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병(病)'과 댄스가요 연대기

홍성윤 입력 2017. 11. 18.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쉽게 읽는 서브컬처-53] "나도 무브병(病)에 걸렸다."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때 아닌 투병 고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병 원인은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태민의 신곡 '무브'입니다.

증상은 다양합니다. 무브병 환자들은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치명적인 척, 요염한 척한다거나 패션모델처럼 걷는다거나 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고 있습니다. 전염 경로는 주로 SNS와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되는 직캠 영상입니다. 여성 유저가 많은 커뮤니티 등지에서 종종 목격되는 영업(팬덤 확장을 위해 짤방, 영상 등을 올리는 행위)도 무브병 확산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무브병의 강력한 전염성은 '자타 공인 댄싱머신' 태민의 퍼모먼스에서 나옵니다. 일본의 유명 안무가 스와가라 고하루가 참여한 무브의 안무는 손과 골반 동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성적인 매력을 갖춘 태민이 다소 여성적인 동작으로 섹슈얼한 춤선을 보여주다 보니 "남자판 성인식"이란 반응까지 나옵니다. 네, 청순한 고교생 가수였던 박지윤을 단번에 섹시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만든 그 '성인식' 말입니다.

댄스음악에는 음악 자체만으로도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지만, 거기에 더해 강렬한 안무가 뒷받침된다면 그 매력은 배가됩니다. 매력적인 안무로 시대를 풍미했던 댄스 히트곡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5년 룰라 '날개 잃은 천사'

4인 혼성그룹 '룰라'의 2집 앨범이자 동명의 타이틀곡인 '날개 잃은 천사'는 1995년을 뒤흔든 노래였습니다. 2집 앨범은 167만장이나 팔렸는데 지금까지도 혼성그룹 단일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 독보적인 가요 프로그램이었던 가요 톱10에서는 한 곡이 5주 연속 1위에 랭크되면 골든컵을 수여하고 순위 집계에서 제외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룰라는 1집 '비밀은 없어'와 2집 '날개 잃은 천사'로 2015년 한 해 동안 골든컵을 두 번이나 받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같은 해 룰라는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가요계의 황금기로 꼽히는 1990년대 중에서도 1995년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노이즈의 '상상속의 너' 등 한국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곡들이 쏟아져 나온 해였습니다. '날개 잃은 천사'가 다른 히트곡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바로 춤이었어요. 멤버들이 옆으로 서서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가사에 맞춰 손바닥으로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를 치는 안무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룰라 멤버 김지현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 춤을 추다가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들곤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룰라는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의 표절 파문으로 위기에 봉착합니다. '날개 잃은 천사' 역시 레게 뮤지션인 섀기(Shaggy)의 1993년 곡 'Oh Carolina'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1996년 H.O.T. '캔디'

1996년 데뷔한 H.O.T.는 K팝 아이돌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독보적인 인기와 막대한 영향력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판도를 바꾸고 한류(韓流)의 물꼬를 튼 그룹이기도 하죠. 1996년 1집 앨범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수록곡 '전사의 후예'로 활동을 시작한 H.O.T.는 같은 해 12월 후속곡 '캔디'로 대박을 터트립니다. '전사의 후예'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던 멤버들이 털옷과 털모자를 입고 나와 귀엽고 경쾌한 춤을 추는 모습에 10대 소녀들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특히 문희준이 바닥에 주저앉아 통통 튀어 오르는 '파워레이서춤'과 장우혁의 '망치춤'은 이 노래를 상징하는 안무가 됐습니다. 장우혁은 덕분에 '해머보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H.O.T.는 '미스터 해머'라는 이름의 과자 광고도 찍게 됩니다. 여담으로 미스터 해머를 그리워한 소비자들은 비슷한 맛의 과자를 찾아 헤맸는데, 오리온 '와클'과 수입과자 '스나이더스' '프레첼'에서 추억의 맛을 찾았다고 하니 참고 바랍니다.

◆1999년 이정현 '와' '바꿔'

배우이자 가수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이정현은 데뷔와 동시에 세기말에 걸맞은 테크노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1집 'Let's Go To My Star'를 통해 가수로 변신한 이정현은 손가락 마이크와 외눈박이 부채, 사이버틱한 메이크업과 무협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복장 등 말 그대로 '이 세상 콘셉트가 아니다' 수준의 콘셉트를 들고 나왔습니다. 충격과 공포였죠. 이정현이 직접 고안한 콘셉트를 보고 소속사 사장이 "우리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냐"며 소리쳤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인기를 끌던 테크노댄스와 접목한 '와'의 안무는 앞서 설명한 아이템을 활용해 시대를 대표하는 댄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연기자다운 표정 연기도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높였죠. 그래서 세간에서는 '이정현이 신들린 것 아닌가'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후속곡 '바꿔'도 메가 히트곡입니다. 테크노 여전사다운 복장으로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가사에 맞춰 팔을 휘두르는 안무는 '와' 이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마침 활동 시기가 선거철과 겹쳐 선거 활동에도 적극 활용돼 공중파 뉴스에도 입성한 바 있습니다. 날개와 어깨 장신구 등을 포함해 의상 무게가 약 20㎏에 달했고, 의상을 입는 데만 2시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2000년 박지윤 '성인식'

데뷔 3년 차 풋풋한 여고생 가수 이미지였던 열아홉 살 박지윤을 단번에 시대의 섹시 아이콘으로 등극시킨 센세이션 그 자체 '성인식'입니다. 1집 '하늘색 꿈' 이후 청순한 이미지를 유지하던 박지윤은 4집 '성인식'과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180도 변신에 성공합니다.

남녀 간의 첫 경험을 은유한 뮤직비디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라는 도발적인 가사, 프로듀서 박진영의 혼이 실린 농염한 안무까지 합쳐서 전설로 자리매김합니다. 박진영은 2016년 한 인터뷰에서 성인식을 두고 "내가 만든 최고의 안무"로 꼽기도 했습니다.

◆2007년 원더걸스 'Tell Me'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히트곡이자 원더걸스를 국민 걸그룹으로 만든 올타임 레전드 곡입니다. 1집 'The Wonder Years'에 수록된 '텔 미'를 빼놓고는 아이돌사(史), 아니 한국 음악사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소년층을 넘어 청년,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와 대중성을 바탕으로 가요계의 판도를 바꿔버린 곡이니까요. '텔 미'는 아이돌 걸그룹 시장을 엄청나게 키웠고, 중독성 강한 후렴구를 내세운 '후크송'이 가요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만들었습니다.

2014년 엠넷이 15~34세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한 아이돌 국민댄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텔 미'는 51%의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원더걸스는 후속곡 '노바디'의 총알춤으로 같은 설문조사에서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텔 미'의 안무는 1980년대 댄스 팝에서 영향을 받은 노래에 걸맞은 복고풍 안무를 선보였습니다. '살랑살랑춤(흔들흔들춤)' '찌르기춤' '팔찌춤' 등이 키포인트 안무였습니다. 멤버 소희가 '어머나'라는 가사에 맞춰 볼에 손을 갖다 대는 안무도 화제였죠. 때마침 불던 UCC 열풍도 텔미 신드롬에 일조했습니다. 연예인은 물론 유치원생부터 학생, 군인과 의경, 스님에 이르기까지 '텔 미' 안무 따라 하기 영상을 올리는 등 자발적인 참여와 재생산이 이뤄졌습니다. 이후 원더걸스는 후속곡 'So Hot' 'Nobody'에서도 연타석 홈런을 날리면서 명실상부한 '대체 불가' 국민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합니다. 'Nobody'의 포인트 안무 '총알춤'도 마찬가지로 국민 댄스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기를 얻었습니다.

◆2009년 소녀시대 'Gee'

2009년은 소녀시대의 해였습니다. 1집 '소녀시대' 이후(1집 리패키지 앨범도 있었지만) 긴 공백 끝에 들고 나온 싱글곡 'Gee'는 공개 직후부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공중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9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그해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어요. 이후 음원 서비스 업체 멜론에서 집계한 2000년대 종합 음원순위에서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전무후무한 대기록이죠.

미끈한 각선미를 강조한 소녀시대답게 'Gee'의 핵심 안무인 '게다리춤' 역시 다리 동작을 강조합니다. 컬러풀한 스키니진을 입고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옆으로 이동하는 게다리춤은 원로 코미디언 고(故) 배삼룡 씨가 시초로 알려진 '개다리춤'을 연상케 하는 코믹함과 소녀시대의 발랄한 매력을 모두 담아냈습니다.

소녀시대는 단순한 걸그룹을 넘어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 모델이 됐습니다. 헤어스타일부터 패션, 뷰티, 외모(몸매)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 두고 '소시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니까요. 특히 연예인의 몸매를 부러워하는 풍조야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저렇게 되고(=마르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시킨 건 소시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치킨의 경우 소녀시대 마케팅으로 2008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31%나 급증하기도 했죠(소시 달력을 사니 치킨이 공짜).

소녀시대는 'Gee'의 후속곡인 '소원을 말해봐'에서 핫팬츠 의상으로 '제기차기춤' '각선미춤' 등 각선미를 강조한 안무로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섹시 콘셉트로의 변화와 연이은 구설(앨범 재킷 논란 등)로 인해 평가절하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시의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죠. '소원을 말해봐'는 이후 'GENIE'라는 곡으로 번안돼 일본 시장 데뷔곡으로도 쓰였습니다.

◆2009년 브라운 아이드 걸스 'Abracadabra'

2009년은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온 가요계의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소녀시대의 'Gee',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 2NE1의 'I don't Care' 등 남녀 아이돌 그룹의 대표곡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거든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이후 브아걸)의 3집 'Sound-G' 수록곡 'Abracadabra'는 2009년을 장식한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2008년엔 원더걸스, 2009년엔 소녀시대라는 절대강자에 밀려 2인자에 그쳤습니다만, 결코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렉트로닉 장르의 곡이란 점과 기존 아이돌 그룹처럼 팬덤이 탄탄하지도 않았던 걸 감안하면 놀라운 흥행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Abracadabra'를 소개하는 이유는 단연 춤 때문입니다. 당시 걸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과감한 퍼포먼스와 섹시한 스타일, 무엇보다 팔짱을 낀 채 골반을 좌우로 흔드는 '시건방 춤'은 브아걸을 단숨에 대세 그룹으로 끌어올렸습니다. 4년 뒤 싸이는 안무팀 '야마앤핫칙스'에 이례적으로 저작료를 지불하고 자신의 노래 '젠틀맨'에 '시건방춤'을 차용했습니다. 덕분에 브아걸의 안무는 전국구를 넘어 세계구급 안무로 발돋움했죠.

여하튼 2009년 이후 브아걸은 명실상부 메이저 그룹이 됐습니다. 빅마마처럼 실력파 보컬그룹으로 출발한 브아걸이 댄스 노선으로 전업(?)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있었지만요.

◆2009년 카라 '미스터'

걸그룹이 흥했던 2009년의 키워드는 '원카소(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였습니다. 혹자는 양강 체제였다고 술회하기도 하지만, 카라 역시 막강한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생계형 아이돌이자 성장형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남다른 팬덤을 구축한 카라는 일본 한류 열풍의 중심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시발점은 바로 '미스터'의 엉덩이춤이었습니다.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만든 안무팀 야마앤핫칙스의 배윤정 공동대표가 엉덩이춤을 만들었습니다. 배 대표는 방송에 출연해 엉덩이춤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클럽에서 여자가 엉덩이를 들이미는 걸 보다가 착안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미스터'는 뜻밖의 효자예요. 원래 2집 'Revolution'의 타이틀곡은 'Wanna'였지만 '미스터'가 인기를 끌면서 더블 타이틀곡으로 격상됐습니다. 성적표로만 보자면 '미스터'는 무관의 제왕입니다. 초반 표심 분산과 막강한 경쟁자 때문에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카라라는 걸그룹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일본에 진출하기도 했고요.

◆2012년 싸이 '강남스타일'

드디어 등장했습니다.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월드스타 싸이를 만든 미친 히트곡 '강남스타일'입니다. 빌보드 100에서 7주 연속 2위, 음원 판매 1000만건 돌파, 그리고 유튜브 조회수 1위 등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웠죠.

원래 유튜브 웹사이트에서 표시 가능한 조회 수의 최대치는 32비트 정수형의 최댓값인 21억4748만3647회였는데, '강남스타일'의 조회 수가 한계를 넘겨버리면서 조회 수가 음수로 표기되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프로그래밍 용어로 '오버플로'라고 합니다). 유튜브 측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조회 수가 나온 것이죠. 그래서 '강남스타일'에는 922경까지 표시 가능한 64비트 정수형을 적용했습니다. 현재 '강남스타일'의 조회 수는 29억9187만여 회에 달합니다.

'강남스타일'은 2012년 11월 24일 저스틴 비버의 'baby'를 꺾고 1위를 차지한 이후 줄곧 왕좌를 지키다 고(故) 폴 워커의 추모곡인 위즈 칼리파, 찰리 푸스의 'See you again'에게 2017년 7월 11일 1위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약 한 달 뒤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 루이스 폰시가 부른 'Despacito'가 빌보드 16주 연속 1위를 하며 유튜브 조회 수 1위를 탈환해요. 이 곡의 조회 수는 무려 43억회.

어쩌다보니 흥행 기록만 나열하게 됐는데 '강남스타일'의 흥행을 이끈 쌍두마차는 뮤직비디오와 '말춤' 안무였습니다. 양손을 들어 올려 손목을 교차시키고 기마자세로 폴짝폴짝 뛰는 말춤은 단순하면서도 유쾌한 동작으로 전 세계가 사랑하는 춤이 됐습니다.

안무팀 매니아의 이주선 단장이 10분 만에 만든 말춤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패러디됐습니다. 권투선수 매니 파키아오,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퀸튼 잭슨, 축구선수 네이마르,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 출신 리암 갤러거 등 유명인들도 말춤 열풍에 동참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재선을 앞두고 "취임식 무도회에서는 적절하지 않겠지만 부인 미셸 오바마에게는 개인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동남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지난 11월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한 김정숙 여사가 가사를 개사한 '평창 스타일'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혼성 댄스그룹 코요태는 1998년 1집 '高耀太(코요태)' 수록곡이자 데뷔곡인 '순정'에서 동명의 안무 '말춤'을 먼저 선보인 바 있습니다. 물론 원조 논란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댄스곡은 댄스로 완성된다

따로 소개하지 못한 노래 중에도 춤 하나로 시대를 풍미했던 곡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상은의 '담다디'(1988), 김흥국의 전설적인 히트곡 '호랑나비'(1989), 기역니은춤 박남정의 '널 그리며'(1989), 현진영의 '너는 왜(현진영 GO 진영 GO)'(1992), 관광버스 춤으로 노년층까지 사로잡았던 DJ DOC 'DOC와 춤을'(1997), 슈퍼주니어의 대표곡인 'Sorry, Sorry'(2009), 높은 곡 완성도와 칼군무가 돋보인 EXO의 '으르렁'(2013) 등은 노래 제목만 들어도 안무가 떠오르는 히트곡입니다.

노래의 완성도와 댄스의 중독성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추억의 명곡들, 이번 주말에 다시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홍성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