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선의 인간, 동물 그리고 병원체](8)박쥐 숙주사건의 전말

천명선 | 수의사 2017. 12. 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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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잘못된 만남 - 박쥐와 신종감염병
ㆍ하필 그날, 그곳에서 너를 만난 것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1994년 호주 퀸즐랜드주 헨드라에서 경주마와 조련사가 원인 모를 호흡기 증상을 보이다 숨졌다. 조사 결과 범인은 호주 여우박쥐(flying fox)로 밝혀졌다. 여우박쥐는 과일을 먹고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자는데, 죽은 말은 여우박쥐가 매달린 과일나무 아래서 풀을 뜯어 먹다 감염됐다. 사진은 여우박쥐.

제대로 날아다니는 두 종류의 포유류가 있다. 하나는 사람.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어떤 동물도 도달하지 못한 속도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종은 박쥐다. 청마 유치환이 ‘본래 기는 짐승이 무엇이 싫어 땅과 낮을 피해 음습한 폐가의 지붕에 숨어 있다가 달빛 푸른 밤 몰래 나와 홀로 서러운 춤을 추느냐’고 노래한 바로 그 동물.

편복이라 하여 장수와 복의 상징으로 쓰이기는 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박쥐가 가졌던 경계성이나 모호함은 부러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밤에 주로 날아다니는 데다 으슥한 곳에 거꾸로, 그것도 떼를 지어 매달려 있으니 딱히 좋은 인상을 줄 리는 없다. 사실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는 동굴에서도 박쥐의 뼈가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옛날 박쥐와 우리는 같은 거주지의 이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던 사스, 메르스, 에볼라가 모두 박쥐를 보균 숙주로 삼아 인간에게까지 전파되어 온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일단 서로 친척 간인 헨드라 바이러스와 니파 바이러스 두 종이다.

■ 낮에 나온 뱀파이어 박쥐

박쥐가 질병을 옮긴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조금 더 오래전 일이기는 하다. 1908년 브라질에서 대낮에 박쥐가 나와 돌아다니다 동물을 무는 일이 화제가 되었다. 물린 동물은 광견병 증세를 보였다. 이후 연구자들은 이 박쥐들이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당시 이 박쥐가 흡혈박쥐(뱀파이어 박쥐)였기 때문에 공포가 좀 더 컸다.

당연하지만, 박쥐는 다른 포유류처럼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박쥐는 치사율이 100%에 이르지 않는다. 인도 남부 벵갈루루에서 박쥐의 뇌와 혈액을 모니터링해 본 결과 혈액에서 광견병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인간의 광견병은 99% 개에게 물려서 이환된다.

■ 말과 박쥐의 만남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의 헨드라(Hendra)는 공원으로 둘러싸인 살기 좋은 교외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농업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좋은 환경 덕에 주거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었던 이곳의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의 일이다.

1994년 헨드라에 있던 경주마 훈련장에서 맨 처음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건 임신한 서러브레드 암말이었다. 말을 훈련사로 옮기려던 때 말이 아픈 것이 발견되었고, 이 말은 발병한 지 2일 만에 죽었다. 가까운 마사에 있던 다른 말 12마리도 이후 14일 이내에 모두 폐사했다. 열이 오르고 얼굴이 붓고, 심한 호흡기 증상, 피가 섞인 콧물이 흘렀다.

이 바이러스가 공격한 건 말뿐이 아니었다. 빅 레일이라는 말 조련사가 원인 모를 호흡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병은 급성으로 진행되었고, 그는 며칠 후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또 한 명의 감염자는 마사에서 말을 돌보던 경주마 관리사였다. 두 사람 모두 가까이서 아픈 말을 돌보았었다. 당국은 긴급하게 말의 이동을 제한하고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밝혀진 원인체는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파라믹소 바이러스 계열의 신종 바이러스였다. 사람과 말의 목숨을 앗아간 이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말 모르빌리 바이러스라고 불리다가 이후에 처음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 헨드라 바이러스로 다시 이름 붙여졌다.

이후 조사를 통해 헨드라에서 병이 발생하기 몇 주 전에 이미 브리즈번에서 약 1000㎞ 떨어진 매캐이에서 같은 질병이 발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살짜리 서러브레드종의 임신한 말이 폐사했다. 걷지 못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졌으며 안면이 부어오르는 증상이 나타난 지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말과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던 2살짜리 망아지도 11일 후 제대로 걷지 못하며 근육경련을 보이고 피가 섞인 콧물을 보이다가 하루 만에 죽었다. 당시에는 아보카도 중독이나 뱀에 물린 것으로 생각되었었다.

이 두 곳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되었다. 말, 소, 개, 고양이, 가금류까지 근처에 살고 있는 5000마리의 가축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헨드라 바이러스의 항체를 가진 동물은 없었고, 두 장소에서 어떤 역학적인 연관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직접 접촉에 의해서만 감염되는 것으로, 전염력이 그렇게까지는 높지 않은 것으로 이 바이러스의 성격을 규정하는 수밖에 다른 결론이 없었다.

처음 발생한 지역과 그 지역에 사는 동물을 고려했을 때 이들이 야생동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두 곳에 모두 있어야 했고, 두 지역을 이동할 수 있으며, 말과 접촉할 수 있는 동물을 골라야 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동물로 범위가 좁혀졌다. 결과는 호주 여우박쥐(flying fox)였다. 퀸즐랜드 전 지역에서 여러 종의 여우박쥐에서 항체가 확인되었다.

얼마 뒤 우연히 잡힌 임신한 여우박쥐의 생식기에서 헨드라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분리해낼 수 있었다. 이 바이러스와 말에서 분리한 헨드라 바이러스 사이에는 차이가 없었다. 이후 퀸즐랜드 지역에서 대규모로 진행된 조사에서 호주의 대표적인 여우박쥐 종의 혈액을 검사했는데, 약 47%가 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다. 범인은 여우박쥐였다. 이들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큰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 돼지와 박쥐의 만남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1998년 9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돼지에게 엄청 전파가 빠른 새로운 질병이 발생했다. 고열과 호흡기 증상, 때로는 신경 증상을 동반했다. 그리고 이 질병은 사람에게도 전염되었다. 총 105명의 사람이 같은 기간 동안 사망했다. 고열과 두통, 근육통, 방향실조 같은 증상이 동반되어 뇌염처럼 보였고, 증상이 나타난 지 48시간 만에 죽음에 이르렀다.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돼지를 키우는 축산농민이었고, 아픈 돼지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다.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로 이 질병을 일으킨 병원체는 1994년 호주에서 발견된 헨드라 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했다. 니파 바이러스로 이름 붙여진 이 바이러스는 서로 다른 농장 간의 돼지 이동으로 전파되었고, 이미 1996년부터 이 지역에 퍼졌던 것으로 의심되었다. 결국 말레이시아는 100만두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해야 했다.

발생 지역에서 개나 고양이, 말 같은 가축은 모두 니파 바이러스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가축은 돼지와 직·간접적인 접촉으로 인해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야생동물과 사냥개, 설치류는 그렇지 않았다. 헨드라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박쥐가 이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다만, 말레이시아에는 좀 더 많은 종류의 박쥐가 산다. 연구자들은 5주 동안 말레이시아 전 지역에서 박쥐를 잡았고, 총 14종의 박쥐를 조사할 수 있었다. 그중 두 종의 여우박쥐를 포함해서 다섯 종에서 니파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발견되었다. 당시에 박쥐에서 바이러스 자체를 검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후 연구에서 여우박쥐의 오줌과 이들이 먹다 남긴 과일 조각에서 사람에서 분리된 니파 바이러스와 거의 동일한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니파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망고.

■ 과일나무와 망고의 공통점

대체 여우박쥐는 어떻게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옮길 수 있었을까?

어떤 새로운 바이러스가 특정 동물에서 다른 동물로 종간 감염을 일으키는 것은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일단 그 바이러스가 한 동물군에서 많은 개체를 감염시키고도 심한 증상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서 이 동물군 내에 안정적으로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양의 바이러스가 배출되어 이들이 사는 환경에 존재하다가 다른 동물이 우연히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마침 감수성이 있어 병에 걸리고 약간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이 다른 동물과 접촉한 사람도 마침 또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더 나쁜 경우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전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박쥐들은 종류에 따라 곤충도 먹고, 과일도 먹고 때로는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먹기도 한다. 여우박쥐는 과일을 먹고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잔다. 그런데 헨드라 바이러스의 첫 희생자였던 서러브레드 말은 이 박쥐가 매달린 과일나무 아래에서 풀을 뜯었고, 두 번째 희생자는 박쥐가 매달려 있는 나무 곁에 먹이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감염된 시기는 여우박쥐의 번식기와 일치했다.

니파 바이러스의 매개체는 망고였다. 여우박쥐가 먹으면서 침이나 오줌으로 오염시킨 망고가 돼지 사육장으로 떨어져서 돼지가 먹고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특히, 주변 지역의 심각한 숲 개간과 엘니뇨로 유발된 가뭄으로 인해 여우박쥐가 돼지 농장으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다.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류로 살기 위해 박쥐는 좀 특별한 신체적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5000만년 이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왔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동물은 새처럼 뼈를 가볍게 해서 날아다니기 쉽게 진화해 왔다. 게다가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면역시스템도 다른 포유류와는 좀 다르다. 그래서 학자들은 바이러스가 박쥐를 자연 상태의 보균 숙주로 삼아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퍼져 나가기가 좀 더 쉽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박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박쥐가 바이러스를 물고 다가온 줄 알았다. 이 잘못된 만남을 주선해온 건 사실은 인간인데 말이다.

▶필자 천명선
인간·동물 관계와 동물 질병의 사회문화적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로,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앙 대학에서 수의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에서 수의역사학, 수의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천명선 |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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