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 제주 올레를 걷다

글 김주호(헬스조선 비타투어) 2018. 3. 2.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 7코스 돔베낭길의 아름다운 데크길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불혹을 바라보는 나이, 20년 전에 읽은 소설 속 문장 하나가 나를 제주 올레로 떠밀었다.

올레 1코스 시작점
올레에서 만난 첫 번째 오름

혹독하고 날카로운 추위가 이어지던 지난 12월. 잡다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돼 타성에 젖어가는 건 아닐까? 남들과 다름없이 사는 게 행복한 걸까? 알 수 없는 불안과 해답 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불혹을 앞둔 나이에 사춘기가 다시 온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했다. 잠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5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가 떠올랐다. 하염없이 걸으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나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경험을 살려 다시 걷기로 했다. 지금보다 건강해진 정신으로 현실에 집중하기 위해, 순례길이 아니라도, 혼자 걸어 외롭더라도, 그때보다 더 절실하게 걷고 성찰하고 싶었다.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고 웅장한 성산일출봉

놀멍 쉬멍 걸으멍? 난 그냥 걸으멍

엄동설한에 마음 편히 걸을 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제주도가 떠올랐다. 올겨울, 유난히 기승을 부린 추위와 미세먼지에 지치기도 했고, 예전부터 제주 올레를 제대로 걸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따뜻하고, 공기 맑고, 걷기 좋은 길까지 있는 제주도가 혼자 걷는 여행지로 적당해 보였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공항 밖을 나서자 콧속으로 제법 쌀쌀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한파로 몸서리친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생각한 것보다 체감 온도가 훨씬 낮게 느껴졌다. ‘건조하고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제주도에 온 것만 해도 어디냐…’ 라고 나를 달랬다. 도착한 날부터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감흥은 잠시 접고 올레의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놀멍 쉬멍 걸으멍 고치 가는 길’(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함께 가는 길)이란 표어처럼 올레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와 그곳의 삶을 하나하나 살피며 느긋하게 걸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내게 주어진 시간은 6일 뿐. 21개 코스나 되는 제주 올레를 6일 동안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제주에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을 제외하고 하루 두 코스씩 총 10개 코스를 목표로 6일 동안 157km를 걷기로 했다.

올레 스탬프를 찍기 위해 들른 신산리 마을 카페

걸어서 제주 반 바퀴

제주공항에서 50분 거리. 올레 1코스의 시작점인 시흥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걸어서 제주 한 바퀴’, 21개 정규 코스와 5개의 스페셜 코스, 모두 합쳐 400km가 넘는 트레일이 시작하는 곳 치고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여느 올레 코스 시작점과 다를 바 없었다. 1코스 시작을 알리는 표지석과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나무 간세,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제주올레 안내센터 표지판이 전부였다.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걷는 제주 올레 1코스는 다양한 제주의 모습과 거의 모든 올레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올레판 종합선물세트였다. 널찍한 길을 이어주는 돌담, 한겨울에도 초록빛을 담아내는 밭담, 볕 좋은 곳에 자리한 올레 안내센터, 긴 능선을 따라 탁 트인 전망을 내어주는 말미 오름과 알오름, 기워 붙인 듯 펼쳐진 알록달록한 논과 밭, 겨울이라 더 푸른 바다의 물빛과 성산 일출봉, 소박한 마을 길, 해녀의 물질, 이끼 낀 너럭바위 등. 첫날, 한 코스였지만 제주 올레 21개 코스를 모두 걸은 기분이었다.

2일차부터 하루에 두 코스씩 걷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하루 평균 30~35km 거리를 걸어야 했다. 드센 제주의 겨울바람과 함께 하루에도 몇 번씩 비, 진눈깨비, 눈보라를 만나야 했다. 일몰 시간도 빨라 시간당 6~7km 속도로 걸어야 어두워지기 전에 올레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 걷기에는 적당한 계절이 아니었다.

주황빛 감귤 향기가 진동하던 겨울날 신풍신천바다목장
제주 올레 10코스를 걸으며 바라본 산방산

올레는 걷다, 기억에 담다, 아쉬움이 남다

호젓한 솔숲길을 따라 제주 동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수산봉에 올랐다. 저 멀리 섭지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첫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처음 제주도에 여행 와서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바로 섭지코지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대수산봉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혼인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혼인지가 나타났다.

너른 초지에서 귤껍질을 말리는 신풍신천바다목장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이곳만의 귀한 풍경이다. 바닷바람을 피해 잠시 머물렀던 신산리 마을 카페에서는 따뜻한 모카 한 잔과 이문세의 목소리가 온기와 감성을 동시에 채워주었다. 올레 3코스의 마지막 구간인 표선해수욕장에서는 모래 고운 백사장을 맨발로 걸으며 두 발에 쌓인 피로를 풀기도 했다. 세련되지 않아도, 일반적이지 않아도 모든 곳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힐링이었다.

아스팔트 해안길의 황금빛 억새
하얀 눈이 쌓인 감귤밭의 동백꽃

바다를 따라, 바다를 향해, 바다를 보며 걸었다. 아스팔트 깔린 해안도로는 딱딱했고, 바닷바람은 겨울 파도만큼 거셌다. 올레 코스 중 길고 지루한 편에 속하는 4코스와 비교적 짧고 예쁜 5코스는 해안길이 주를 이룬다. 황금빛 억새 출렁이는 해안도로와 붉은 동백꽃이 활짝 핀 좁다란 마을길, 달달한 모카 한 잔에 추위와 허기를 달랜 작고 아담한 카페,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유명해진 곳에서는 가족과 함께 방문한 추억이 떠올랐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올레 시장과 이중섭 거리를 가로지르는 올레 6코스와 제주의 바다가 깎아낸 주상절리가 일품인 올레 7코스가 그랬다. 21개 올레 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 좋은 구간이다. 겨울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어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코스인 8코스와 가장 짧은 9코스는 하루에 다 걷지 못했다. 19.8km에 이르는 8코스에서 떨어진 체력과 추운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10km 미만의 짧은 코스라 방심 했던 9코스는 월라봉을 넘어야 했다. 욕심부리다 걷는 도중 산속에서 밤을 맞이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9코스는 다음날로 일정을 미뤘다.

올레를 걷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송악산 둘레길
알록달록 올레를 장식하고 있는 자전거와 의자

마지막 여섯째 날, 오후 6시로 예정한 비행기를 저녁 9시로 늦추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전날 무리하지 않은 탓에 예상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9코스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코스만 남았다. 제주 최고의 해안 경관 중 하나로 꼽는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과 송악산, 가파도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코스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일간 여정이었지만,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길이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길은 종료 지점인 하모체육공원(제주 올레 안내소)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10개 올레를 걸었다는 뿌듯함과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걸어야만 했던 일정에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를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인상 깊었던 순간마다 가족이 그리웠다. 나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걸었지만 가족과 통화를 더 많이 했다. 5년 전에는 앞가림하기 바쁜 나이였지만 지금은 그럴 나이가 아니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순간부터 내 생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가족이 되어야 했다. 잡생각과 불안은 아직 철이 덜 들은 ‘어른아이’의 투정일 뿐이었다. 결국 올레를 걷고 일주일 후 가족과 함께 다시 제주도를 방문했다. 그리고 올레를 걸으며 눈여겨둔 카페와 식당과 장면들을 함께했다. 이제는 나 자신이 아닌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TRAVEL INFO

걷고 싶은 사람 모두 모여라! 올레 따라 제주 한 바퀴 어때요?

봄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향긋한 바다 내음과 싱그러운 초록의 자연이 만나는 4월. 헬스조선 비타투어가 2018년 제주 올레 완주 프로그램을 새롭게 시작한다. 4월 1일부터 5월 3일까지 21개 제주 올레 정규 코스를 하루 5~7시간씩. 3박4일 일정으로(매주 일~수요일) 5차례에 걸쳐 진행한다. (5차는 4박5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된다’는 취지로 오로지 올레를 걷는 데만 일정을 집중했다. 머무는 동안 제주에서 생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시내와 해변을 중심으로 호텔을 선정했다. 1차와 5차는 함덕해수욕장 앞에 자리한 선샤인호텔에서, 2차와 3차는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 근처에 자리한 데이즈호텔에서, 4차는 탑동 해안에 자리한 휘슬락호텔에서 머문다. 참가비는 1차부터 4차까지는 89만원이고 5차는 하루 더 머물기 때문에 105만 원이다. (1인 참가비, 2인 1실 기준. 유류할증료, 가이드 경비 포함)

일정

1차 4월 1~4일 올레 1~4코스 / 2차 4월 8~11일 올레 5~8코스 / 3차 4월 15~18일 올레 9~12코스 / 4차 4월 22~25일 올레 13~16코스 / 5차 4월 29일~5월 3일 올레 17~21코스

문의 헬스조선 비타투어

- Copyrights 헬스조선 & HEALTH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