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인간혁명]다빈치와 스티브잡스, 창의성 비밀은?

윤석만 2018. 1. 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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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일자리 혁명에서 살아남는 법③
본인 회사에서 쫓겨났다 돌아온 CEO
AI 못 따라할 창의성이 가장 큰 무기
새로운 걸 만드는 것만이 창의성 아냐
잡스 "서로 다른 걸 연결해 변주한 것"
기술과 인문학 융합으로 탄생한 아이폰
애플 초기 모델 매킨토시·맥도 마찬가지
1984년 매킨토시 PC를 안고 있는 청년 스티브 잡스. 매킨토시는 도스 명령어 대신 아이콘·메뉴와 마우스를 적용해 일반인들도 사용하기 쉽게 만든 PC다. [중앙포토]
“My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 졸업식을 기억하시나요?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이 나온 때입니다. 당시 잡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로 졸업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잡스의 연설 동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고 미래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큰 영감을 불어넣었죠. 그리고 정확히 2년 후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출시 직후 아이폰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산업의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일상에서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혁명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언론들은 잡스와 아이폰을 ‘기술혁신’의 대명사, 롤모델로 치켜세웠죠. 세계 각국에선 삼성을 비롯한 유수의 IT 기업들이 아이폰의 혁신을 따라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잡스의 혁신 정신을 배우려고 합니다. 몇 해 전 세계적 컨설팅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전 세계 900여명의 CEO들에게 가장 창의성 있는 경영인이 누군지 물었는데 잡스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아이폰과 잡스가 성공할 수 있던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창의성’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실제로 창의성은 미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지난 회에 살펴본 것처럼 기술혁명으로 다가올 ‘직업 증발’의 시대엔 ‘얼마나 많은 일거리를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내일이 달라질 겁니다. 미래엔 기존 직업과 산업 분야에서 열심히 경쟁해 1등 하는 게 아니라 전에 없던 일자리와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다양한 서체를 쓸 수 있던 1980년대 애플의 매킨토시. [중앙포토]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미래의 핵심능력으로 창의성을 꼽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사회 각 분야 권위자 100명에게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핵심역량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가 창의성이었습니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도 “대부분의 직업이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인간들은 AI는 할 수 없는, 지금보다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창의적이란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창의성(創意性·creativity)은 사전적 정의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창의성의 본질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통념처럼 꼭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든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잡스는 창의성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이라고 정의하죠.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자신의 인생을 연결하는 지점(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픽
오늘 ‘인간혁명’은 잡스의 인생 항로를 따라 창의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이를 키우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죠. 우리 에게 ‘스마트’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잡스의 인생 지점들(dots)을 좇아 함께 여행을 떠나 보시죠.

미혼모의 아들, 입양된 사고뭉치 잘 알려진 것처럼 잡스의 출생은 불우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둘은 부부가 아니었죠. 대학원생이었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보냈죠. 자녀가 없던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는 아이를 입양하고 스티브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어린 잡스는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잦았죠. 학교 공부보다는 다른 취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비틀즈의 음악을 사랑했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히피 문화를 동경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던 아버지 폴은 지금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어린 시절의 잡스는 그다지 천재성을 보이진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무언가에 빠지면 만사를 제쳐두고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집중력은 높았다고 하죠.
홈스테드고등학교 시절의 스티브 잡스(가운데). [중앙포토]
인근의 홈스테드고교에 진학한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던 전자공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휴렛팩커드(HP)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던 그는 고교 졸업 후 두 달간 인턴으로 채용됩니다. 이곳에서 잡스는 동네 형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죠. 인턴이 끝난 잡스는 얼마 후 오리건 주에 있는 리드칼리지(Reed College)에 입학합니다. 철학을 전공했던 잡스는 학교생활에 흥미를 못 느끼고 한 학기만에 자퇴합니다. 잡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제가 선택한 리드칼리지는 학비가 매우 비쌌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께서 힘들게 모아둔 돈이 제 학비로 고스란히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공부가 그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믿음만 갖고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지나고 보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자퇴한 순간부터 흥미 없던 필수 과목을 듣는 대신, 좋아하는 강의만 자연스럽게 청강할 수 있었거든요.” 이후 잡스는 기숙사를 나와 친구 집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습니다. 병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병을 팔아서 먹을 양식을 구하기도 했죠. 매주 일요일엔 온전한 식사를 하기 위해 점심을 제공해주는 하레 크리슈나(힌두교의 한 분파) 사원까지 7마일을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잡스가 흠뻑 빠져 있던 것은 서체(캘리그라피) 강의였습니다. 잡스는 “리드칼리지는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다, 학교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상표의 글씨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곳에서 잡스는 세리프(serif)와 산 세리프(san serif) 같은 서체를 익혔습니다.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아름답고 예술적인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한 거였죠.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장의 스티브 잡스
당시 그는 서체 수업을 들은 것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그가 ‘매킨토시’라는 혁신적인 개인용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을 때 가장 큰 영감을 불어넣은 것이 서체 수업이었습니다. 잡스는 매킨토시(맥·Mac)를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라고 자부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장악하고 있던 PC 시장에서 잡스는 기능과 디자인을 결합한 맥으로 파란을 일으켰죠.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과 집념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차고에서 태어난 애플, 쫓겨난 주인 청강 생활을 끝낸 잡스는 ‘올인 원 팜(Allin one farm)’이라고 불리는 사과 농장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곳에는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히피들이 많았죠. 어릴 적 동경하던 히피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일본의 선불교 승려인 오토가와 고분(乙川弘文)을 만나게 됩니다. 선불교를 통해 동양 철학에 심취하게 되고 훗날 인도 히말라야 여행을 할 정도로 빠지게 되죠.

한때 잡스는 스님이 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인 오토가와의 만류로 속세에 남게 됐다고 전해지죠. 스승을 떠난 잡스는 ‘아타리’라는 게임 회사에 취직해 게임 디자이너로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 못한 그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죠.
1976년 666.66$에 판매된 애플 컴퓨터와 스티브잡스(오른쪽). 왼쪽은 스티브 워즈니악. [중앙포토]
그 때 잡스의 동네 형인 워즈니악은 아직 HP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워즈니악은 취미 활동으로 ‘컴퓨터 만들기’라는 동아리를 운영 중이었는데, 잡스도 이 곳의 멤버로 참여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허름한 차고에서 직접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1976년 첫 제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비록 나무로 만든 케이스에 모니터조차 없는 부실한 컴퓨터였지만 이 때 잡스는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습니다. 여기서 애플이란 이름은 그가 정신수양을 했던 사과농장을 떠올리며 만든 거였죠.
사업 수완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잡스는 타고난 엔지니어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2를 연이어 내놓습니다. 조잡한 애플1과 달리 대기업들의 다른 컴퓨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던 애플2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허름한 차고에서 2명이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 4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200억 달러짜리 기업이 됐습니다. 하지만 애플에선 그의 경영 스타일을 문제 삼은 이사회가 결국 잡스를 해임하고 맙니다. 1985년 30세의 나이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 거죠.
애플Ⅱ와 젊은 백만장자 스티브 잡스. [중앙포토]
돌아온 천재, 혁신의 아이콘 몇 달 동안 방황했던 잡스는 다시 현업에 복귀합니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수모로 분노에 휩싸이기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다시 열정을 쏟게 되죠. 이후 5년 동안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만들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Pixar)를 인수합니다. 그리고 1995년엔 그의 두 번째 작품 ‘토이스토리’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는 오늘날 3D 영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죠. 이후 잡스는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주식회사’, ‘인크레더블’ 같은 대작 애니메이션을 성공시키며 화려하게 컴백합니다.
반면 매킨토시의 성공 이후 ‘썩은 사과’가 돼 버린 애플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애플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잡스가 설립한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그는 애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년 후엔 다시 애플의 최고 경영자에 오르고요. 1998년 애플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색감으로 무장한 ‘아이맥’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흑자로 돌아섭니다.
토이스토리로 화려하게 돌아온 스티브 잡스. [타임]
2001년 MP3 시장에 후발 주자로 나선 애플은 단순한 기능과 예쁜 디자인을 무기 삼아 ‘아이팟’ 열풍을 일으키죠. 그리고 2007년에 드디어 아이폰이라는 괴물을 세상에 내놓죠. 아이폰은 그가 생각하는 ‘기술혁신’이 모두 집약돼 있습니다. '창의적인 것은 연결에서 나온다(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는 그의 말대로 아이폰은 핸드폰과 MP3, 노트북이 결합된 제품입니다. 기존의 것들을 융복합하고 ‘변주’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이죠. 아이폰은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에서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는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했던 과거 ‘맥’의 성공 방식과도 일치합니다. 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할 때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두 갈림길이있다, 애플은 언제나 그 한 가운데에 서 있다”고 말이죠. 기술과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시도는 이때부터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누르시면 '윤석만의 인간혁명'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창의성은 경험에서 나온다 잡스와 아이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창의성은 사전적 의미대로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기존에 있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연결해 또 하나의 변주를 만들어내는 게 현대적인 의미의 창의성이란 이야기죠. 이런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합니다.
첫 번째는 경험과 지식, 고민과 아이디어 같은 ‘연결꺼리(things)’가 많아야 한다는 겁니다. 전자공학을 좋아했지만 히말라야에 여행 갈 만큼 선불교에 심취하고 다양한 서체 수업을 들으며 디자인에 빠졌던 잡스는 남들보다 색다른 경험이 많았습니다. 경험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했죠.
MIT는 세계 최고의 공대지만 인문교양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MIT]
실제로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MIT는 공학 못지않게 인문·예술 수업을 강조합니다. ‘위대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는 교육철학처럼 좋은 생각꺼리가 나올 수 있게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고 불리는 교양교육에 집중하고 있죠. MIT엔 역사학, 철학, 언어학, 문학 등 각 분야의 훌륭한 교양 프로그램이 있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인문학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스피치와 토론 등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탁월한 머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컬럼비아대로 옮기기 전에 다녔던 옥시덴탈칼리지 역시 교양교육이 중심인 학부대학입니다. 잡스가 서체 수업을 들었던 리드칼리지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처럼 ‘리버럴 아츠’는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교양 지식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비판적이고 윤리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기릅니다. 국내에선 2011년부터 인문교양교육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단과대학인 후마니타스칼리지(경희대)가 유명합니다.
‘연결 지능’ 융복합 능력 갖춰야 두 번째로 창의성을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things’를 이을 수 있는 ‘연결 지능’ 있어야 합니다. 잡스가 핸드폰과 MP3, 노트북을 연결해 스마트폰을 만든 것처럼 말이죠. ‘연결 지능’은 사고의 확산을 통해 길러집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해당 분야에서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범주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거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중앙포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해부도 중 갈비뼈와 다리뼈 부분. [중앙포토]
‘연결 지능’이 가장 탁월했던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인 동시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해부학자였습니다. 또 ‘리라 다 브라초(Lira da braccio, 현대 바이올린의 모태가 된 악기)’의 훌륭한 연주자였으며 당대에 내로라 하는 건축가였죠.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서 오는 영감은 그를 미래로 이끌었죠. 새가 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새들의 비행에 관해(1505)’라는 저서를 남긴 그는 그의 모든 재능을 동원해 하늘을 나는 기구를 설계했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기 400년 전의 일입니다. 그가 고안한 기구에는 오늘날 비행기 날개에 적용되는 ‘베르누이의 법칙’이 반영돼 있죠.
베르누이의 법칙. [네이버]
공기가 빠르게 지나가면 압력이 감소하고, 느리게 움직이면 압력이 증가한다는 이론입니다. 새의 날개처럼 윗부분이 유선형이면 유속이 빨라져 압력이 낮아지고, 평평한 아래 부분은 유속이 느려 압력이 높아진다는 거죠. 이를 통해 아래 부분의 높은 압력이 날개를 위로 밀면서 하늘로 뜨게 되는 원리입니다. 남유럽의 관문 로마 국제공항의 이름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그의 업적 때문입니다.
이처럼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융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엔 교육의 흐름도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죠. 대표적인 곳이 올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입니다. 디지스트는 국내 최초로 4년간 학부 과정 전체를 무학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공 구분 없이 기초과학과 공학,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을 배우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공중 나사'. [중앙포토]
신의 가장 큰 닮은 꼴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티탄족(Titan)의 아들인 프로메테우스는 사촌인 제우스와 악연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생각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올림포스의 지배자인 제우스가 인간을 없애려 하자 그는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갖다 줍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전유물이던 불을 갖다 준 죄로 제우스로부터 큰 형벌을 받습니다. 코카소스 산에 사슬로 묶여 매일 같이 독수리에게 간이 쪼이는 것이죠. 하지만 밤마다 간이 재생해 똑같은 고통을 반복합니다. 훗날 헤라클레스가 구출하러 올 때까지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매일 비극에 빠지게 되죠.
프로메테우스(1907), 장 델빌(1867~1953) 작, 캔버스에 유채. [브뤼셀 자유 대학교]
그렇다면 여기서 불이 의미하는 건 뭘까요.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안겨주고자 했던 건 왜일까요. 반대로 제우스는 무엇 때문에 인간에게 불이 건네진 것을 보고 크게 분노했을까요?

불은 곧 문명을 의미합니다. 어두웠던 인간들의 원시 세계에 빛을 밝혀주는 도구였죠. 즉, 무언가를 만드는 힘이란 이야깁니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면서 도구를 쓸 줄 알게 됐고 문명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이후 인간은 수차례의 기술 혁신 끝에 오늘과 같은 발달된 문명을 이뤘죠.

하지만 본래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덕분에 신의 피조물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의 능력 중 하나를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 창의성이란 뜻입니다. ‘창조’라는 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간은 뛰어난 창의성을 지녔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유일하게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댐을 만들어 물길을 가두기고 산을 깎아 터널을 뚫기도 합니다. 바다를 메워 땅으로 만들고, 하늘에선 인공 비가 내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AI가 활성화 된 미래 시대에도 마찬가집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직업 증발’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요. 계산하고 암기하며 정리하는 능력 등은 이제 AI를 따라갈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의 능력 중 AI와의 경쟁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창의성’뿐입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에서처럼, AI라면 두지 않았을 이 9단의 마지막 한 수, 기계는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무언가에 앞으로 우리가 찾아야 할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3월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고 있는 이세돌 9단. [구글]
다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창의성에 대해 올바른 정의를 내리는 일이죠. 창의력은 비단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며, 골방에 틀어박힌 천재의 머릿속에서만 나오는 건 더더욱 아니라는 겁니다. 다양항 지식과 경험을 쌓고, 타인과의 토론을 통해 의견을 나누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계속될 때 창의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인간혁명’이, 우리가 갖고 있던 창의성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는데 일조했길 바라면서 ‘미래 일자리 혁명에서 살아남는 법’ 세 번째 시리즈를 마칩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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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앞으로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의 기조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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