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이국적 향 가득한 '바비굴링'

정영선 2018. 3. 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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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트래블-17] 모든 여행이 즐거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다리는 시간과 여행을 다녀와서 추억하는 과정이 오히려 즐겁다고 할까.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낭만 이전에 처리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발리에서 볼 수 있는 차낭 사리

내게 베스트 여행지가 있다면 당연히 워스트 여행지도 있다. 그중 하나를 얘기를 하라면 '발리'다. 발리는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높고 이곳을 좋아하는 마니아도 꽤 있는 장소다. 심지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lay Love)'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소도 발리다. 하지만 난 발리에 도착한 순간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관광객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쿠타 해변(Kuta Beach)은 한국인들로 넘쳐 났으며 물빛은 푸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인천 앞바다 느낌이었다.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일단 즐겨보는 수밖에.

발리 우붓의 거리
우붓 네카 미술관
몽키 포레스트

쿠타 해변에서 차로 1시간 좀 넘게 달렸을까. 쿠타 해변에 실망한 내 마음이 풀어진 건 우붓 지역에 도착해서다. 예술인의 마을로 불리는 우붓에는 번잡함이 없었다. 조용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몸도 마음도 느긋해졌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네카 미술관은 사람이 너무 없어서 당황했지만 그 덕분에 그곳을 채운 오후의 햇살까지 온전히 나만의 것처럼 느껴졌다. 우붓에서 만난 몽키 포레스트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수많은 원숭이들에 둘러싸인 나는 이곳에서 낯선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느꼈다.

통돼지구이, 바비굴링

우붓에서 잊지 못할 또 하나가 있다면 이곳에서 처음 맛본 바비굴링(BABI GULING)이라는 음식이다. 바비굴링은 마을 잔치나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발리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돼지의 배 안에 고추, 생강, 마늘 등 향신료를 썰어 코코넛 기름과 함께 채운 뒤 나무틀에 건다. 아래는 야자나무껍질로 만든 숯불을 피워가며 몇 시간 동안 구워서 만든다. 이렇게 만드는데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장시간 숯불에 구워지면서 스모키한 향이 더해지고 돼지의 기름기가 빠진 자리에는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고기가 남게 된다.

발리 우붓 이부오카 (IBU OKA)

바비굴링을 맛보기 위해 찾은 곳은 우붓에서 바비굴링 맛집으로 유명한 이부오카(IBU OKA)다. 허름한 집이지만 유명세를 반영하듯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게 안에는 발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혀를 길게 늘어뜨린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먹다 남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다. 식사 환경이 썩 좋진 않았지만 왠지 이런 분위기가 맛집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고 말하며 난 호들갑스럽게 바비굴링을 기다렸다. 그렇게 처음 맛본 바비굴링은 생각보다 향이 강했다. 이미 발리의 향에 꽤 적응했다고 느꼈는데 처음 느껴보는 낯선 향이 코끝부터 느껴졌다. 물론 베이징덕을 연상케 하는 바삭한 돼지껍질은 맛있었고 쫄깃한 고기의 식감도 좋았다. 하지만 그 낯선 향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내가 발리를 떠나기 전에 다른 식당에서 바비굴링을 맛볼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그곳의 바비굴링은 향도 그리 강하지 않고 입에 더 착 붙었던 걸 보면 아마도 이부오카의 바비굴링은 현지인들의 입맛에 좀 더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비굴링을 먹으면서 흥미로웠던 건 이 요리는 인도네시아 전역이 아닌 발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라는 점이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속해 있지만 본토와 종교가 다르다. 본토인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인 데 비해 발리인들은 9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 그래서 돼지고기인 바비굴링은 발리에서만 맛볼 수 있다.

나시고랭

바비굴링 외에도 발리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 요리는 나시고렝과 미고렝이다. 둘 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다. 나시고렝은 '나시(Nasi)=밥'과 '고렝(Goreng)=기름에 볶거나 튀기는 요리'를 합친 말로 우리의 볶음밥과 비슷하다. 안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만드는 사람 마음이다. 그렇다면 미고렝은? '미(Mie)=면'에 고렝(Goreng)이 붙은 말로 볶음면을 뜻한다. 나시고렝과 마찬가지로 닭고기, 새우, 채소 등 부재료는 뭐든 넣어 만들 수 있다. 그저 밥이냐, 면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메뉴들은 길거리 노점에서도 푸드코트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었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꼬치구이,사테

사테(Sate)역시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요리다. 각종 고기를 꼬치에 꿰어서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로, 밥에 곁들여 먹기도 좋지만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닭고기, 쇠고기 등 여러 가지를 끼워서 구운 뒤 먹을 때는 고소하고 달콤한 땅콩소스에 찍어 먹는다. 내가 처음 맛본 인도네시아 요리도 사테였다.

우리나라 비빔밥과 비슷한 나시 참푸르(Nasi Campur)도 있다. 여기서 참푸르는 '섞는다'는 뜻으로 여러 가지 반찬과 밥이 함께 나오면 섞어서 먹는다. 삼발(Sambal) 소스는 약간 매콤하면서 독특한 감칠맛이 있는 소스로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아서 인기가 높다.

발리 우붓의 풍경
발리 우붓의 풍경

우붓 여행을 끝내고 다시 쿠타 해변으로 돌아왔다. 스콜 때문에 세차게 비가 내려쳤고 난 비를 피하고 허기도 면할 겸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 오는 날은 역시 맥주에 꼬치 구이지.' 난 빈탕(Bintang)맥주와 사테를 주문했다. 쿠타 해변을 바라보며 투덜댔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순간이었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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