보리밭인 셈이다. 5월까지는 청보리가 절정이다. 이때에 맞춰 청보리축제도 열린다. 푸른 청보리의 섬, 가파도를 지난 12일 다녀왔다.

■파도에 파도가 더해져

가파도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깝다. 우선 육지에서 제주도는 멀다. 거기서 남쪽인 서귀포는 더 멀다. 그래서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가파도는 서귀포시 모슬포 남항인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한다. 생각보다 가까운 섬이다. 원래는 모슬포 북항인 하모항에서 배가 출발했으나 지난해부터 남항인 운진항으로 출발지가 통합됐다. 한동안 활용도가 낮다고 지역 언론의 비판을 받았던 운진항은 최근 마라도로 가는 관광객과 가파도로 가는 관광객이 섞여 활기를 되찾았다.

가파도라는 이름엔 여러 유래가 있다. 가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물결이 더해진다고 해서, 파도가 덮친 적이 있다고 해서, 가파도라 불렀다고 한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한자로 더할 ‘가’(加) 물결 ‘파’(波)를 쓰는 걸로 보아 파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섬의 이름처럼 파도는 거셌다. 배가 높은 파도의 아래위로 슬렁슬렁 움직이는데, 마치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봄여름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데, 겨울에는 1주일에 2~3번은 배가 못 뜬다고 한다. 높은 파도 때문이다. 유독 가파도 인근의 물결이 거세고 암초가 많다.

■사람이 그립던 섬은 변신 중

배가 도착하면 가파도가 가장 먼저 선사하는 것은 본섬의 산방산과 한라산의 풍경이다. 제주도에서 유명한 관광지라 신기할 것도 없지만, 바다 건너 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을 준다. 선착장 한쪽엔 새로 생긴 터미널이 보인다. 낮은 섬 가파도를 닮아 납작하게, 하지만 단순미가 돋보이는 터미널이다. 평평하고 소박한 건축이다.

새로 지은 가파도 여객 터미널

이 터미널은 2013년부터 시작된 제주도와 현대카드의 ‘가파도 섬 살리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신축한 건물이다. 왼쪽 맞은편에는 기존에 쓰던 터미널이 보인다. 오랜 세월 섬과 함께한 터미널이지만 디자인으로만 따지면 놀이공원에서나 봄직한 생뚱맞은 모양새라 섬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건물 하나로 섬의 첫인상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었다.

이 터미널 외에, 예술가들의 거주와 작업실을 지원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iR), 스낵바, 가파도하우스(펜션형 숙소)와 레스토랑 등이 새로 들어섰다. 부지는 지자체가 샀고, 프로젝트 진행은 현대카드가 맡는 방식이다. 실질적인 프로젝트 수행은 원오원 건축사무소의 최욱 소장이 지휘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현재 영국, 핀란드, 한국에서 선발한 7명의 예술가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에겐 최대 6개월까지 거주와 작업실이 무상으로 지원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도를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파도는 청보리축제 기간에만 잠깐 사람이 몰리고, 거의 비어 있는 섬이다. 현재 등록 인구는 227명에 불과하다. 한때 주민 인구가 1000명이 넘었을 때가 있었다고 하니, 점점 무인도가 돼가는 섬인 셈이다. 가파도 프로젝트는 이런 상태의 섬을 되살리자는 취지다. 보리밭밖에 없는 가파도의 관광 자원을 늘리는 의미도 있다.

마침 이날은 섬 살리기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날이었다. 김동호 가파도 이장은 “가파도는 사람이 그리운 섬이었다. 마라도 가는 배만 쳐다봤었다. 섬 살리기 프로젝트가 다시 사람을 불러 모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도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은 주민 여러분”이라고 덧붙였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의 전망대

■끝없는 보리 파도

새롭게 바뀌는 섬에 기대감을 품은 탓인지, 이날 보리밭은 유난히 푸르게 보였다. 특히 섬 중앙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일품이다.(전망대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 마치 섬 안에서 파도가 출렁이듯,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휘어 파도를 만들어내는 보리밭은 저절로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섬 둘레가 4.5㎞ 정도라서 천천히 걷고 둘러봐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대부분 관광객이 2시간 뒤 떠나는 배의 왕복표를 구매한다. 자전거도 대여하는데 2시간에 1만원(2인용 기준)이다. 길도 잘 닦여 있어 자전거를 타고 돌아도 좋다.

특히 2010년에 열린 ‘올레길 10-1 코스’는 바다를 끼고 돌게 돼 있어, 한눈에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섬 중간의 풍력 발전기도 눈을 즐겁게 한다. 조용한 보리밭 가운데 우뚝 선 채로 휭휭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의 소리가 바닷바람과 부딪혀 절묘한 공명음을 낸다. 군데군데 피어난 유채꽃 등 봄꽃은 물감을 찍어놓은 것 같다.

섬 남쪽인 하동항으로 가면 바로 눈앞에 마라도가 보인다. 왜 마을 이장이 마라도 가는 배만 쳐다봤다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현재 일부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를 자연에 가까운 흙길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섬 살리기 프로젝트의 목표 하나가 생태계 복원이다. 이와 함께 자생식물 등의 복원도 추진 중이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생긴 탓에 일본의 나오시마 같은 예술섬이 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가파도는 예술섬과는 콘셉트가 다른 곳이다. 최욱 소장은 “가파도 프로젝트의 목표는 재생에 있다. 나간 사람이 돌아오는 살고 싶은 섬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 5명에 불과했던 가파초등학교의 학생이 최근 1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다시 배가 들어온 상동항으로 향했다. 보리밭 중간중간 커다란 돌이 보였다. 그냥 돌이 아니다. 무덤이다. 가파도는 고인돌로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총 135개가 있다고 한다. 유구한 세월 동안 돌 밑에서 잠들어 있던 가파도의 조상들은, 지금의 변화를 어떻게 볼지 문득 궁금해졌다.

해물짬뽕은 시원, 뿔소라는 쫄깃

먹을 곳

작은 섬이다 보니, 식당이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파도는 ‘마라도 짜장면’ 못지않은 해물짬뽕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특산물인 뿔소라와 돌미역이 들어간 짬뽕은 흔히 먹었던 중국집 짬뽕 맛이 아닌 가볍고 개운한 맛이다. 짬뽕집이 두세 곳 있지만, 유난히 줄이 긴 가파도 해물짜장짬뽕 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점심시간에는 30분 이상 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해물짬뽕 1만2000원, 해물짜장면 7000원. (064)794-6463.

특산물인 뿔소라구이도 유명하다. 특히 가파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긴 가파도 어업센터 레스토랑에서 파는 뿔소라와 전복구이(9000원)는 숯 위에 대파를 올린 뒤 그 향을 입혀 굽는다. 대파 향이 솔솔 나는 것이 매력이다. 주민들이 세운 조합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편하게 이용하길 바란다. 5월 중순부터 정식 개장한다.

해산물이 가득한 한정식도 맛깔나다. 관광객들 사이에선 용궁정식이 유명하다. 단체는 예약을 해야한다. 1인당 1만2000원. (064)794-7083.

교통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운진항에서 아침 9시부터 40분 간격으로 배가 운행한다. 요금은 왕복 1만2100원(성인·청소년 동일)이다. 오후 2시20분까지 배를 타야 섬을 둘러보고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가파도행 배가 출발하는 서귀포시 운진항에 가려면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운진항’을 검색하면 되고, 버스를 탈 경우 제주공항에서 151번 버스(요금 3000원)를 타면 1시간17분 정도 걸린다.

문의 및 참조 제주관광공사 (064)740-6001, 가파도 누리집(바로가기)

가파도/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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