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움직임 패럴림픽의 '반격'

입력 2018. 3. 13. 10:08 수정 2018. 3. 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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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과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선수 양재림의 도전

한쪽 다리가 없는 스키선수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온다. 두 다리로 내려오는 스키선수보다 조금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가 만드는 곡선은 날렵하고 경쾌하다. 비장애인 스키선수가 흉내 낼 수 없는 움직임이다. 한 발로 스키를 타는 건 두 발로 내려오는 것보다 어렵고, 그래서 ‘좋은 움직임’에 가깝다. 수상스키를 탈 때 두 발로 타는 게 익숙해지면 모노스키를 시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음악을 ‘귀가 듣기 좋은 공기’라고 표현한다면 스포츠란 ‘눈이 보기 좋은 움직임’이다. 패럴림픽에는 좋은 움직임이 가득하다. 신체 한계를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감동 서사를 설파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미’ 장애를 가진 장애인과 ‘장차’ 장애를 가질 비장애인. 비장애인은 시시각각 장애인의 범주로 이주할 운명이지만 현실세계에서 장애인은 늘 저 너머에 머물고 있다. 둘은 공존하는 듯 보이나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극단적인 힘의 비대칭성이 완연하다. 패럴림픽은 세상을 향한 소외된 휴머니티의 반격이다. _편집자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고운소리. 한겨레 박종식 기자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 훈련 장면. 태흥영화주식회사 제공

이 글을 쓰며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쓴 <평행과 역설>을 다시 읽고 있다. 책 <오리엔탈리즘>으로 단숨에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세기의 지성 사이드와 미국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감독이자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알려진 바렌보임이 음악과 정치에 대해 나눈 대담집이다. 평행과 역설. 이 지면에서 나눌 두 개의 스토리,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과 시각장애인 알파인 스키선수 양재림의 이야기에 붙인 제목이기도 하다.

‘Parallel’(평행)은 김경만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이하 <우썰탄>)의 영어 제목이다. 국제영화제에 출품해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개봉관을 얻지 못하다 평창겨울패럴림픽을 이틀 앞둔 3월7일 영화관에 걸렸다.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역대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 파라아이스하키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 목표는 ‘결승전’

다큐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2018 평창패럴림픽에 참가하는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 17명의 이야기를 다뤘다. 태흥영화주식회사 제공

감독은 왜 영화 제목을 ‘평행’으로 했을까? 썰매의 날이 스케이트와는 달리 두 개이기 때문일까? 썰매의 두 날이 평행을 이루지 못하면 썰매는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한다. 두 날은 반드시 평행으로 박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파라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지탱하는 두 개의 평행한 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평평한 세상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니면 같은 세상에 살지만 영원히 만나지 않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세계를 보여주는 비정한 상징일까.

평창패럴림픽에 참가하는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는 모두 17명이다. 영화에 나오는 주연급 배우 한민수, 정승환, 이종경, 유만균은 여전히 이번 대표팀의 주전이다. 한국팀의 최고 맏형은 디펜스(방어)를 맡은 68번 한민수로 팀의 주장이기도 하다. ‘70년 개띠’니까 한국 나이로 마흔아홉. 이번 패럴림픽은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다. 늘 활짝 웃는 표정으로 넓은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원래 역도를 했단다)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그는 종종 환상통으로 괴로워한다. 존재하지 않는 다리지만 분명히 통증이 느껴진다. 물론 대책은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어 버텨야 한다. 두 딸의 아버지인 그는 딸의 운동회에 가서 부모와 함께 달리는 순서를 앞두고 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요즘은 새 의족을 얻어 난생처음 달리기 연습을 한다. 그는 간혹 뒤뚱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동영상을 보내준다. 화면 속 한민수 선수의 달리는 모습은 어색하지만 표정은 진지함으로 가득하다. 오래전 딸과 함께 뛰지 못했던 그 운동회의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주장을 맡은 14번 정승환은 ‘아이스링크의 메시’라고 한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러 번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파라아이스하키 공격수다. 5살 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작은 섬에서 바다를 보며 자랐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어린 정승환에게 다시 다리가 날 거라고 말했다. 새 다리가 돋아날 날을 기다리던 그는 말수가 적고 수줍은 청년으로 성장한다. 어릴 적 같이 자란 섬 친구들은 그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걸 알지만, 정승환이 친구들에게 의족을 보여준 적은 없다. 열아홉 살 때 처음 썰매를 타던 날 라커룸에서 다른 장애인 동료들에게조차 의족을 보여줄 용기가 나지 않아 썰매에 의족을 싣고 탔다. 그러던 그가 아이스하키 무장을 하고 세상에 당당히 의족을 드러낸다. 썰매를 지치며 이리저리 얼음판 위를 누비는 정승환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댄서다.

영화 속에선 뿌리파마를 하고 나왔던 28번 이종경은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이젠 뿌리파마를 하기에 나이가 많다고 고개를 젓고 평창패럴림픽에선 단정한 8 대 2 가르마를 택했다. 장애인이 되기 전 패러글라이딩을 무척 즐겼는데 ‘스피닝’이라는 고급 기술을 하다 추락해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다. 막 사귀기 시작했던 영화 속 애인은 이제 아내가 되었다. 결승골을 넣고 기념으로 얻는 퍽에 정성스레 하트를 그리던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 오글거려서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한다. 국내 유일의 실업팀인 강원도청팀의 주장인 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든 패러글라이딩에 다시 도전한다. 추락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하늘을 날았다는 성취감으로 괴성을 지르는데, 그 소리가 3월18일 강릉하키센터에 다시 울려퍼지길 기대한다.

국가대표팀 골리(축구의 골키퍼)인 유만균은 원래 야구선수였다. 의료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갑자기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됐다. 그는 한동안 충격에 빠져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한 손에 글러브를 끼고 능숙하게 퍽을 막아내는 모습에, 젊은 날 같은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서 야구공을 던지던 모습이 겹친다. 아이스하키와 마찬가지로 파라아이스하키에서도 골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가 한 골도 먹지 않으면 대표팀은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목표는 지지 않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인 골리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날마다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다.

평창패럴림픽에서 한국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목표는 결승전에 오르는 것이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미국과 캐나다 중 한 팀을 반드시 꺾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만약 결승전에 진출한다면 결승전에서 한국팀과 붙는 팀은 매우 어려운 경기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태로 절벽같은 슬로프를 내려가다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양재림을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당황했다. 선수 상담과 심리기술 훈련을 20년 동안 해왔는데 처음 만나보는 시각장애인 선수였다. 양재림은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은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였고, 다른 쪽엔 정상인의 10분의 1 정도 시력이 남아 있었다. 그는 스키선수 생활을 하며 일상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외선 때문에 시력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경고에도 눈밭을 떠나지 못한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앞선 가이드의 흐릿한 모습과 소리로 전달되는 신호에 의지해 절벽 같은 슬로프를 내려가려는 양재림을 상상할 때마다 아득해진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그 공포를 넘어서는 단단한 용기가 어떤 모습인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양재림은 2014년 소치패럴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려 했다. 그런데 소치에서 아쉽게 4등을 하고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패럴림픽 때 메달을 따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로 골인했는데 바로 그 대회 결승선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지루한 재활을 잘 견뎌낸 그는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고운소리는 양재림의 가이드다. 시각장애인 선수의 앞에서 눈이 되어주는 역할이다. 실제 둘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붙어 지낸다. 그만큼 호흡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운소리는 엘리트 스키선수 출신이다.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올림픽 메달을 꿈꾸다 어린 나이에 은퇴했다. 지금은 양재림과 함께 패럴림픽 메달을 꿈꾸고 있다.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가이드도 선수와 함께 같은 색깔의 메달을 받는다.

고운소리는 비장애인 스키선수다. 당연히 양재림보다 더 빨리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고운소리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뒤에 따라오는 선수의 속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다. 맘껏 속도를 내서 혼자 내려가면 경기를 마칠 수 없다. 고운소리가 늘 고민해야 하는 이 종목의 역설이다. 빠르지 않게 빨리 내려가기. 어떤 면에서 이 둘은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최근 ‘아티스틱스위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선수들과 비슷하다. 실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코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메가 이벤트’가 아닌 ‘진짜 올림픽’

올림픽과 따로 열리던 패럴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같은 곳에서 개최되었다. 올림픽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다. 거대한 뻥튀기라는 의미의 ‘메가’와 일시적으로 반짝하고 사라지는 ‘이벤트’ 사이에 스포츠가 둘러싸여 있다. 인류의 공영과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은 자본의 거대한 힘에 눌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다. 오히려 올림픽 정신은 패럴림픽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러렐, 패러독스, 그리고 패럴림픽까지 모두 ‘para’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가짜, 거짓’이라는 뜻도 있지만 ‘~을 넘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평행과 역설을 넘어 패럴림픽이 질식된 올림픽을 되살리길 빈다. 언제부턴가 올림픽을 그냥 올림픽, 패럴림픽을 ‘진짜 올림픽’이라 한다. 과장이 아니다. 패럴림픽이 올림픽이 이미 오래전에 상실한 어떤 가치를 품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스포츠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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