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화한 괴담 극대화된 공포

2018. 4. 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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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극장형 호러 체험’이라 불리며 한국 공포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된 <곤지암>
현대사 중요 사건과 박정희·박근혜 정부를 ‘이스터에그’ 삼아 만든 점 이채

영화사 하늘 제공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혼자서 본 공포영화 <곤지암> 이야기다.

벚꽃이 흩날리는 4월10일 오후, 서울의 한 극장에 갔다. “(영화 <곤지암> 보고 오줌) 지리는 거 아냐.” 20대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말을 건네며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앞에 선 그의 말에 오싹함이 전해져왔다. 더욱이 극장은 평일 낮시간대라 한산했다. 상영관 좌석 90%가 비었다. 50대 중년 커플 두 쌍, 20대 커플 한 쌍, 20대 여자 두 명, 20대 남자 두 명이 전부였다. 기자를 제외하고 모두 혼자가 아니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콘셉트 인기

곤지암 정신병원의 목욕실에 들어가 유튜브 방송을 하는 공포체험단의 모습(왼쪽)과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영화<곤지암> 포스터. 영화사 하늘 제공/ 영화사 하늘 제공

영화 <곤지암>은 미국 방송사 《CNN》에서 선정한 공포 체험의 성지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공포체험단 7명이 겪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을 그린 공포물이다. 3월28일 개봉 이후 ‘체험 공포’라는 새로운 콘셉트와 입소문의 힘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개봉 17일째인 4월13일 현재, 관객 24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공포영화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기존 2위는 2002년 개봉작 <폰>(관객 220만 명)이었다. <곤지암>이 16년 만에 이 수치를 넘어선 것이다. 이 부문 역대 1위는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다. 2003년 누적 관객수 314만 명으로 최고 성적을 거뒀다.

<곤지암>은 한국 공포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한국 공포영화는 1990년대 후반 학교를 배경으로 여고생들의 입시 스트레스와 교사와 제자 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여고괴담> 시리즈로 붐을 일으킨 뒤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졌다. 2000년대 초·중반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2004), 김용균 감독의 <분홍신>(2005), 정식·정범식 감독의 <기담>(2007),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2009) 등 수작이 나오긴 했지만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휘청였다. 소녀 귀신 이야기 등 비슷한 기획물만 넘쳐나고 작품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이어지면서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기간 일본과 할리우드 등 외국산 공포물이 호러 시장을 접수했다.

봄 극장가를 접수한 <곤지암>이 선사하는 특별한 공포는 무엇일까.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쓴 책 <혼자서 본 영화>에서 말했듯, “영화와 나만의 대면”이 시작돼 “나의 세계에 영화가 들어왔다.”

<곤지암>은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연출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콘셉트를 채택해 관객이 네티즌 관점에서 실시간으로 공포체험 방송을 보는 듯한 효과가 있다. 배우들이 VR(가상현실)카메라, 고프로(미니 캠코더) 등을 들고 영화의 90% 이상을 직접 촬영해 생생한 현장감을 담아냈다. 이런 점이 10~20대 유튜브 세대에게 인기를 끈 점으로 꼽힌다.

영화는 페이스캠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클로즈업된 배우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공포를 마주하는 등장인물의 눈빛, 거친 숨소리 등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귀신이 나타나지 않아도 공포에 질린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공포스럽다. ‘영화 내내 배우들 콧구멍만 보고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냥 ‘닥치고, 공포 체험!’

가장 압권은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빙의 귀신’이다. 극중 공포체험단의 행동파 멤버 지현(박지현)이 귀신에 씌어 눈동자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하며 “샤바샤바샤바”라고 괴상한 말을 한다. 그 끔찍한 모습을 클로즈업 샷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 불 꺼진 객석에서 “아아악!” 비명이 튀어나왔다. 계속 머릿속에 동동 떠다닐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홀로 극장을 찾은 내게 공포는 혼자 감당할 몫이었다. 이 귀신을 시작으로 배가 갈라진 귀신, 물건을 던지는 귀신,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귀신 등이 계속 등장한다.

<곤지암>에는 한국형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소재인 원한, 복수, 권선징악이 없다. 등장인물과 귀신 사이에 특별히 원한을 살 만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귀신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공포체험단 청년들이 왜 귀신에게 그렇게 당해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영화는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냥 ‘닥치고, 공포 체험!’이다.

귀신이 나오지 않더라도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공포다. 공간 역시 하나의 캐릭터처럼 연기하는 듯하다. ‘여기 귀신 살고 있다’라는 복도 벽의 낙서, 문이 열리지 않는 의문의 402호실, 목욕실에 있는 사람 모양의 그을림 등 을씨년스럽고 괴기스러운 병원 내부 모습을 실감나게 구현했다. 곤지암 정신병원을 둘러싼 괴담으로 키워온 상상의 공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가지 말라는 곳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영화에 공포만 있는 건 아니다. 정범식 감독은 영화 곳곳에 현대사의 중요 사건과 박정희·박근혜 정부를 ‘이스터에그’(숨은 메시지)로 숨겨넣었다. 곤지암 정신병원의 개업일은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5월16일이고, 폐관일은 그가 궁정동에서 총소리와 함께 사라진 10월26일이다. 올림머리를 하고 탁구를 즐기는 정신병원장의 모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의문의 방으로 나오는 402호실은 원래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날을 뜻하는 416호이었단다.

<곤지암>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감정이입을 잘하는 사람에겐 굉장히 무서운 영화다. 러닝타임 94분 동안 영화는 1인칭 시점으로 폭주하기 때문이다. 한동원 영화평론가도 영화에 대해 “영화 앞부분에서 떠도는 괴담을 들려주며 공포를 극대화한다. 그런 다음 놀이공원 귀신의 집처럼 극장형 공포 체험을 하게 하는 영화”라고 평했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 공포영화 관람 준칙이라 할까. 가지 말라는 곳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혼자 영화를 보지 말라는 것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영화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 인터뷰

영화 속 이스터에그 찾았나요?

한겨레 자료

정범식(48) 감독은 한국 공포영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독특한 미장센과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 데뷔작 <기담>(2007)으로 주목받은 뒤 옴니버스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탈출> 등을 연출하며 자신만의 호러 장르를 개척해왔다. 그리고 올봄 신작 <곤지암>의 흥행으로 대중적 인기까지 손에 넣었다. 4월11일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영화 <폰>을 제치고 한국 공포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개봉 전에 이 영화는 묻히거나 잘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중간한 성적을 내진 않을 것 같았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다양한 관람 후기 글이 올라오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오늘 <곤지암> 보고 왔는데 심장을 지하암반수로 샤워한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그걸 보고 바로 캡처했다. (웃음)

촬영한 곳은 어디인가?

실제 촬영지는 부산 영도에 있는 폐교 해사고등학교이다. 전국에 있는 여러 폐가 가운데 찾은 곳인데,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난 곳이라는 걸 영화 촬영 후반부에 알았다. 그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섬뜩했다.

유튜버들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체험형 공포’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선보였다.

배우들이 연기하며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하는 방식과 유튜브 콘텐츠를 활용했다. 아들이 대학생인데 날마다 유튜브로 ‘먹방’ 콘텐츠를 본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요즘 10대, 20대에게 유튜브 영상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착안해 <곤지암>을 만들었다.

박정희의 5ㆍ16 군사쿠데타 등 현대사를 영화 속 설정으로 넣은 이유는?

난 1970년대생이다.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사건 사고를 봤다. 그 시대를 함께 지나오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시대상이 공포의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병원 벽에 있는 ‘세월호 리본’이나 ‘304 angels’(세월호 참사 사망자 수) 등 영화에 감춰둔 ‘이스터에그’(숨은 메시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기담>에는 개봉 10년이 지나 발견된 이스터에그가 있다. 그런데 <곤지암>의 이스터에그는 벌써 80% 정도 밝혀졌다. 관객이 너무 잘 찾는다. 그래도 아직 남은 게 있다.

남은 이스터에그를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준다면.

영화 포스터에 나온 <곤지암> 글자 중 ‘ㅈ’을 잘 보시기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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