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크레프와 갈레트
파리에 도착해서 한 가게를 찾아간 나는 그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분명히 여행을 준비하면서 봤던 프랑스 여행 책엔 영업 중이라고 나와 있던 크레프 가게였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떠난 가족이 남긴 집처럼 휑하니 비어 있었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혹시나 여행 책이 업데이트가 안 됐을까 싶어 블로거들의 후기를 찾아봤고, 내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쯤 그곳을 다녀간 후기도 보고 온 터였다. 사실 약간 불안하긴 했다. 왜냐면 지하철역에 내려서 구글로 검색을 해보니 이 집의 정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일주일 전에 다녀온 사람도 있는데….' 하지만 정보력에 있어선 역시 구글 승. 이후에 난 여행지에서 구글 신(神)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됐다.
크레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12세기께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발전된 것으로 본다. 브르타뉴는 땅이 척박해 농장물의 재배가 쉽지 않았는데 12세기께 들어온 메밀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랐다. 메밀은 섬유소도 많고 양질의 단백질도 많은 터라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됐고, 사람들은 메밀가루를 이용해 얇은 반죽을 만들어 부쳐 먹기도 했다. 이때 크레프가 발전한 것으로 본다. 이후 크레프를 메밀가루가 아닌 하얀 밀가루로 만들기 시작한 건 하얀 밀가루 가격이 저렴해져 하얀 밀가루가 대중화한 이후다.
크레프는 안에 넣는 재료에 따라 그 종류가 무궁무진한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내가 찾아간 가게의 이름이기도 한) 크레프 수제트(crepe suzette)다. 이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요리사가 크레프를 굽던 중에 실수로 여기에 과실주를 쏟았고 그 순간 불길이 솟아 크레프를 망치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크레프를 그대로 내게 됐는데, 그걸 먹은 황태자가 그 맛을 극찬하며 식사에 초대한 수제트 부인의 이름을 따서 '크레프 수제트'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다. 세상의 수많은 발견은 예기치 못한 실수에서 나온다. 지금도 크레프 수제트를 만들 때는 오렌지 술인 그랑 마니에르를 넣은 뒤, 알코올에 불을 붙여 조리하는 프랑베(flambee) 방식을 이용한다.
서울에서 갈레트나 크레프를 파는 곳은 흔하지 않지만 크레프 반죽을 한 장씩 얇게 구워 내 중간중간 크림을 발라가며 쌓아 만드는 '크레프 케이크'는 디저트 전문점이나 제과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각난 김에 조만간 있을 누군가의 생일을 위해 크레프 케이크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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