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이 떠났는데.. 이상하다, 왜 웃음이 나지
[오마이뉴스 글:이정우, 편집: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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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전 4시. 알람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4살 된 딸아이의 목마름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볍게 목을 축인 후 가래떡과 사과 몇 조각만 입에 넣고 곧바로 씻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후 며칠 동안 아내가 정리한 여행 가방을 들고 오전 5시에 집을 나섰다.
오전 6시. 아내 친구들과 아이들을 만난 곳은 인천공항 출국장. 출국 전 가볍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내와 딸, 그리고 친구들은 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들만 빼고 말이다.
그들을 보내고 돌아온 집은 아침부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냉기가 완연했다(이날은 회사 창립기념일이었다). 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난감과 인형들. 아내가 서 있는 듯 방 안에 걸려 있는 옷가지들... 호랑이 없는 골이지만 아직은 토끼가 왕노릇할 분위기까진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장모님께서 사위 굶을까 봐 챙겨주신 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TV 켜기. 백만 년 만에 처음 본 듯한 아침 프로그램부터 제목만 들어봤을 뿐 한 번도 보지 못한 철 지난 드라마까지. 아이 키우며 포기해야 했던 아침 방송에서 한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리모컨으로 채널돌리기를 하던 중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만났다. 내 상황과 비슷한 프로그램인 것 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찾아간 곳은 커피전문점.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하는데, 일명 '소확행' 즉 작지만 즐거움을 주는 유일한 나의 취미이다. 여기저기 좀이 쑤셔 일어나라는 몸의 신호가 오기 전까지 집에 일찍 들어갈 이유도, 아내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는 이 시간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였다.
혼자 있는 집으로 돌아와 팬티 바람으로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며 다이어트로 금기해야 할 빵과 라면을 마구 흡입했다. 결혼 후 사라진 줄 알았던 나의 본성이 어디선가 되살아난 기분이랄까? 이런 게 자유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동안 스스로에게 채운 마음의 족쇄를 조금 풀어준 셈이었다. 다시 TV를 켜고 저녁 뉴스까지 보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간 이 기분. 허무했다.
시간은 흘러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일주일의 하이라이트, 불타는 주말의 서막인 금요일 밤이었다. 보통 오늘 같은 날이면 친구들 만나 밤늦게까지 '올나이트' 하며 단란하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난 소문난 집돌이다. 아이가 생긴 후 더 심해진 것도 있지만 태생이 그러했다. 아무런 거부감도 아쉬움도 없다. 퇴근 후엔 그저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거나 혼자 있는 게 나에겐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치킨, 어디까지 먹어봤니?'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는 치킨을 주문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여유, 그 목넘김에 이번 한 주의 고단함도 함께 쓸려 들어갔다. 아내와 마시는 그 기분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융숭한 대접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조조영화, 산책... 얼마만의 주말인가
드디어 시작된 나의 황금 주말. 마치 오늘만 살 것처럼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꼭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단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손길 가는 대로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작은 배려임을 이제는 안다.
일요일. 조조로 예약한 영화를 보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싱글 때부터 익숙한 나 홀로 영화보기는 이제 더 이상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요즘엔 내 나이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들도 혼자 와서 관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커피 한 잔 들고 거리로 나섰다. 딱히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집으로 갈까 하다 버스 안에서 본 홍대 거리가 생각났다. 마침 가본 지도 오래되고 한 정거장 되는 거리라 걸어가 보기로 했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펴 봄이 왔음을 알렸건만 오늘은 봄을 시기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거리엔 지난겨울의 흔적과 새로운 봄을 알리는 기운들이 한데 어우러져 두 계절이 공존하는 듯했다. 그래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의 걸음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또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재촉해야만 했다면, 지금 나의 걸음은 내 안에서 스스로 우러난 발걸음이었다.
그래서 그랬나? 가볍게 흥이 나기 시작하면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즐비한 간판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곳으로 온 관광객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20여 분에 걸려 도착한 홍대 거리는 낯선 건물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인파 속을 헤치고 골목을 누비며 옛 추억 속으로 잠시 돌아가 보았다. 누구누구와 소개팅했던 곳 그리고 친목 모임이 있었던 곳까지.
무심하게 흘려보낸 세월 속에서 어느새 나는 이방인이 되었고 보물찾기하듯 추억 속의 나를 찾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이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버리겠지만 오늘처럼 다시 돌아와 아직 찾지 못한 추억을 곱씹으며 나를 기억할 순간도 언젠가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첫날의 기분처럼 마냥 즐거울 거란 나의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희석되어 갔다. 평소 너무 가까이 있어 내 안에서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가족의 크기. 알게 모르게 가족은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론 그 크기만큼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일주일만 부탁한다는 심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제 조금 후면 만날 아내와 딸아이의 입을 통해 괌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탕 웃고 즐거워할 일을 생각하니 새로운 행복감이 밀려올 것만 같았다. 물론 이 행복감도 오래지 않아 무던해지고 지루한 삶이 될 테지만, 그때마다 혼자 보냈던 나의 일주일을 떠올리며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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