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비리포트] 아픔아는 신인, 넥센 이재승에게 주목할 이유

조회수 2018. 2. 17. 23: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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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리포트] 대기만성 예감, 2018 넥센 히어로즈 신인투수 이재승 인터뷰

2017년 9월 11일 오후.

77명의 이름이 먼저 불리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초조한 기다림 뿐이었다. 기대와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수많은 상념이 스치는 순간.

마침내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불렸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선택받은 소수의 입장만 허용하는 프로야구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2018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에 8라운드 78순위로 지명된 이재승의 이야기다.

넥센 히어로즈 2018 신인 이재승 (사진: 길준영 기자)

이재승의 고교통산 성적은 7경기 15 1/3이닝 1승 평균자책점 6.46이다.

뛰어난 투수들이 유독 많은 이른바 '베이징 키즈' 세대임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다. 고교 입학 후 부상과 지난한 재활로 인해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많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감출 수 없다. 190cm를 넘는 키에 속구 최고 구속은 152km까지 기록했다. 중학시절에는 양창섭(삼성 2차 1라), 안우진(넥센 2차 1차) 등과 함께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며 주목받기도 했던 유망주다.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2015년 이후 고교 야구를 포함 아마야구 전반을 취재하고 있는 [케이비리포트]에서는 고교 시절 부상과 그로 인한 방황, 수술에 대한 두려움, 재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스무살로 믿기지 않는 진중함을 갖추게 된 이재승을 만나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케이비리포트/ 이하 동일] 이재승 선수가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재승(이하 동일) :  가장 먼저 야구를 했던 것은 아니고 어릴 때 태권도장에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레크레이션 시간에 피구를 자주했는데 그때부터 다른 친구들보다 공을 던지는데 재능을 보였습니다. (웃음).

아버지께서 KBO리그 원년부터 야구를 좋아하신 야구팬이기도 하시구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이재승 선수에게 고교 시절은 어떤 기억입니까?

사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만 해도 주위의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 역시 제 실력만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교 입학 후 부상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1학년과 2학년 때는 마운드는커녕 불펜투구도 하지 못했어요.  수술을 받는 것도 두렵고 너무 힘들어서 ‘야구를 그만둘까’도 생각도 했습니다.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학업에 매진하려고도 했구요. 

하지만 가슴 한 켠에 지울 수 없는 미련이 남았습니다. 제 운명에서 야구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받을 결심을 하게 됐구요.

2학년 말까지 재활로 시간을 보내며  고비도 있었지만 야구에 대한 제 진심을 새삼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3학년에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꿈에 그리던 청룡기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 수술 후 재활 과정에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나요?

잊혀지는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중학교때 함께 야구했던 박신지(두산 1라) 선수나 안우진 선수는 주목을 받으며 마운드에서 활약하는데 저만 재활에 매달리고 있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팀에서도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수술까지 받았는 데  통증이 재발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청룡기 4강전 눈부신 호투로 배명고의 결승행을 이끈 이재승 (사진제공: 유은아)

-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보답일까요? 지난해 이른바 인생경기가 있었습니다. 어땠나요?

(환한 웃음) 네.  7월 14일 청룡기 4강전이었습니다.  상대가 안산공고였는데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무실점  6삼진 2안타 2볼넷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고교 시절에 많은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는데 이 경기에서 제 몫을 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이 경기 덕분에 프로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웃음). 마운드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3이닝만 막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하니 생각보다 너무 잘 풀렸습니다. 그래서 한 타자, 한 타자 더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6이닝까지 막게됐습니다.

# 이재승의 청룡기 안산공고전 호투 영상

- 신인 드래프트 당일에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사실  신인 드래프트 1주일 전부터 너무 떨렸습니다. 드래프트 초정장이 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았서 조금 실망도 했구요. 드래프트 당일에는 인터넷 중계로 지명회의를 지켜봤는데 순번이 지나갈 때마다 정신이 멍했습니다.

그러다 제 이름이 불렸는 데 그 순간 머릿속이 마치 백지처럼 새하얘졌습니다. 드래프트가 끝나고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니 순번이 많이 낮아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웃음) 그래도 지명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8라운드까지 밀린 건 의외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주위에서 워낙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저도 모르게 기대가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낮은 순번에 지명된 것이 더 다행인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상위 순번에 지명됐으면 저도 모르게 거만해졌을 것 같아요. 제가 실제 보여준 것이 적기 때문에 현재 저에 대한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로서 제 출발 지점을 잊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더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이재승은 야구선수이기 전에 주위에 소문난 야구팬이기도 하다. 야구팬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릴 때부터 프로 선수들의 기록을 달달 외우는 야구소년으로 통했다. 이제는 프로 선수가 된 이재승에게 좀 더 깊은 야구 얘기를 들어봤다.


- 이재승 선수에 관한  취재 중  야구 기록, 통계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어지간한 매니아 수준이라는 평을 들었는데요,  최근 KBO리그에서도 관심이 많아진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들도 알고 있나요? 

(웃음)네. 알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선수들의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이나 FIP(수비무관평균차잭점) 같은 지표도 케이비리포트 같은 기록 사이트를 통해 확인하곤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해서 여러 선수들의 기록을 즐겨 찾았습니다.

지금은 제 야구하기 바쁘지만 예전에는 주요 선수들 기록을 달달 외울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론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가 높은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웃음)

-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도  이재승 선수처럼 기록에 관심이 있는 선수들이 많은가요? 

저처럼 BABIP나 WAR 같은 지표까지 알고 있는 친구들은 많지 않구요(웃음).
음...고교 선수들은 크게 프로 지명을 목표로 하는 선수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선수로 나뉘는데요.

투수의 경우만 보면 프로 지명을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구속과 삼진-볼넷 비율을 많이 신경 씁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대학 진학의 기준이 되는 평균자책점과 이닝을 중요시 하는 편입니다.

- 구속을 많이 신경쓰는 편인가요?

어릴 때부터 속구 스피드가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구속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프로로서 일정 이상의 속구만 던질 수 있다면 구속은 크게 중요치 않다고 봅니다. 

무리하게 구속을 더 빠르게 하기보다는 구위나 무브먼트가 더 좋은 공을 던지고 싶습니다. 구속하고 구위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좀 더 힘있는 공을 제가 원하는 곳에 구사하고 싶습니다.

- 투수들에게 '승리'라는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승수로 투수의 능력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는데 말이죠.

네. 저도 기록을 많이 보기 때문에  '승리'라는 지표가 투수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데 큰 효용성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수들이 승리 투수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일단 승리투수가 되야 팀이 이기는 것이 좋기 때문에(웃음) 아무래도 직접 야구를 하고 승부를 겨루는 선수 입장에서는 기록이나 평가를 떠나  승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계약금 4천만원/연봉 2700만원)을 체결하고 KBO리그 선수로 첫 출발하는 이재승에게 앞으로의 방향과 각오를 물었다.

- 넥센은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구단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오랜 시간 재활을 경험하다 보니 웨이트는 물론이고 트레이닝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시즌 중에도 부상방지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하면 큰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 프로선수로서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보완해야 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프로야구선수로서 현재 저는 그야말로 원석이 들어있는 돌멩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 투수로서 손색없는 모습을 보이려면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숙련시켜야 할 듯 합니다.

코치님과 선배님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저만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무엇보다  제구력, 마운드에서의 운영 능력, 수비를  보완하려 합니다.

# 바람직한 SNS 사용으로 넥센팬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이재승

출처:  이재승 인스타그램

올 시즌 이재승 선수를 1군에서 볼 수 있을까요?

이정후 선배님처럼 바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신인왕까지 차지한 이정후 선배가 정말 놀라운 거죠(웃음).

구단에서도 저를 즉시전력감으로 지명한 것은 아니라 엉성한 모습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르고 싶진 않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프로 투수로서 부끄럼 없는 모습으로 야구 팬 여러분 앞에 서고 싶습니다. 물론 고척돔 마운드에 오르는 상상은  하루에도 몇 번 씩 합니다(웃음).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넥센이 강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팀과 선수가 함께 성장하는 구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 팀의 일원이 되었네요. 저도 팀과 함께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팬 여러분에게 실망스럽지 않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많이 응원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곧 고척돔에서 뵙겠습니다!  

# 다음스포츠 독자에게 보내는 넥센 이재승의 영상 편지

내로라하는 재능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는 프로무대에서 훌륭한 인성을 갖췄다는 것이 반드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품을 갖춘 재능이 찬연한 빛을 발하는 경우 단순한 감탄을 넘어 감동을 주기도 한다. 프로선수로서 첫 발을 내딛는 이재승이 그런 사례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취재: 길준영 기자/김정학 기자 (고교 및 아마야구 제보 kbr@kb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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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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