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와 관중 함께 울었다 "내 인생 최고의 애국가"

곽우신,이경태,이희훈,소중한 2018. 3. 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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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표팀, 이탈리아 꺾고 동메달 목에 걸다

[오마이뉴스 글·사진:곽우신, 글:이경태, 사진:이희훈, 사진·영상:소중한, 편집:김예지]

"We are the champions."

퀸(Queen)의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가 강릉하키센터에 울려 퍼졌다. 관중들은 일어나서 노래에 맞춰 팔을 흔들었다. 얼음 위에는 이날의 챔피언, 파라 아이스하키(썰매를 이용하는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17일 낮 12시에 펼쳐진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전. 대한민국과 이탈리아는 치열한 접전을 치렀다. 피 말리는 승부 끝에 웃은 건 한국이었다.

[세리머니] 극적인 결승골 그리고 애국가

ⓒ 이희훈
0:0으로 균형이 팽팽하던 3피리어드, 경기 종료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았던 그 때. 이종경 선수의 퍽을 받아 정승환 선수가 경기장 벽을 따라 왼쪽으로 크게 치고 올라갔다. 빠른 속도로 드리블하던 정승환은 골대 뒤로 휙 돌아갔다. 정승환 선수가 그림처럼 뒤로 퍽을 날리자 골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동신 선수의 폴에 닿았다. 그대로 각도가 바뀐 퍽은 이탈리아 골리가 손 쓸 틈 없이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1:0. 한국 선수들은 승리를 확신한 듯 포효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골키퍼를 빼고 전부 공격에 돌입했다. 경기 종료까지 2분여를 앞두고 이탈리아 선수들은 터프하게 몰아붙였다. 체격과 힘에서 밀리지만 한국 선수들은 몸싸움을 주저하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버텼다.

2시간 같은 2분이 지났다. 3, 2, 1. 관중석에서 우렁찬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자, 선수들은 헬멧을 벗어 던졌다.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그런 선수들을 보며 같이 눈가를 훔치는 관중들이 눈에 띄었다.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얼음 위로 뛰쳐나왔다. 서광석 감독은 울부짖으며 선수들을 하나하나 안아줬다. 이어 모든 선수와 스태프가 빙판 가운데로 나와 둥근 원을 만들었다. 폴로 얼음을 두드리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더니, 다 함께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물의 애국가가 시작되자, 관중들도 따라서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가 끝난 후, 관중들은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선수들에게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직접 경기장으로 내려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선수들은 준비한 반다비 인형을 객석에 던졌다. 경기가 끝났지만,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지 자리를 뜨지 않는 관중이 대다수였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팀 역사상 최초로 패럴림픽 메달을 거머쥔 순간이었다.

[믹스드 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다
오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정승환 선수는 "오늘은 울지 않겠다"라며 웃어 보였다. 고인이 된 아버지 영전에 메달을 바치겠다던 그는 오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금메달은 아니지만 동메달 땄습니다, 아버지!"라면서 "조금 늦었지만, 아버지께 꼭 메달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끝까지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던 그는 첫 번째 경기부터 너무 많은 관중이 오셔서 너무 놀랐고…. 마지막 끝날 때 3, 2, 1 할 때 '행복'이라는 단어와 '꿈인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너무 감사하다"라고 관중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또 "끝까지 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뛰었다"는 그는 "마지막 골이 들어갔을 때,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 믿었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땐 내 인생 최고의 애국가였다"라고 평했다. 이어 "지금도 안 믿겨진다. 오늘은 정말 판타스틱한, 특별한 날이다. 많은 분과 이 기쁨, 영광을 같이 꼭 나누고 싶다"라며 "베이징에서는 금메달을 목표로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이번 경기를 끝으로 주장인 한민수 선수를 포함한 1세대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은퇴한다. 정승환 선수는 한민수 선수에 대해 "한민수 선수는 한국 파라 아이스하키의 레전드"라며 "창단부터 오랜 시간 정말 수고하셨다. 아이스하키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고 추켜세웠다. 또한 "민수 형님이 우리 파라 아이스하키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좋은 길을 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한민수 선수는 믹스드 존 인터뷰에 나서며 "동생들이 감격해서 울어서, 맏형이니까 좀 참았는데, 또 울어버렸다. 울보다"라며 웃어 보였다. 2006년 강원도청 팀 창단부터 지금까지 파라 아이스하키의 역사였던 그다. 그는 "메달을 못 따도 이번 패럴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려고 했는데, 동생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동메달을 땄다"라며 "메달 따서 너무 행복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끝은 또 새로운 시작"이라며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4년 동안 잘 준비해서, 장애인 선수 출신의 첫 지도자가 되어서 동생들에게 보다 더 '퀄리티'가 높은 스킬을 알려주고, 대한민국 파라 아이스하키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싶다."

그는 파라 아이스하키 팀의 미래를 밝게 봤다. "금메달을 따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골도 넣어본 사람이 넣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올림픽의 동메달 맛을 봤으니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세워서 다음 동생들이 또 메달을 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선배들 떠나보내며, 베이징을 기약하다

믹스드 존 인터뷰가 끝나고 동메달 획득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서광석 감독은 "이렇게 많은 언론사 분들, 관중들, 국민들이 저희 파라 아이스하키를 열심히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면서 "저희 17명 선수들 너무 멋있다고 생각한다. 또 저희 지도자 및 스태프들 모두 저를 잘 믿고 따라줘서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특히 오늘 애국가 세리머니는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서프라이즈'였다. "'선수들과 국민들, 관객 분들한테 저희가 보답할 수 있는 게 뭘까?' 동계 패럴림픽에서 우리의 무대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면서 "금메달은 아니지만, 금메달보다 몇 배나 되는 동메달을 땄으니, 강릉하키센터에서 애국가를 부르자고 했다. 선수들과 국민들이 어울리는 축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늘 결승골의 주인공인 장동신 선수는 소감을 묻는 현장 기자의 질문에 "준비를 안 했는데 떨린다"라며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승리로 이끄는 행운의 골"이라면서 "정승환 선수가 잘 맞춰서 준 것 같다"라고 평했다. 장 선수는 "아까 라커룸에서 농담 삼아 '내가 하나 줬는데 오늘 하나 갚았다'라고 말했다"라며, "다들 너무 열심히 많이 뛰어줬고, 많은 스태프 분들도 힘드셨을 거고, 지금 그 마지막의 한 골이 보답이 되었으리라 본다,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김정호 코치는 이번 패럴림픽을 계기로 파라 아이스하키 팀의 기세가 베이징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선수들이 벤쿠버 패럴림픽, 소치 패럴림픽을 거쳐서 평창까지 왔다. 여기까지 결코 쉽지는 않았다"라면서도 "오늘의 결과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베이징까지의 미래는 밝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장애인 분들이 용기를 내어 저희 스포츠를 접하셔서, 저희 선수들이 더 많이 생겨서 인프라가 확보되면, 베이징도 밝다"라고 첨언했다.

오늘을 끝으로 은퇴하는 선배들을 위한 송별사도 있었다. 공격의 축 중 한 명인 이주승 선수는 "고참 선수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라면서 "그런 것들이 하키하는 데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됐는데 아쉽다"라고 전했다. 이 선수는 "굉장히 마음이 아프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저희 젊은 선수들이 형들의 몫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라며 "앞으로의 파라 아이스하키 팀을 잘 이끌어나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유만균 선수는 자기 대신 오늘도 풀타임 출전해 선방해준 이재웅 선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정승환 선수는 이번 동메달을 계기로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고백했다. 한민수 선수는 고생해준 코칭스태프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다시 한번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제가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장애인 분들께 스포츠를 통해서 얼마나 성취감을 얻고, 살아가는 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 장애는 불편한 것뿐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더 노력하겠다."

기자회견은 선수들과 스태프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구호는 "우리는, 챔피언!"이었다. 누가 뭐래도 이날의 챔피언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다.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 역사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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