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전광렬' 방에 뜬 진짜 전광렬.."내 짤방, 중독성 있어"
이날 서울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옥에서 만난 전광렬씨에게 '인증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고독한 채팅방'에 올렸다. 한동안 채팅방이 술렁였다. 진짜 '그분'이 맞는지, 혹시 합성은 아닌지 사람들은 잠시 그의 '인증'을 의심스러워했다. 전씨는 "다들 안 믿는 것 같다"고 답답해 하면서도 채팅방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 모습을 찍어 다시 채팅방에 올렸다. 감격한 듯한 표정의 '전광렬 짤방'이 채팅방을 가득 채웠다.
정극 배우인 그에게 '고독한 전광렬을 아시나요?'라고 묻기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신드롬처럼 번진 이 현상을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망설이던 찰나 전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새 그렇게 그 방이 난리라면서요?" 배우 전광렬과의 대화는 바로 이 채팅방 이야기로 시작해 그가 보는 한국의 드라마판과 연기관, 오래 전부터 해온 재능기부 이야기 등으로 확장됐다.
Q : '고독한 전광렬' 방의 존재를 언제부터 알았나. A : "얼마 안 됐다. 후배들이 자꾸 내 사진(짤방)을 메시지로 보내는 거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자꾸 보니 내가 봐도 중독성이 있더라. 좀 매력적인 것도 같고.(웃음) 하루는 그 카톡방에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채팅방 정원 1000명이 꽉 차 있었다. 밤 9시부터 기다렸다. 새벽 2시30분쯤 자리가 하나 비었다가 금방 또 한 명이 그 자리로 들어가서 결국 못 들어갔다. 참, 나도 못들어가는 방을…. 대단하다."
Q : 그래도 정극배우인데, 좀 불편할 것 같기도 하다. A : "전혀. 내가 갖고 있는 캐릭터들에 대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표현해주는 것 아닌가. 물론 길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이 '광렬 하이'라고 한다면 좀 불쾌하긴 하겠지.(웃음) 오히려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사진으로 남아 이렇게 유행하고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그는 부인 박수진(48)씨, 아들 전동혁(24)씨와 8년 전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봉사활동을 갔다온 이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5년 전부터는 세 가족이 합심해 매년 '행복한 하루'라는 기부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Q : '행복한 하루'라는 공연은 뭔가. A : "노래·랩·토크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종의 자선 콘서트다. 이 공연을 위해 가족이 모여 6개월 전부터 회의를 한다. 공연 콘셉트 설정과 대관, 동료 연예인 섭외 모두 우리가 직접 한다. 수익금은 해외 식수지원이나 국내 환아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데뷔 이후 전씨는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드라마 '마녀의 법정' 종영 이후 차기작을 검토 중인 그는 "죽어도 촬영지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 과장같지만은 않았다.
Q : 올해로 배우 생활 40년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뭔가. A : 드라마 '허준'은 촬영하면서 한의학 용어 외우는 것도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다. '청춘의 덫'은 심은하씨랑 연기를 하면서 김수현 선생님의 대사에 전율이 오곤 했었다. 그밖에 '싸인'과 '제빵왕 김탁구',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마녀의 법정'까지 모두 소중한 작품들이다."
Q : 어떤 점이 특히 문제인 것 같나. A : 적어도 스태프들이 기본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하면 거기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보수를 받아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못하겠다'고 한 순간 그 사람은 '적응 못하는 놈'이 돼 버린다. 이 노동의 대가를 누가 가져갈까.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제작 현실이 이런데 매번 비슷한 포맷의 시청률 높은 인기 드라마 만들면 뭐하겠나. 배우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Q : 배우로서의 철학이 궁금하다. A : "배우 지성이나 유승호, 여진구 등 아끼는 후배들한테 늘 '성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양한 분야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배우를 하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연기자'가 되느냐, '인기인'에 머무느냐가 거기에 달려있다. 나도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해보고 싶다. 코믹 연기는 아직 못해봤다." "요새 이미 (짤방 때문에) 많이 웃게 해주시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허허 웃었다. 진중하면서도 소탈한 사람이었다. 40년 간 '숙성'된 배우 전광렬은 그렇게 세대를 관통해 사랑받는 연기자가 됐다. 전씨의 인증 후 '고독한 전광렬' 채팅방에서는 지금도 오후 4시11분을 '광렬시'라 부르며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홍상지·최규진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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