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미식세계] 오래된 다방이 선사하는 시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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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즉 미성년자일 때 카페에 종종 갔다.
근대 문인들처럼 지식과 정담을 나누려고 간 게 아니라, 삐삐(beeper) 회신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와 물을 섞는 방법, 말끔하게 걸러지는 커피가루, 적절하게 조절한 물의 온도 때문이다.
추억의 사이펀 드립도 반갑고 비엔나커피도 맛있지만, 사람들이 '미네르바'와 '학림다방'을 드나드는 이유는 한 잔의 커피 때문만은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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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서울 신촌에 '미네르바'라는 오래된 카페가 있다. 1975년 3월 문을 연 곳으로, 나의 오랜 친구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친구 덕에 역사적인 장소에 나의 추억도 깃들게 됐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여 커피를 내려 먹었다. 능숙한 솜씨로 불과 커피, 물을 다루던 친구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모두 숨죽이기 일쑤였다. 물이 담긴 플라스크를 알코올램프로 가열하면 압력 차로 물이 위쪽으로 올라간다. 아래 플라스크의 물이 줄어들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렇게 되기 전 위쪽에 고인 물에 커피가루를 넣고 잘 젓는다. 플라스크에 더 열을 가하지 않으면 위쪽의 커피가 아래로 내려와 차오른다. 압력 차를 이용하는 것은 모카포트와 비슷한데, 사이펀 드립 커피가 대체로 맛과 향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커피와 물을 섞는 방법, 말끔하게 걸러지는 커피가루, 적절하게 조절한 물의 온도 때문이다.
추억의 사이펀 드립도 반갑고 비엔나커피도 맛있지만, 사람들이 '미네르바'와 '학림다방'을 드나드는 이유는 한 잔의 커피 때문만은 아닐 터. 반질반질 손때 묻은 물건, 시간을 초월해 계속 울리는 클래식 음악처럼 긴 시간 동안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추억을 채워놓은 그곳에 나의 이야기도 한 편 새기고 싶어서가 아닐까. 한참 뒤 찾아가 봐도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니까.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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