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이 떠났는데.. 이상하다, 왜 웃음이 나지

이정우 입력 2018. 4. 15. 11: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녀여행으로 혼자 남게 된 중년 남자의 '나혼자 일주일 살기'

[오마이뉴스 글:이정우, 편집:이주영]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목요일 오전 4시. 알람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4살 된 딸아이의 목마름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볍게 목을 축인 후 가래떡과 사과 몇 조각만 입에 넣고 곧바로 씻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후 며칠 동안 아내가 정리한 여행 가방을 들고 오전 5시에 집을 나섰다.

오전 6시. 아내 친구들과 아이들을 만난 곳은 인천공항 출국장. 출국 전 가볍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내와 딸, 그리고 친구들은 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들만 빼고 말이다.

평소 나를 위한 시간에 목말랐던 내게 이번 여행은 하늘이 주신 황금연휴나 다름없었다. ⓒMBC [무한도전] 갈무리
아내는 올해 초 친구들과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괌 여행을 계획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속 보이는 말 같지만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나를 위한 시간에 목말랐던 내게 이번 여행은 하늘이 주신 황금연휴나 다름없었다. 나를 위한, 오직 나를 위해 시작된 일주일, 혼자 여행이라도 떠날 듯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계획이라도 짜야 할 것만 같았다. 

그들을 보내고 돌아온 집은 아침부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냉기가 완연했다(이날은 회사 창립기념일이었다). 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난감과 인형들. 아내가 서 있는 듯 방 안에 걸려 있는 옷가지들... 호랑이 없는 골이지만 아직은 토끼가 왕노릇할 분위기까진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장모님께서 사위 굶을까 봐 챙겨주신 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TV 켜기. 백만 년 만에 처음 본 듯한 아침 프로그램부터 제목만 들어봤을 뿐 한 번도 보지 못한 철 지난 드라마까지. 아이 키우며 포기해야 했던 아침 방송에서 한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리모컨으로 채널돌리기를 하던 중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만났다. 내 상황과 비슷한 프로그램인 것 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찾아간 곳은 커피전문점.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하는데, 일명 '소확행' 즉 작지만 즐거움을 주는 유일한 나의 취미이다. 여기저기 좀이 쑤셔 일어나라는 몸의 신호가 오기 전까지 집에 일찍 들어갈 이유도, 아내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는 이 시간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였다.

혼자 있는 집으로 돌아와 팬티 바람으로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며 다이어트로 금기해야 할 빵과 라면을 마구 흡입했다. 결혼 후 사라진 줄 알았던 나의 본성이 어디선가 되살아난 기분이랄까? 이런 게 자유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동안 스스로에게 채운 마음의 족쇄를 조금 풀어준 셈이었다. 다시 TV를 켜고 저녁 뉴스까지 보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간 이 기분. 허무했다.

퇴근 후엔 그저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거나 혼자 있는 게 나에겐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MBC [무한도전] 갈무리
금요일. 아내의 숨소리도 아이의 뒤척임도 들리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 긴 밤 지새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잤다. 이불을 걷어붙이고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움직이는 제품처럼 씻고 먹은 후 바로 문을 나섰다. 이때 무언가 두고 온 듯 허전함에 순간 멈칫. 출근 전 매번 딸아이 볼에 해주었던 뽀뽀가 생각났지만 일단 한쪽에 남겨뒀다가 만나면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해주리라 다짐했다.

시간은 흘러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일주일의 하이라이트, 불타는 주말의 서막인 금요일 밤이었다. 보통 오늘 같은 날이면 친구들 만나 밤늦게까지 '올나이트' 하며 단란하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난 소문난 집돌이다. 아이가 생긴 후 더 심해진 것도 있지만 태생이 그러했다. 아무런 거부감도 아쉬움도 없다. 퇴근 후엔 그저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거나 혼자 있는 게 나에겐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치킨, 어디까지 먹어봤니?'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는 치킨을 주문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여유, 그 목넘김에 이번 한 주의 고단함도 함께 쓸려 들어갔다. 아내와 마시는 그 기분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융숭한 대접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조조영화, 산책... 얼마만의 주말인가

드디어 시작된 나의 황금 주말. 마치 오늘만 살 것처럼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꼭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단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손길 가는 대로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작은 배려임을 이제는 안다.

일요일. 조조로 예약한 영화를 보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싱글 때부터 익숙한 나 홀로 영화보기는 이제 더 이상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요즘엔 내 나이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들도 혼자 와서 관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커피 한 잔 들고 거리로 나섰다. 딱히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집으로 갈까 하다 버스 안에서 본 홍대 거리가 생각났다. 마침 가본 지도 오래되고 한 정거장 되는 거리라 걸어가 보기로 했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펴 봄이 왔음을 알렸건만 오늘은 봄을 시기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거리엔 지난겨울의 흔적과 새로운 봄을 알리는 기운들이 한데 어우러져 두 계절이 공존하는 듯했다. 그래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의 걸음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또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재촉해야만 했다면, 지금 나의 걸음은 내 안에서 스스로 우러난 발걸음이었다.

그래서 그랬나? 가볍게 흥이 나기 시작하면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즐비한 간판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곳으로 온 관광객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20여 분에 걸려 도착한 홍대 거리는 낯선 건물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인파 속을 헤치고 골목을 누비며 옛 추억 속으로 잠시 돌아가 보았다. 누구누구와 소개팅했던 곳 그리고 친목 모임이 있었던 곳까지.

무심하게 흘려보낸 세월 속에서 어느새 나는 이방인이 되었고 보물찾기하듯 추억 속의 나를 찾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이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버리겠지만 오늘처럼 다시 돌아와 아직 찾지 못한 추억을 곱씹으며 나를 기억할 순간도 언젠가 다시 찾아 올 것이다.

물론 이 행복감도 오래지 않아 무던해지고 지루한 삶이 될 테지만, 그때마다 혼자 보냈던 나의 일주일을 떠올리며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MBC [무한도전] 갈무리
수요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싱글로 보낼 마지막 날이 된 것이다. 퇴근 후 공항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지난 나의 일주일을 되감아 보았다. 특별히 재미있거나 의미 있게 보낸 건 없다. 단지 아이들 돌보면서 미뤘거나 마음껏 하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해보는 것, 그뿐이었다.

첫날의 기분처럼 마냥 즐거울 거란 나의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희석되어 갔다. 평소 너무 가까이 있어 내 안에서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가족의 크기. 알게 모르게 가족은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론 그 크기만큼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일주일만 부탁한다는 심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제 조금 후면 만날 아내와 딸아이의 입을 통해 괌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탕 웃고 즐거워할 일을 생각하니 새로운 행복감이 밀려올 것만 같았다. 물론 이 행복감도 오래지 않아 무던해지고 지루한 삶이 될 테지만, 그때마다 혼자 보냈던 나의 일주일을 떠올리며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